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1차 세계대전/영국 함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MS_Dreadnought_1906_H61017.jpg|width=500]] [목차] == 개요 == [youtube(TCZUU9596bo)] [[HMS]] [[드레드노트]](Dreadnought)는 1906년에 취역한 [[영국]]의 [[전함]]이다. 1905년에 착공. 당대의 혁신적인 전함으로, [[드레드노트급]]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형태의 전함들을 유행시켰다. == 드레드노트급과 노급 == 일본과 한국에서 통용되는 노급이라는 명칭은 당시 [[일본]]이 드레드노트를 "ドレッドノート(도렛도노-토)"라고 부르거나 앞 글자만 따서 ド급(도급)이라고 부르는 데 일본어에서 해당 발음이 나오는 한자 중에 하나인 弩를 붙여서 만든 것. 결과적으로 노급은 드레드노트급과 동일한 것을 지칭한다. == 제원 == || 기준배수량 ||18,410톤|| || 만재배수량 ||21,060톤|| || 전장 ||161m|| || 전폭 ||25m|| || 흘수 ||7.9m|| || 기관 ||4축 추진 22,500마력|| || 속력 ||21노트(39km/h)|| || 항속거리 ||10노트로 6,620해리, 18.4노트로 4,910해리|| || 승무원 ||695~773명|| || 무장 ||12인치(304.8mm) Mk.10 함포 2연장 포탑 5기, 12파운드 Mk.1 단장속사포 27문|| || 장갑 ||현측 장갑벨트 4~11인치(104~280mm), 갑판 3인치(75mm), 주요 포탑 및 지휘탑 11인치(280mm)|| == 상세 == [[드레드노트]]란 이름의 유래는 Dread(공포, 두려움) + nought(없음, 없다)의 두 단어를 합친 것으로 "두려울 것이 없는 (자)"란 뜻이다.[* 뜻이 거의 같은 Fearless 역시 영국 해군의 함정이름으로 쓰인다.] 이후로 '매우 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드레드노트라는 이름이 붙은 배는 이 전함이 처음은 아니며, 1573년 영국([[잉글랜드 왕국]])에서 41문의 대포를 가진 갤리온 '드레드노트(Dreadnought)'가 건조된 이후 계속 함명이 이어졌다. 드레드노트란 이름의 함 목록은 [[드레드노트]] 문서를 참고할 것. 해군 함정의 경우 기존 함선의 이름을 물려받는 경우가 흔하다.[* 잘 알려진 예 중 하나는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 사실 미 해군 최초의 엔터프라이즈는 사실 영국 선박으로 이를 노획한 미국이 그대로 쓴 것인데 영국에도 엔터프라이즈가 보조함명으로 계속 쓰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배에 요구되었던 것은 다음의 3가지이다. 1. 화력 측면에서, 주포를 단일 구경으로 통일하고 최대한 많은 포문을 한 함정에 탑재함으로서, '''[[일제사격|동일한 탄도를 가진 화포 다수를 동시에 같은 사격제원으로 발포]], [[협차|일정한 탄착을 형성]]'''케 함으로서, 명중률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곡사를 통해 가능한 한 원거리에서부터 명중탄을 내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부포[* 부포라는 표현에서 자칫하면 드레드노트 이후 전함들의 부포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것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포는 이때까지의 전함에서 28~30cm급 주포와 함께 탑재한 15~20cm급 함포들을 말한다. 대구경 화포는 충분한 명중률 및 발사속도를 얻을 수 없어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속사성능 및 위력 면에서 주포를 보조할 수 있는 중구경 함포를 다수 탑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는 이 부포를 가리켜 '''중간포''' 또는 '''중구경포'''라고도 한다. 여기에 근접전에 쓸 속사포가 따로 탑재되므로, 예전까지의 전함은 수상함과의 교전 목적 하나만으로 3가지 함포를 탑재했다.]를 폐지하고 그렇게 얻은 여유 부력 및 공간으로 주포의 문수를 최대한 늘린다. 1. 아울러 이와 같은 화력의 우위를 기본으로 하고, '''자함이 상정한 표준적인 교전거리 내에서는 적어도 [[대응방어|자기 자신의 화력에 대해 확실한 방어력을 확보]]'''함으로써 절대적인 생존성을 확보한다. 1. 마지막으로, '''당시 최첨단 설비였던 [[증기터빈]]'''을 주 동력으로 탑재하여 충분한 고속성능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21노트의 고속을 달성했는데, 이전 구형전함의 16~18노트에 비해 크게 우위였고, 한 체급 아래인 장갑순양함과 비슷한 속도였다. 