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덴노)] ||||<tablealign=center>[[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2px-Emperor_Reigen.jpg]]|| ||<:> '''[[시호]]''' ||레이겐 덴노(霊元天皇, 영원 천황)|| ||<:> '''[[휘]]''' ||사토히토(識仁)|| ||<:> '''[[왕릉|능호]]''' ||츠키노와능(月輪陵)|| ||<:> '''생몰''' ||1654년 7월 9일 ~ 1732년 9월 24일|| ||<:> '''재위''' ||1663년 3월 5일 ~ 1687년 5월 2일|| ||<:> '''[[연호]]''' ||엔포(延宝)→텐나(天和)→조쿄(貞享)|| ||<:> '''황거''' ||교토 어소(京都御所)|| [목차] == 소개 == 일본의 제112대 덴노. [[고미즈노오 덴노]]의 18남으로, [[메이쇼 덴노]], [[고코묘 덴노]], [[고사이 덴노]]의 이복동생. 이름은 사토히토(識仁). == 생애 == 1654년에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복형 [[고코묘 덴노]]가 그를 양자로 삼았다. 당시 고코묘 덴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아들이 없어 형제들 중에 후계자가 될 사람을 선택해야 했는데, 형제들 상당수는 출가해 스님이 되었거나 궁가의 당주가 된 상태였다. 이로 인한 제약이 없는 건 갓난아기인 사토히토 황자뿐이었다. 하지만 그해에 고코묘 덴노가 사망했고, 당시 생후 4개월 밖에 안된 사토히토가 덴노가 될 수는 없으니 또 다른 이복형 [[고사이 덴노]]가 덴노로 즉위했다. 고코묘 덴노의 양자로서 1658년에 황태자가 되었고, 1663년 10세의 나이로 고사이 덴노의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레이겐 덴노가 즉위한 후 섭정을 맡은 건 일단 ~~30살 차이나는~~이복누나인 [[메이쇼 덴노]]였으나, 아버지 [[고미즈노오 덴노]]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 메이쇼 덴노가 섭정을 그만둔 뒤로도 고미즈노오 덴노가 계속 실권을 갖고 있어, 1680년에 고미즈노오 덴노가 사망한 뒤에야 레이겐 덴노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막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막부와 관계가 있는 귀족 섭가들과 대립하기도 하였다. 1687년에 성인이 된 아들 [[히가시야마 덴노]]에게 양위하고 [[인세이]]를 시작하였다. 1694년에 인세이를 중단했는데, 아버지의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히가시야마 덴노는 친정을 하게 된 후 막부와 손을 잡으려고 했고 막부는 이를 환영했다. 이에 레이겐 덴노는 막부 반대파를 이용해 종종 히가시야마 덴노의 통치에 제약을 주면서도, 고립되기를 피하고자 막부노선으로 선회하였다. 이를 위해 손자 [[히가시야마 덴노]] 치세 때 자신의 13녀 요시코 내친왕을 [[에도 막부]] 7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와 약혼시켰지만, 1716년에 이에쓰구가 사망하면서 그의 시도는 흐지부지 되었다. 1713년, 레이겐 덴노는 절에 출가하였고, 1732년에 사망하였다. [[분류:천황]][[분류:퇴위한 군주]][[분류:1654년 출생]][[분류:1732년 사망]][[분류:교토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