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 여성 작가]] [[분류:1832년 출생]] [[분류:1888년 사망]]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 [[1832년]] [[11월 29일]] ~ [[1888년]] [[3월 6일]]) 미국의 소설가. 1832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고, 55세로 사망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보스턴]]과 [[콩코드(동음이의어)#s-2.2|콩코드]]에서 보냈다. 초절론자(超絶論者)[* 초절주의란 미국의 낭만주의로서 감성적 직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초감성적인 것을 우리 경험에서 독립되어 그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이자 아동교육론자인 부친에게서 철저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에[* 그녀의 부친 아모스 브론슨 올컷은 이상적인 공동체 프루틀랜즈(Fruitlands)를 설립하기도 했고,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과 절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상주의적 공동체 운동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었고, 올컷 가의 살림은 외가의 도움과 어머니의 노동으로 힘겹게 꾸려졌다.] 자신의 원래 꿈이었던 배우 지망도 단념하고 결혼도 하지 않으며 일찍부터 집안살림을 도우며 가계를 꾸려나갔다. 올컷은 생계를 위해 교사나 하녀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남북전쟁]] 때에는 간호병을 자원해 일하기도 했다. 천부의 문학적 재능을 살려 잡지나 신문에 글을 기고하던 중 1863년 발표한 〈병원 스케치〉가 주목을 받았다. 이후 남북전쟁 당시의 후방인 [[뉴잉글랜드]]의 가정을 묘사한 《[[작은 아씨들]]》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외에 《7명의 사촌》 등 3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