이와 같은 요구사항은 건함 당시 영국 제1해군경이었던 피셔 제독[* 범선시대로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역사적인 인물.]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충분히 먼 교전거리와 우월한 속력을 통해 '''원하는 장소에서 일방적으로 적을 두들겨 팰 수 있는 무적의 전함'''을 확보,[* 이는 러시아와 일본 해군이 벌인 동해-대한해협 해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승리한 후에 분석했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까지 존재한 적도 없었던 영국 해군과 대등한 적국이 등장하는 것[*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당시 황제 빌헬름 2세의 적극적 지원하에 해군력을 대폭 증강하고 있던 독일과의 해군력 경쟁 가능성 대두였다.]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급의 전함은 사실상 단함만으로 기존의 전함 3척 이상과 대등 또는 그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하리라 여겨졌으므로, 이 급의 함정이 등장한다면 사실상 이때까지의 주력 전함이던 전-드레드노트형[* Pre-Dreadnought. 드레드노트가 출현한 후, 바로 전단계의 전함을 드레드노트와 구분짓기 위해 사용하던 개념.] 전함은 완전히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반대도 많았다. 일단 드레드노트 급의 전함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전함보다도 거대하고 비쌌거니와 그 효과 역시 분명치 않았으며[* 특히 이 전함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의의인 '''단일 구경의 주포 다수에 의한 원거리 교전'''은 전드레드노트형 전함으로 이를 시도해본 일본 해군 및 이를 관전한 영국 해군 관전무관단에 의해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존재했던 구식전함 전체를 완전 도태시키는 결과'''를 불러서, 장차 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둘 다 제로로부터 시작하거나, 고작해야 두세 척 차이로 시작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과의 경쟁을 예로 들면, 1906년 시점에서 영국과 독일의 전드레드노트형 전함 보유 숫자는 10:1에서 시작해서 5:2 정도까지 따라잡힌 상태였지만,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아직 1:0이었다. 독일이 지금까지 전드레드노트형 전함을 건조하던 페이스대로 드레드노트형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산업생산력에서 영국을 거의 따라잡고 있었던 독일이 영국과 거의 같은 규모의 주력함대군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이 드레드노트를 건조할 때 미국은 이미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을 건조하고 있었고 일본도 [[사쓰마급 전함]]의 설계안으로서 드레드노트형 전함을 설계한 적이 있다. 따라서 영국이 드레드노트를 건조하지 않았어도 드레드노트형 전함은 나타날 운명이었기에 후일의 관점에서 볼 때 영국이 드레드노트를 건조하면서 한 발 앞서나간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급의 전함은 해군경 피셔 제독의 강력한 오퍼에 힘입어 실제로 건조되었고, 최초 기대대로 등장과 동시에 전드레드노트형 전함, 당시까지 표준전함이라고 불리던 전함 전체를 일시에 퇴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의 건함 경쟁은 바로 이 드레드노트의 컨셉을 이어받은 드레드노트형 전함의 보유 척수에서 벌어졌으며, 최종적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배 자체는 등장 후 단 몇 년 만에 같은 컨셉의 훨씬 거대하고 강력한 전함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그 가치를 잃어, 1차 세계 대전 당시엔 이미 2선급 함정이었다. 물론 수훈 자체는 없지 않아서, 1915년 3월 18일에 독일 해군의 잠수함 U-29[* 함장은 오토 베디겐. 1915년에 단독으로 영국 순양함 3척을 몇 시간만에 격침시켜 일약 영웅이 되었던 함장이다. 후에 나치 독일이 [[칼 되니츠]]를 중심으로 잠수함대를 재건하면서 처음 창설했던 잠수함 전단에도 배디겐의 이름이 붙었다.]