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 bordercolor=#ff0000><table width=480><bgcolor=#008000> {{{+1 '''{{{#white Luchino Visconti di Modrone}}}'''}}} || ||<-3><bgcolor=#ffffff>[[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824988_STD.jpg|width=100%]]|| ||<bgcolor=#ffffff> '''{{{#black 본명}}}''' ||<bgcolor=#ffffff>루키노 비스콘티 디 모드로네[* Luchino를 국내에선 영어식으로 루치노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탈리아식인 루키노로 읽는 게 맞다] [br] ^^Luchino Visconti di Modrone^^|| ||<bgcolor=#ffffff> '''{{{#black 국적}}}''' ||<bgcolor=#ffffff>[[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28]]|| ||<bgcolor=#ffffff> '''{{{#black 출생}}}''' ||<bgcolor=#ffffff>[[1906년]] [[11월 2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 ||<bgcolor=#ffffff> '''{{{#black 사망}}}''' ||<bgcolor=#ffffff>[[1976년]] [[3월 17일]], [[이탈리아]] [[라치오주]] [[로마]] || [목차] == 개요 == '''Luchino Visconti di Modrone''' (1906~1976)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연극 연출가, 극작가. [[밀라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사망. [[비토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더불어 소위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3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매우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의 작품중 국내개봉된 것이 거의 없는데 아마도 데카당스적인 내용과 그의 [[공산당]] 활동 경력 때문이 아닌가 추정된다.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작풍으로 알려져 있고 독특한 미적 심미안은 당대 감독들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그의 영화의 [[스태프롤]]이 흐를때는 보통 극장에서도 관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그는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밀라노 공국을 지배하며 르네상스 문화를 연 명문 '[[비스콘티]]' [[백작]]위를 가진 명문귀족이었다.[* [[한니발 렉터]]가 상당한 귀족 취미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원작 소설에서는 그가 비스콘티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그가 렉터의 모델이라는 풍문도 있다.] 때문에 다른 이탈리아 감독들이 국제적 명성을 얻고도 [[영어]]를 못해 쩔쩔맨 것과는 달리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등 수개국어에 능했고 [[파시스트]] 정권에 반발해 --귀족의 후예가--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면서도 절대로 귀족 취미를 버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사교계의 총아에다 뛰어난 미적감각으로 이름이 높아 [[루이뷔통]]이 [[듣보잡]]이던 시절부터 뷔통의 가방만 들고다녔으며[* 모두들 뷔통의 로고가 비스콘티의 이니셜을 박아넣은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루이 뷔통('''L'''ouis '''V'''uitton)이나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나 둘 다 이니셜이 '''LV'''다. 비스콘티 정도의 재력이면 개인 이니셜을 박은 가방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기도 했고.] 30살 무렵 [[장 르누아르]]의 연출 보조로 영화계에 발을 딛었는데 그를 르느와르에게 소개시킨 사람은 [[샤넬(브랜드)|샤넬]]의 창립자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다. 1942년, 《강박관념》[*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원작]으로 데뷔. 그런데 한창 전쟁중이라 판권 허락도 안 받고 그냥 찍어 버렸고 개봉 며칠만에 상영 금지의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판권 탓이 아닌 반 파시즘 내용 탓이란 주장도 있다.] 때문에 해외 정식 공개는 본인의 사후 [[미국]] 76년 뉴욕 필름 페스티벌에서 겨우 이루어 졌다고. 본작을 가지고 최초의 [[네오 리얼리즘]]영화고도 하는데 흔히 최초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45년작, 《[[무방비도시]]》라고 하지만 반파시즘적 내용이나 야외촬영, 아마추어 배우 기용은 본작이 최초라고 '''감독이 주장'''하고 있다. 이후 한동안은 [[연극]] 무대 연출, [[오페라]] 연출에 전념했는데 전후 48년 공산당의 자금 지원으로 네오 리얼리즘의 걸작《흔들리는 대지》(La terra trema: episodio del mare)로 영화연출에 복귀했으나 영화를 치졸한 이념선전물로 만들려는 공산당의 참견에 반발하여 바로 탈당한다. 1950년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담당했던 무대 연출들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연출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고 평가되는 공연이 1955년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었는데 [[마리아 칼라스]]의 혼신의 연기는 라 스칼라 극장 관객들의 기립 박수까지 이끌어냈다. 그 연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자료가 적기는 하지만 남아있는 녹음을 통해 그의 뛰어난 연출력을 알아낼 수 있다. [[양성애자]]로 당당하게 [[커밍아웃]] 했는데 사실 부친도 양성애자였다고... 때문에 영화를 찍을 때에는 여배우는 물론이고 남자배우와도 종종 염문설이 돌곤 했는데 그중에는 [[http://ja.wikipedia.org/wiki/%E3%83%AB%E3%82%AD%E3%83%8E%E3%83%BB%E3%83%B4%E3%82%A3%E3%82%B9%E3%82%B3%E3%83%B3%E3%83%86%E3%82%A3|심지어]] [[알랭 들롱]]도 포함되어 있다. 