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팔츠 선제후]] [[분류:독일의 군주]] [[분류:유럽의 대공]] [[분류:헤센다름슈타트 가문]] [[분류:1837년 출생]] [[분류:1892년 사망]] [목차] == [[프랑크 왕국|동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의 마지막 왕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루트비히 4세(동프랑크))]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루트비히 4세(신성 로마 제국))] == [[팔츠]] [[선제후]] == 생애: 1424~1449 팔츠 선제후 루트비히 3세의 아들이다.4번 항목과는 관계가 없다. == 헤센 대공국의 대공 == ||<-2><table align=center><tablewidth=500> [[파일:Grand_Duke_Ludwig_IV_of_Hesse-Darmstadt_and_by_Rhine.jpg|width=100%]] || ||<width=17%> '''이름''' ||프리드리히 빌헬름 루트비히 카를[br](Friedrich Wilhelm Ludwig Karl)|| || '''출생''' ||[[1837년]] [[9월 12일]][br][[독일 연방]]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 '''사망''' ||[[1892년]] [[3월 13일]] (54세)[br][[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신궁전|| || '''장례식''' ||[[1892년]] [[3월 17일]][br][[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로젠호헤|| ||<|2> '''재위''' ||<#E7E7E7>[[헤센 대공국]]의 대공|| ||[[1877년]] [[6월 13일]] ~ [[1892년]] [[3월 13일]]|| ||<|2> '''배우자''' ||[[영국]]의 [[앨리스 모드 메리|앨리스 공주]] ,,(1862년 결혼 / 1878년 사망),,|| ||알렉산드리나 후텐 채프스카 백작부인 ,,(1884년 결혼 / 1884년 무효화),,|| || '''자녀'''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 이레네, 에른스트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알릭스]], 마리|| || '''아버지''' ||[[헤센 대공국]]의 공자 카를|| || '''어머니'''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공주|| || '''형제''' ||하인리히, 아나, 빌헬름|| 1837년 ~ 1892년 헤센 대공국의 대공이다. [[독일]] 소왕국 출신의 이 양반이 그렇게 유명한 이유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차녀 [[앨리스 모드 메리]] 공주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과 [[앨리스 모드 메리|앨리스 공주]]와의 7남매 중 4녀가 바로 그 유명한 [[러시아 제국]]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아나스타시야]] 공주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이다. 덧붙여, 장녀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1863~1950)는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빅토리아의 당숙이다!)와 결혼하여 2남 2녀를 낳았는데, 큰딸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앨리스]](1885~1969)가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이다.]의 어머니이고, 둘째 아들이자 막내인 [[루이 마운트배튼|루이]](1900~1979)가 바로 [[2차대전]] 당시 해군 제독이자 [[IRA]]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마운트배튼 백작이다. (그래서 훗날 [[로마노프 왕조]] 일가 유해가 발굴되었을 때 대조를 위해 필립 공의 DNA를 제출하였다.) 차녀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1864~1918)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넷째 동생(알렉산드르 2세의 5남) 세르게이 대공(1859~1905)과 결혼했으나[* 즉, 엘리자베트(엘라 대공비)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는 자매이면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시조카며느리-작은 어머님의 관계가 된 것. 자매는 훗날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라스푸틴]]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고[* 대신 시동생인 파벨 대공(1860~1919)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자녀인 마리야 여대공(1890~1958)과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1891~1942)을 입양해 키웠다. 파벨 대공의 첫 부인이 드미트리 대공을 낳고 사망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대공은 [[그리고리 라스푸틴]] 암살에도 가담하였다.] 남편은 1905년에 혁명가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엘리자베트는 출가하여 [[수녀]]가 되고, 자기 집을 [[수녀원]]으로 만들어 수녀원장이 되었다. 자선과 봉사를 하며 지내다가 [[러시아 혁명]] 와중인 1918년에 [[볼셰비키]]에게 살해당했다. 1992년에 러시아 정교회는 엘리자베트를 순교자로 인정하여 시성하였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있는 '20세기 순교자 10인 성상' 중에도 엘리자베트가 있다. 루트비히 4세가 재위한 [[헤센 대공국]]은 [[독일 제국]] 소속이었고,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1세]]와 [[빌헬름 2세]]가 넘사벽이어서 다소 묻히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전세계급 인기의 로열 베이비]]를 낳은 덕분에 사후에 유명해졌다. 1878년에 아내 [[앨리스 모드 메리|앨리스]]가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사망했을 때 상실감이 꽤 컸고, 결국 1892년에 자신마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가 결혼하기 전에 죽으면서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알렉산드라의 결혼식에는 루트비히의 장모 [[빅토리아 여왕]]과 처남 [[에드워드 7세]]가 대신 친정부모격으로 참석했다.] 게다가 루트비히 4세가 죽었던 1892년에는 [[앨버트 왕자|안습의 절정을 보여준 조카]]가 죽었던 해이기도 하다. 사실 조카인 [[앨버트 왕자]]는 본인의 사촌이자 루트비히 4세의 딸 알렉산드라를 사랑했는데, 이때 당시 알렉산드라는 이미 [[니콜라이 2세|정해 둔 임자]]가 있었고 끝내 앨버트 왕자의 청혼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