을 '''들이받아 격침'''시키는 수훈을 올렸다. 이는 1차 세계 대전에서 전함이 잠수함을 격침시킨 유일한 사례이다.[* 이외에 미국 전함 [[뉴욕급 전함|뉴욕]]도 독일 잠수함을 들이받아 격침시킨 사례가 있다.] 이를 제외하고는 1차 세계 대전 기간 내내 전 드레드노트형 전함만으로 구성된 제3전함전대의 기함으로서 활동하였으며, 종전 후인 1919년에 퇴역했다. 이후 예비함으로 돌려졌고 1923년에 해체되었다. 건함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중요한 전함이라 HMS 빅토리[*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넬슨의 기함]처럼 영구현역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념으로 보존할 수도 있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주력함 총톤수의 제약이 생기면서 보존이 불가능[* 일본이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카사를 기념함으로 보존할때도 시끄러웠다고 한다. 그나마 일본은 끝까지 주장해서 미카사를 기념함으로 보존하게 되었지만 유사시 현역으로 써먹지 못하게 선체주변에 아에 콘크리트를 부어야 했다...]해졌다. [[디스커버리]]에서 뽑은 최고의 10대 군함에도 들지 못했다… --[[지못미]]--[* 사실 기념함으로서 보존이 가능했으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순양전함)|후드]]를 살리기 위해 포기한다. --막상 후드는 제대로 활약한 적도 없이 [[비스마르크 추격전|비스마르크에게 럭키샷 맞고 한방에 침몰한다]]-- ] 추가하자면 [[일본군 해군]]의 [[공고급 순양전함]]이 영국에서 제작된 것이기에 슈퍼 드레드노트급으로도 분류가 가능한데 아무튼 공고급의 도입 이후에 일본 해군은 대부분 드레드노트급을 기초로 전함을 설계했고 일본 해군 전함 테크트리의 최상부 [[야마토급 전함]] 역시 이 영향을 받았다.(물론 미국도 비슷하지만…) == 흑역사 == 1910년 2월 7일, 전함 드레드노트는 (당시 외무부 차관이었던) 찰스 하딩 명의로 된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전보의 내용은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에서 온 일군의 왕족들이 드레드노트를 견학할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흑인으로 분장한 가짜였는데, 이 그룹의 리더는 이전부터 장난꾼으로 유명했던 호레이스 드 베르 콜이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유명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될 버지니아 스티븐[* 결혼 후 성이 바뀜]도 [[남장]]을 하고 끼어 있었다. 콜은 외무부 관리로 위장했고 버지니아 울프의 남동생 애드리언은 독일인 통역, 울프 외 3인이 아비시니아 황족으로 분장했다. 이들은 잔지바르 국기가 걸리고 군악대가 잔지바르 국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워낙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방문이라서 아비시니아 국기/국가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드레드노트를 견학했다. 견학도중 이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섞어서 급조한 엉터리 언어로 말했고, 방문용 [[명함]]은 [[스와힐리어]]로 인쇄했다. 함내를 둘러보면서는 경탄의 표시로 '[[붕가붕가]]!' 하는 감탄사를 외쳤다고 알려졌다. 이때 드레드노트의 함장은 윌리 피셔 대령이었는데, 피셔 함장은 일행 중의 버지니아 울프 남매와 사촌지간이었지만 두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 해군은 한동안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며 단단히 굴욕을 당했다. 영국 해군은 이들을 고발했지만 법원에서는 이들이 아무런 법도 어기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방면했다. 1915년, 1차대전 중에 드레드노트가 독일 잠수함 U-29를 들이받아 격침했을 때, 드레드노트로 수신된 축전 중에 'BUNGA BUNGA' 라고 쓰여진 것도 [[영고#s-6|있었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 [[드레드노트급]] [[분류:전함]][[분류:해상 병기/세계 대전]][[분류:1906년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