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DBP_1958_284_Rudolf_Diesel.jpg]]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그림 속 엔진은 1893년 디젤이 [[MAN]]에서 만든 실험용 단기통 엔진이다. Rudolf Diesel ([[1858년]] [[3월 18일]] ~ [[1913년]] [[9월 29일]]) 디젤 사이클을 정립하고 그 사이클로 실증되는 [[엔진]]인 [[디젤 엔진]]을 만든 사람. [[독일]]인 부모 밑에서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독일에 정착하였고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직업적으로는 전형적인 공돌이(...) 테크를 타서 디젤 엔진 발명 전에도 '기포없이 투명한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해 냈고 이것으로 명성을 쌓았었다. 1893년부터 1897년까지 [[MAN|MAN AG]]와 함께 식물부산물(바이오매스)[* 1900년에 프랑스 정부에 제안한 모형 엔진은 땅콩기름을 태워서 가동되고 있었다고 한다.] 연료로 가동되는 압축착화 방식의 새로운 엔진의 실용화를 위해 연구와 시제품 제작을 하였고,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실용화에 성공하고 세계 각국에서 특허도 냈다. [[https://www.google.com/patents/US542846|특허전문]] 특허는 곧 Sulzer[* 줄처-스위스의 선박엔진 및 철도 제작회사. 줄처는 디젤의 특허로 선박용 디젤엔진을 만들었고, 이게 별도의 회사로 독립한 게 NSD였는데 현재는 바르질라(Wartsila)에게 인수되었다.]와 [[크루프|Krupp]]에서 라이센스를 받아가면서 돈방석에 앉는다. 디젤엔진 발명과 성공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게 된 인물이지만 개인사로는 꽤나 불우했다고 한다. [[우울증]]에 걸렸고, 말년에는 공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1913년 9월 29일 [[영국]] 여행을 가던 도중 배에서 갑자기 실종되었다. 실종 2주 뒤에 노르웨이 북해에서 디젤의 시신과 유류품이 발견되었는데 시신은 이미 부패가 심해 끌어올리지 못했고 신원 확인을 위해 지갑 등 유류품만 끌어 올렸다 한다. 바다로 투신자살하였다는 의견이나 재산을 노리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미리 쓰여진 유서로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했기에 자살이라는 설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독신]]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Martha Flasche와 결혼해서 1889년에 아들 Eugen Diesel도 낳았다. 아들은 작가로 살았다.] 주니어 김영사의 "자동차가 부릉부릉"에서 디젤이 절벽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잘못 나와있다.(글로는 자살이라고 나오고 그림은 절벽에 서 있는 그림으로 나왔기에) 참고로 미리 쓰여진 유서에는 "내가 할 일이 없기에 나는 살아가는 뜻이 없다."는 매우 자조적이고 우울한 글이 가득남았기에 자살설이 나올 법했다. [[분류:독일의 발명가]][[분류:공학자]][[분류:파리 출신 인물]][[분류:1858년 출생]][[분류:1913년 사망]][[분류:의문사한 인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디젤, version=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