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냉전)] [목차] == 개요 == 신 동방정책(Neue Ostpolitik), 통상 간단히 동방정책(Ostpolitik)이라고 부르는 1960년대 이후 [[냉전]]의 종결까지 이어진 [[서독]]의 외교정책.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1969년]]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기존의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구권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자 한 일체의 모든 외교적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 배경 == [[1955년]] [[서독]]의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기독교민주연합]])는 소련을 제외한,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국가들과 어떠한 외교관계도 갖지 않겠다'''~~[[하나의 중국|하나의 독일]] 원칙?!~~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할슈타인 원칙]]을 선언한다. 서독만이 독일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에서 나온 이러한 외교 원칙은 서독의 지위를 강화함과 동시에 동독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각종 문제점이 등장했고 특히나 이 원칙으로 인해 서독 자신들의 행동이 제약을 받는 경우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여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을 비판하면서 동구권 국가들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독일 사회민주당]] 안에서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베를린|서베를린]]의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베를린 장벽]]이 건립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만 했던 사민당 총재 [[빌리 브란트]]는 할슈타인 원칙은 '''두 개의 독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이며, 동독 공산당의 입지만 강화시켜줄 뿐'''이라면서 적극적인 외교노선 개선을 요구하였다. == 실행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_145_Bild-F031406-0017%2C_Erfurt%2C_Treffen_Willy_Brandt_mit_Willi_Stoph.jpg|wid=400&height=350]] 1970년 동독 [[에어푸르트]]에서 동독 수상 [[빌리 슈토프]]와 역사적인 첫 동서 정상회담을 여는 빌리 브란트의 모습|| 기민련과 사민당이 손잡은 [[쿠르트 키징어]](기민련)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이미 동방 정책의 실시를 강하게 주장한[* 외교노선을 둘러싼 기민련과 사민당의 노선 충돌이 [[대연정]] 붕괴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빌리 브란트]]가 1969년 수상으로 취임함에 따라 동방 정책은 본격적으로 실행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첫 대상은 [[할슈타인 원칙]] 시절에도 이미 수교국으로 인정하고 있던 ~~그래서 야당과 보수세력의 반발이 크지 않을~~ 소련이었다. 이후 [[폴란드]]와의 바르샤바 조약을 통해 서독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경, 즉 [[오데르-나이세 선]]을 인정하고, [[동프로이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였다. ~~추방민 연맹과 야당의 엄청난 반발은 덤~~ 그리고 마침내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동서독간의 기본 조약이 수립된다.[* 그렇다고 브란트와 사민당이 동독을 외국으로 취급한 것은 아니고, 1민족 2국가, 남북한관계처럼 특수관계로 설정시켰다.] 분기탱천한 기민당은 브란트 총리를 [[내각불신임결의|불신임 시키려고]] 했지만 불과 2표가 모자라서(...) 부결되었다. 하지만 기민련은 불신임안 부결 이후 곧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추방민 연맹[*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등 구 독일 영토에서 서독으로 강제로 추방된 추방민들이 서독에서 설립한 이익단체.]과 보수 세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힘입어 여당자리를 되찾아 올거라 낙관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하지만 불신임안 통과에 모든 힘을 다 쏟은 기민당은 거짓말처럼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사민당에게 넘겨주는 참패를 당하고]] 국민의 간접적인 신임을 얻은 동방 정책은 꾸준히 이어져 나간다. == 이후 == 1974년 빌리 브란트 수상의 개인 비서인 [[귄터 기욤 사건|귄터 기욤이 동독의 첩보원이란게 밝혀지는]] 희대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빌리 브란트는 사임하였지만, 뒤를 이어 수상에 오른 사민당 [[헬무트 슈미트]]는 꿋꿋히 동방 정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982년 정권교체로 수상에 오른 우파 [[기민당]]의 [[헬무트 콜]]도 동방 정책을 계승 및 발전시켜 나가면서 결국 독일 통일에 이른다. == 여담 == * [[교황]] [[바오로 6세]]의 동구권과의 관계 재수립 움직임도 독일의 이 정책 이름을 따서 동방 정책이라고 부른다 한다. * [[노태우 정부]]가 소련,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어나갔던 '[[북방정책]]'의 이름이 이 동방정책에서 따온것이고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도 동방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만큼 독일이 한국의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졌기에 한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정책이다. * 독일 우파인 기민당 혹은 기사당과 독일 좌파인 사민당은 누가 집권하던지 간에 동방정책을 수행했으나 양 정당의 동방정책 기준은 확연하게 다르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의 좌파들은 독일이 통일되어서 강해지면 세계대전과 같은 무력을 기반으로 한 팽창주의가 된다고 보았다. 이는 1차 및 2차 대전을 통하여 입증된 형태였기 때문에 사민당이 추구하는 동방정책은 독일의 지속적인 영구분단 형태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시작된다. 반면에 기민당과 같은 우파는 독일의 동유럽 공산권에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 및 독일 통일에 대한 기반을 추구하는 형태로 추진했다. == 관련 문서 == * [[북방정책]] * [[햇볕정책]] * [[데탕트]] [[분류:외교 정책]][[분류:독일의 역사]][[분류:독일의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