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agentpalmer.com/Ralph-Bakshi-the-Legend.jpg]] Ralph Bakshi 1938 ~ [목차] == 개요 == 미국의 [[애니메이션 감독]]. == 상세 == 미국 [[애니메이터]]로서는 아주 드물게도 성인 취향의 소재를 주로 다룬 감독. [[유대계 미국인]]으로, [[하이파]] 출신이다.[* 참고로 박시 가문은 [[크림 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크림 타타르어|튀르크어]]를 사용하던 크름차크라는 독특한 유대 민족 종교 공동체 출신이다. 문제는 이 공동체가 안그래도 [[적백내전]]과 [[홀로도모르]]로 고통받는 판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구성원 '''75%가 몰살당해''' 사라진 것. 그의 반골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 깊이 새겨진 셈이다. 크름차크 유대인에 대한 정보는 [[카라임 유대인]]이나 [[테오도로 공국]] 문서 참조 바람.] 태어난 이듬해 가족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함께 자랐으며 이런 경험이 작품에도 깊이 배어 있다.[* 1947년 워싱턴 DC로 전 가족이 이사했으며, 이후 겪은 일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쿤스킨에서 인종차별을 비꼬아 내게 된다.] 한편 애니메이션 속의 성적인 묘사로 인해 미국 내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감독이다. 이 때문에 [[심슨 가족]]을 앞서간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6년 테리 툰즈의 보조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업계에 데뷔해 1967 스파이더맨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등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 1968년에는 박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였다. 1972년에는 [[로버트 크럼]]의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자신의 대표작이자 미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X 등급을 받은 애니메이션 《고양이 프리츠》(Fritz the Cat)를 제작하여 업계에서 유명세를 알리기 시작했다.[* 첫 작과 후속작 (단 이 후속작은 박시가 관여하지 않았다)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원작자인 로버트 크럼은 이 애니를 무척 싫어했다. 얼마나 싫어했냐면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소송을 건 데다 고양이 프리츠 완결을 영화화로 거만해진 프리츠가 나대다가 여친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끝내버렸다. 이후 박시랑 작업한 애니메이터에게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려고 협박했을 정도. 박시도 대놓고 '잘 만들었는데 왜 존경해주지 않는 거냐'며 '크럼은 좋은 작가지만, 존경할 가치도 없는 포주'라 디스하는 등 지금도 둘 사이는 험악하다.] 이후로도 완전성인등급이 찍혀 버린 애니메이션인 《헤비 트래픽》(Heavy Traffic),[* 1990년대 후반에 국내에서도 비디오로 나왔는데 표지가 무슨 일본 [[야애니]]처럼 도배하여 나왔다!] 빈민가에서 갱단으로 커 가는 흑인들을 그려낸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쿤스킨》(Coonskin,1975)[* 1989년에 국내에서 비디오가 나왔으나 ([[삼부비디오]])삭제와 같이 비속어들은 예의바르게 걸러냈다.] 등을 제작했는데,[* [[파일:external/www.etobang.com/acc93a7a630f390e6671dc12f430be24_IpwbZo5rRq8TizZysNRC6E4p.jpg]] 쿤스킨을 봐도 [[루니 툰]]에 대한 풍자를 볼 수 있다. 캐릭터([[벅스 버니]]를 흑인으로 만든 검은 토끼 래빗 브라더도 그렇지만 저 배경을 보시라. 눈에 익숙하다면....) [[파일:external/www.etobang.com/acc93a7a630f390e6671dc12f430be24_EqCMxTpbu.png]] 루니 툰 배경화면을 그대로 썼다고 할 정도로 같다.]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을 비롯한 영화의 내용을 두고 논란이 빚어져 파라마운트가 맡을 예정이던 배급을 취소하였고, 원래 1976년 개봉 예정이던 헤이! 굿 룩킨!의 개봉이 몇 년간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1976년부터 2년간 판타지 영화인 《마법사》(Wizards), 《불과 얼음》(Fire and Ice)(놀랍게도 이 애니도 국내에 비디오로 나왔다... 물론 삭제질),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 박시 자신은 반지의 제왕 전체를 애니메이션화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두 개의 탑까지의 내용을 담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 실패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과 비디오로 나왔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에서 DVD로 냈으나 역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왕의 귀환은 1980년 줄리 바스와 아서 랜킨 주니어 공동 감독으로 티브이 애니로 만들어진다.]을 제작 & 감독했고,[* 불과 얼음을 비롯해 일부 작품에서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사실 1930년대에 [[플라이셔 스튜디오]]에서 먼저 쓴 적이 있다.] 미국의 음악사를 그려낸 《아메리칸 팝》(American Pop)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흥행에서 재미를 못 본데다 [[어른의 사정]]까지 겹치면서 1983년부터 일시적으로 몇년간 은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쪽(한국에서도 방영된 《[[마이티 마우스]]》같은 애니에도 참여했었다)을 통해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 여기서 박시가 감독한 마이티 마우스(1987년판)은 향후 현대기 미국 TV 애니메이션들의 제작 &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킴 베이싱어와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삼아 실사와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섞은 《[[쿨 월드]]》(1992)를 제작하나, 이 작품도 흥행에선 실패하고 만다. 이미 비슷한 기법으로 대성공을 거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나온 지 4년후에 나온 작품인데다, 내용 자체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흥행이나 평으로나 흑역사가 돼버린 영화. 그래도 티비용 애니메이션으론 1990년대 후기까지도 현역으로 작업했으며 80년대 중반에 처음 박시를 만나 어시스턴트격으로 잠시 일한 애니메이터론 [[존 크릭팔루시]]가 있다.[* 그와의 인연 때문인지 2003년 제작된 [[렌과 스팀피]] 성인판의 한 에피소드의 조연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선 [[디즈니]]와 실사 영화 사이를 이은 인물이란 식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듯. 2015년엔 침묵을 깨고 단편 'last days of coney island'를 만들었으며, 2016년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였다. 구체적인 생애는 [[https://en.wikipedia.org/wiki/Ralph_Bakshi|위키피디아 문서]]를 참조. 활용한 공식에 대해선 [[http://tvtropes.org/pmwiki/pmwiki.php/Creator/RalphBakshi]]를 참조할 것. == 작품 목록 == === 영화 === * 프리츠 더 캣 (1972) * 헤비 트레픽 (1973) * 쿤스킨 (1975) * 마법사 (1977) * 반지의 제왕 (1978) * 아메리칸 팝 (1981) * 헤이 굿 룩킨 (1982)[* 1975년 완성되어 1976년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박시의 영화 쿤스킨에 대한 논란의 여파로 개봉이 연기되었다.] * 불과 얼음 (1983) * [[쿨 월드]] (1992)[* 박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작품으로 언급한 작품이다. 문서 참조.] === TV 애니메이션 === * 스파이더맨(1968년판) * 마이티 마우스(1987년판) == 관련 문서 == * [[미국 애니메이션]] [[분류:유대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인물]][[분류:애니메이터/ㄹ]][[분류:1938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