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룩셈부르크의 다른 의미, rd1=룩셈부르크(동음이의어))] [include(틀:역대 신성 로마 황제)] {{{+4 '''Haus Luxemburg'''}}} {{{+4 '''Maison de Luxembourg'''}}} {{{+2 House of Luxembourg}}} [목차] == 개요 ==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 룩셈부르크, 보헤미아 및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 가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보헤미아 국왕, 룩셈부르크 백작을 배출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인물|가문의 이름과 달리]] 실질적으로 보헤미아(체코)의 지배 가문으로 역사에 존재감을 남겼다. 참고로 오늘날의 룩셈부르크의 지배 가문은 나사우바일부르크 대공가[* 원래는 제 8대 룩셈부르크 대공인 [[장(룩셈부르크)|장]] 대공부터 부르봉파름 가문으로 바뀌어야 하나 보르본파르마 본가에서 장 대공의 아들들의 결혼을 귀천상혼이라 규정하고 반대하는 바람에 이에 화가 난 장 대공이 어머니 가문명을 계속 사용하기로 하고 단절을 선포하는 바람에 나사우바일부르크라는 가문명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진 장 대공 역시 부르봉-파름 가문의 일원으로 보았다.]이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원래 현재의 룩셈부르크와 그 서쪽의 벨기에 일부를 지배하던 유럽의 평범한 백작 가문이었다. 그러다가 1308년 [[하인리히 7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독일왕)로 선출되는 행운을 맞았다. [[대공위 시대]] 이후 [[선제후]]들은 강력한 황제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명망가 공작 가문 대신에 한미한 백작 가문 출신을 황제로 선출하였고, 한 가문에서 독점적으로 제위를 세습하지 못하게 가문을 바꾸어 가며 황제를 선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를 잘 만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독일왕)로 선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하인리히 7세 역시 당시 그렇게 황제로 선출되었던 초기 합스부르크나 나사우,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 황제들처럼 실권이 미약한 단명 황제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1310년 아내의 가문이 통치하던 [[보헤미아 왕국]]의 왕관을 차지하면서 일약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문으로 급부상하는 반전을 맞게 되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룩셈부르크 가문은 대공위 시대 이후 약해진 황권을 강화하고 나아가 대공위 시대 이전처럼 제위를 독점 세습하려 했고,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었다. 아울러 보헤미아 왕국을 접수한 후 룩셈부르크 가문은 룩셈부르크를 떠나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이주하여 그곳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렇게 잘나가던 룩셈부르크 가문은 1437년 [[지기스문트]]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단, 혈통 자체는 모계 혈통을 통해 지금까지도 이어저오고 있다. == 룩셈부르크 백작 == 룩셈부르크 가문은 10세기 경 아르덴 백작이었던 지그프리트 1세가 인근 도시 트리어의 성 막시민 수도원으로부터 지금의 룩셈부르크 땅을 얻어내 성을 건설하고 룩셈부르크 백작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룩셈부르크 백작은 이 가문이 소멸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 가문이 1310년 보헤미아 왕국의 보위에 오른 후 가문의 중심지는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로 옮겨졌다. 1354년 백국에서 공국으로 승격되었다. == 신성 로마 황제 == 대공위 시대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유력 제후들은 특정 유력 가문이 제위를 세습하면서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한미한 백작 가문들을 교대로 선출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 결과 합스부르크 백작과 나사우 백작에 이어 룩셈부르크 백작 [[하인리히 7세]]가 독일왕으로 선출되어 황제가 되었다. 하인리히 7세 사후 역시 다음 황제로 라인 궁중백작인 비텔스바흐 가문이 황제로 선출되었으나, 카를 4세 때 다시 황제로 선출되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3명의 독일왕을 더 배출했다. == 보헤미아 국왕 == 하인리히 7세의 아들 요한(독일어: Johann von Luxemburg, 체코어: Jan Lucemburský 얀 루쳄부르스키)은 보헤미아의 국왕이었던 바츨라프 3세의 여동생인 엘리슈카(Eliška)와 결혼했고, 1310년 보헤미아 왕위를 승계받아 보헤미아 국왕이 되었다. 1310년 요한(얀)이 프라하에 입성하면서 가문의 중심지는 룩셈부르크에서 프라하로 이동하게 되었다. [[분류:룩셈부르크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