공개적인 연인은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헬무트 베르거]]였다. 2회 이상 기용한 배우로는 [[버트 랭카스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알랭 들롱]], [[더크 보가드]], 그리고 [[헬무트 베르거]] 등. == 필모그래피 ==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Ossessione.jpg|width=100]] ||{{{+1 '''강박관념'''}}} ''Ossessione'' ([[1943년|1943]]) ----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로 꼽히는 비스콘티의 첫 작품. [[제임스 케인]]의 [[팜 파탈]]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허락도 없이 각색했다. [[유로 크라임]]의 효시격 작품. || || [[파일:external/cinema-tv.corriere.it/locandina.jpg|width=100]] ||{{{+1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 ([[1948년|1948]]) ---- 이탈리아 베리스모의 대표 작가 조반니 베르가의 소설 『말라볼리아 가의 사람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며, 시칠리아의 가난한 어부들의 삶을 극히 사실적으로 담았다. || || [[파일:벨리시마.jpg|width=100]] ||{{{+1 '''벨리시마'''}}} ''Bellissima'' ([[1951년|1951]]) ---- 딸을 아역 스타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영화 산업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 || || [[파일:시아모 돈.jpg|width=100]] ||{{{+1 '''시아모 돈'''}}} ''Siamo donne'' ([[1953년|1953]]) ---- || || [[파일:센소 영화.jpg|width=100]] ||{{{+1 '''센소'''}}} ''Senso'' ([[1954년|1954]]) ---- 오페라적 장중함이 돋보이는 영화로 리얼리즘을 탈피해 탐미주의적 연출이 돋보인다. 감독은 [[잉그리드 버그만]]과 [[말론 브란도]]를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한다. || || [[파일:LENOTTIBIANCHE.jpg|width=100]] ||{{{+1 '''백야'''}}} ''Le notti bianche'' ([[1957년|1957]]) ---- 순수한 사랑의 본질과 이중성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백야』를 바탕으로 한 작품. 비스콘티가 네오리얼리즘적 시각에서 다소 벗어나 사랑과 절망을 백일몽과 같은 환상 속에서 아름답게 그려냈다. 명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 || [[파일:루키노.jpg|width=100]] ||{{{+1 '''로코와 그의 형제들'''}}} ''Rocco e i suoi fratelli'' ([[1960년|1960]]) ---- 마지막 리얼리즘 영화. [[알랭 들롱]]이 주연이다. 아니 지라르도의 명연기가 돋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표작 중 하나.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 수상. || || [[파일:external/en.academic.ru/Boccaccio70.jpg|width=100]] ||{{{+1 '''보카치오 70'''}}} ''Boccaccio '70'' ([[1962년|1962]]) ---- [[페데리코 펠리니]]와 [[비토리아 데시카]]와 [[마리오 모니첼리]]와의 옴니버스 || || [[파일:LEOPARD.jpg|width=100]] ||{{{+1 '''레오파드'''}}} ''Il gattopardo'' ([[1963년|1963]]) ---- <흔들리는 대지> <로코와 그의 형제들>에 이은 ‘시칠리아 3부작’의 마지막 작품.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쇠락해가는 귀족의 삶을 담은 시대극. 미국 배우 [[버트 랭카스터]]가 주연으로 기용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표작.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 [[파일:Vaghestelledell'Orsa....jpg|width=100]] ||{{{+1 '''희미한 곰별자리'''}}} ''Vaghe stelle dell'Orsa...'' ([[1965년|1965]]) ---- 아버지를 배신한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에게 복수를 한다는 그리스신화의 엘렉트라 이야기를 비스콘티가 현대로 가져와 재해석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매력이 돋보인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 || [[파일:이방인 스페인.jpg|width=100]] ||{{{+1 '''이방인'''}}} ''Lo straniero'' ([[1967년|1967]])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영화화 작품. [[장 뤽 고다르]]의 뮤즈인 [[안나 카리나]]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비평과 흥행 모두 실패했다. || || [[파일:라 카두타.jpg|width=100]] ||{{{+1 '''저주받은 자들'''}}} ''La caduta degli dei'' ([[1969년|1969]]) ---- 헬무트 베르거 주연작. [[잉마르 베리만]] 영화 단골 출연자인 잉리드 툴린과 젊은 시절의 [[샬롯 램플링]]이 출연. || || [[파일:베니스의 죽음.jpg|width=100]] ||{{{+1 '''베니스에서의 죽음'''}}} ''Morte a Venezia'' ([[1971년|1971]]) ---- [[토마스 만]]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비에른 안드레센]]이 맡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소년 타지오가 엄청난 [[미소년]]이라 [[일본]]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 || [[파일:루드비그.jpg|width=100]] ||{{{+1 '''루드비히: 신들의 황혼'''}}} ''Ludwig'' ([[1973년|1973]]) ---- 헬무트 베르거 주연작.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 전기 영화로 4시간이라는 엄청난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로미 슈나이더]]가 엘리자베트 역으로 출연. || || [[파일:그루포.jpg|width=100]] ||{{{+1 '''폭력과 열정'''}}} ''Gruppo di famiglia in un interno'' ([[1974년|1974]]) ---- 헬무트 베르거와 버트 랭카스터 출연작. 국제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자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비스콘티 열풍이 불었던 당시 일본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 || [[파일:L'INNOCENTE.jpg|width=100]] ||{{{+1 '''순수한 사람들'''}}} ''L'innocente'' ([[1976년|1976]]) ----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작품을 각색한 비스콘티의 마지막 작품 || [[분류:이탈리아 영화 감독]][[분류:1906년 출생]][[분류:1976년 사망]][[분류:롬바르디아 주 출신 인물]][[분류:양성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