[[파일:external/f72f156f9fd9c502383e02fefd1c9a63b9b3db8e1a9435580df59ffef7c524e6.jpg]] [* 위 이미지의 한시는 대월 왕조의 중국에 대한 자주 의식을 표현한 남국산하(南國山下)이다.] {{{+1 Lý Thường Kiệt / 李常傑 / 이상걸 }}} 1019년 ~ 1105년 [목차] == 개요 == [[베트남]] [[리 왕조]]의 무신. 트엉키엣(常傑)이란 이름은 [[자(이름)|자]](字)다. 이름은 뚜안(Tuấn, 俊/준). 이상걸은 송나라의 침공군을 격퇴하여 대월(베트남)의 자주 의식을 만천하에 증명한 명장이다. 리 왕조의 [[보응우옌잡]]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로 치면 [[쩐흥다오]]가 [[이순신]]이라면 이 사람은 [[을지문덕]] 쯤 되는 위상이라고 보면 된다. == 생애 == 1019년, 수도인 탕롱(Thăng Long)[* 지금의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응오뚜안(Ngô Tuấn, 吳俊), 나중에 그가 황실의 군인으로 일하면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기특하게 여긴 [[리 태종|태종]]이 황실의 성씨인 이씨(李氏)를 [[사성정책|사성]](賜姓)받아서, 본인의 자와 합쳐서, 리트엉키엣(이상걸)이라 부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거세되어 환관으로 복무하며[* 베트남의 환관제도는 중국이나 조선과는 좀 달라서, 명문가 출신들만 환관이 될 자격이 주어졌다.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왕궁 경비대로 일하다 잘생긴 외모 때문에 임금의 관심을 끌어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위에 있는 수염 있는 초상화는 그가 환관이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뒤에 베트남에서 그려진 초상화에서도 수염이 있는 걸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편 1075년, [[북송]]의 재상 [[왕안석]]은 대월을 토벌할 준비를 한다. 이를 눈치챈 리트엉키엣은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송나라 국경으로 쳐들어가서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40일간의 교전 끝에 승리한다. 송나라 측은 당시 대월(베트남)의 적수인 [[참파]]와 [[크메르 제국]]을 끌어들였다. 이에 리트엉끼엣은 강바닥 아래에 함정을 설치하여 1000명 이상의 침공군을 몰살시켰고, 결국 지친 대월(베트남)과 송 두나라는 화평조약으로 합의를 보면서 전쟁을 종결짓는다. 이후 그는 참파를 두 번 침공하여 보복을 가한 뒤 1105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각주] [[분류:베트남의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