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지도, 장소=둔황, 너비=320px, 높이=240px)] [목차] {{{+1 敦煌(돈황) }}} == 개요 == [[중국]] [[간쑤성]] [[주취안]] 시의 둔황 현급시. 한때 존재하였던 [[서하]]의 주요 도시이기도 하였다. == 역사 == ||<tablealign=center> [[파일:한장성.jpg|width=70%]] || || 오랜 시간이 지나 풍화된 한나라 대의 장성. || [[기원전 2세기]], [[한무제]]대에 건설된 도시로 [[실크로드]]에 속한 주요 상업 도시의 하나였다. [[한나라]]는 [[강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둔황 북쪽 외곽에 장성을 설치했다. 장성의 관문은 무위, 장액, [[주취안|주천]], 돈황 네 개 군에서 수도로 보내는 옥이 드나들었다고 해서 옥문관(玉門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보다 남쪽에는 양관(陽關)을 설치했다. [[오호십육국시대]]에 전량(前凉)은 이 지역에 사주(沙州)를 설치한다.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 시기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불교]] 관련 물품들을 [[막고굴]]을 만들어 보관했다. [[수나라]] 대에 [[위구르]]나 [[튀르크]] 등 이민족들의 아래 있었고, [[당나라]] 대에는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어 무역 거점으로 번영했다. 후에 [[서하]]의 지배 아래 있다 [[원나라]]로 넘어간다. [[중화인민공화국]]에 들어서 [[문화대혁명]]으로 피해를 볼 뻔 하기도 했다. [* 거리가 워낙 멀어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문혁 시기 둔황을 방문한 공산당 인사는 고작 2명이었다고.] == 생활 == ||<tablealign=center> [[파일:당허1.jpg]] || [[파일:당허2.jpg|width=400]] || || 위성사진에서도 보이는 글자, 당허 저수지. || 둔황 시내를 흐르는 수로. || 과거에는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세운 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당허(党河)라는 [[저수지]]의 물을 끌어 수로로 둔황 시 중심부로 보내고 있다. 둔황 시내는 때문에 전혀 삭막하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 둔황 시 도심 밖의 향(乡)급 행정구에서는 밭농사도 짓는다. 밭농사를 위한 저수지나 제방, 오아시스 등이 여기저기에 있다. 사막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들어선 [[http://baike.baidu.com/item/%E4%BA%8C%E5%A2%A9%E6%9D%91/61202|얼둔춘(二墩村)]]에서는 품종이 개량된 [[옥수수]]나 [[감자]] 등을 재배한다. 간쑤성 둔황 시의 경계는 꽤나 넓지만 이는 산맥과 사막을 포함한 것으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은 둔황 시 중심지와 그 주변, 황쉐이바(黃水坝) 저수지를 수원으로 하는 둔황 시 양관젠(阳关镇) 등이다. 옥문관 터는 황량한데 반해 양관 터 옆에는 행정구 진(镇)이 만들어졌다. 막고굴과 사주성 고성, 오래된 관문과 모래산, 사막 등 관광 산업도 진행하고 있다. 둔황 시에 둔황 공항이 있어 관광지에 접근하기도 편리하다. 국도와 성도(省道),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아예 이름이 '[[막고굴|막고 톨게이트]](莫高收费站)'. == 기타 == 주취안 시 하위의 현급시로 위먼 시(玉门市)가 있는데, 실제 옥문관이 있던 둔황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다. 일본의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이 도시와 [[막고굴|돈황석굴]]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역사 소설을 1959년에 집필했다. 우연과 찰나의 선택에 의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인생무상이라는 불교적인 주제를 다룬다.~~그리고 여기서 주인공 조행덕이 개뜬금없이 서하로 가게 된 이유는 [[구리나자|이런]] [[디리러바|애들]]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카더라…~~ [[코에이]]의 게임 [[징기스칸 4]]에서는 [[서하]], [[몽골 제국]], [[원나라]], [[명나라]]의 도시 중 하나로 나온다. [[분류:간쑤성]][[분류:국가역사문화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