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영국의 백작]] [[분류:영국 총리]] [[분류:1676년 출생]] [[분류:1745년 사망]] [[분류:가터 훈장]] [include(틀:역대 영국 총리)]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010131><tablebgcolor=#FFF><#010131>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0131 0%, #01013A 20%, #01013A 80%, #010131)" '''[[영국 총리|{{{#FFC224 영국 초대 총리}}}]][br]{{{#FFC224 {{{-1 The Right Honourable}}}[* 백작 본인에 대한 경칭]}}} [br]{{{#FFC224 {{{+1 The Earl of Orford}}}[br] {{{#FFC224 KG PC }}}}}}'''}}} || ||||<-3><#ffffff>{{{#!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ichef.bbci.co.uk/pow_pow_2748_large.jpg|width=100%]]}}}|| ||||<:><#010131>'''{{{#FFC224 본명}}}'''||<#ffffff>Robert Walpole[br]로버트 월폴|| ||||<|2><:><#010131>'''{{{#FFC224 출생}}}'''||<#ffffff>[[1676년]] [[8월 26일]] || ||<#ffffff>[[잉글랜드 왕국]] [[노퍽(주)|노퍽]] || ||||<|2><:><#010131>'''{{{#FFC224 사망}}}'''||<#ffffff>[[1745년]] [[3월 18일]] || ||<#ffffff>[[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미들섹스]] || ||||<:><bgcolor=#010131>'''{{{#FFC224 작위}}}'''||<bgcolor=#ffffff>'''초대 오폴드 백작[* 1st Earl of Orford]'''[br]가터 기사(Order of the Garter)|| ||||<:><#010131>'''{{{#FFC224 정당}}}'''||<#ffffff>[[휘그당]]|| ||||<:><#010131>'''{{{#FFC224 재임 기간}}}'''||<#ffffff>[[1721년]] [[4월 4일]] ~ [[1742년]] [[2월 11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영국]] 최초이며 [[의원내각제]]의 최초 [[수상]]. 오포드 [[백작]] 로버트 월폴. == 생애 == 잉글랜드 동부의 노퍽 출생으로, 1701년에 하원의원이 되었고, [[조지 1세]]의 지시로 [[남해거품사건]]등을 비롯하여 경제문제등을 해결지어 두각을 나타내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휘그당]]원으로 활약하였다. 1715년에 10월 제1재무경(First Lord of the Treasury)[* 원래 영국왕의 최측근으로 왕국의 재무를 담당하는 대신이였다. 이 자리가 지금의 영국총리로 바뀐거다. 현재도 관습적으로 영국총리가 이 직위를 영국여왕의 신하로서 겸직하게 된다.] 겸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 영국왕의 신하로서 전통적 직위인 Second Lord of the Treasury(제2재무경)을 겸직하게 된다. 원래는 Lord High Treasurer의 1인자가 영국총리, 2인자가 재무대신으로 발전된것이다. 그렇기에 관저도 총리와 재무장관이 같이 붙어있다.]이 되었으나 외교정책면에서 대립, 1717년 물러나서 반(反)정부적 태도를 취하다가, 1720년 [[남해거품사건]]을 계기로 재등장하여 사후처리에 비상한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다시 제1재무위원(재1재무상, First Lord of the Treasury) 겸 재무장관 겸 하원의장이 되었다. 처음으로 수석 장관(Chief minister)이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책임내각제를 확립하였으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국의 초대 "수상(Prime Minister)"으로 간주된다. 관습법 국가인 영국에서 오랫동안 "수상"이란 직위는 없었다. 다만 First Lord of the Treasury 직에 있는 인물을 수상이라 부를 뿐이었다.[* 사실 이것도 100% 지켜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대 피트"(재임 : 1766~1768)는 후임 수상이 되는 그래프턴 공작에게 이 직함을 던져버렸으며,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이 직위 없이도 수상직을 수행한 대표적 인물(외무장관)이었다. 다만 게스코인세실 수상은 거의 유일한 케이스에 가깝고, 게스코인세실 수상에게 이 자리를 물려 받은 아서 벨푸어가 수상 직에 오르면서 1897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현직 수상은 이 직함을 계속 가지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First_Lord_of_the_Treasury|#]] 물론 이 직위의 재무적 실권은 초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름뿐이었다.] 이 직함은 1714년 10월 신설되었고, 월폴은 3대, 6대가 된다. 그 후 1742년 총선거에 패하고 물러날 때까지 약 20년간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 동안 그의 휘그당 정권은 국왕과 의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그 이후로도 30년간 안정되게 집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