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라 추존 국왕)] ||<tablealign=center><:><#4A2D5B><table bordercolor=white>'''{{{#FFD700 작위}}}'''||<-2><(><white> '''왕(王) / 태자(太子)''' || ||<:><#4A2D5B>'''{{{#FFD700 별호}}}'''||<-2><(><white> 동륜왕 / 동륜태자[* 삼국유사 왕력편에서의 명칭.] || ||<:><#4A2D5B>'''{{{#FFD700 성씨}}}'''||<-2><(><white> 김(金) || ||<:><#4A2D5B>'''{{{#FFD700 이름}}}'''||<-2><(><white> 동륜(銅輪) || ||<:><#4A2D5B>'''{{{#FFD700 아내}}}'''||<-2><(><white> [[만호부인]] 김씨 || ||<:><#4A2D5B>'''{{{#FFD700 아들}}}'''||<-2><(><white>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 ||<:><#4A2D5B>'''{{{#FFD700 부왕}}}'''||<-2><(><white> [[진흥왕]] || ||<:><#4A2D5B>'''{{{#FFD700 생몰연도}}}'''||<white><:> 음력||<white>? ~ 572 || [목차] == 개요 == [[신라]]의 [[왕족]]. 신라 24대 왕 [[진흥왕]]과 [[사도태후]]의 장남이자 25대 [[진지왕]]의 형, 26대 [[진평왕]]의 아버지. '''[[진평왕]] 이후 모든 [[신라]] 왕들의 직계 조상이다.'''[* [[진흥왕]] 사후 잠깐 남동생 [[진지왕]]에게 왕위가 돌아가기는 했으나, 진지왕이 폐위되자 동륜의 장남인 [[진평왕]]이 왕위에 올랐고, 이후 두 손녀인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재위했으며, 또 다른 손녀인 [[천명공주]]의 아들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후 신라 중대에는 무열왕 남계, 신라 하대에는 무열왕 여계가 왕위에 올랐다. [[선덕왕]] 김양상은 [[성덕왕]]의 외손자이고, [[원성왕]] 또한 증조모가 태종 무열왕의 딸이다.] 이름은 4명의 [[전륜성왕]] 중 하나인 동륜왕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동생 김사륜(진지왕)의 사는 [[순우리말]] [[쇠]]를 음차한 것, 즉 동륜왕 다음인 철륜왕을 의미한다. 이 시기 신라는 [[불교]]에서 왕족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흔했다. == 생애 == 진흥왕이 신라의 영토를 확장해 포석을 닦아두고 장남으로서 태자에 책봉되어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해버렸다. 이 때 진흥왕은 아직 겨우 30대 후반이었는데,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것이나 진흥왕 본인도 몇년 못 가 요절한 것도 태자를 너무 빨리 보낸 충격 탓일지도 모른다. 고모 [[만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세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인지 결국 진흥왕의 차남 사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지왕]]이다. 하지만 색만 밝히고 방탕하게 횡음했기에 5년만에 폐위당하고, 결국 어린 자신의 아들 김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가 잠시 동생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온 셈. 위서인 《필사본 [[화랑세기]]》에만 있는 내용으로는 위 사망 과정에 좀 더 내용이 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와 눈이 맞아 몰래 보명궁을 들락거렸는데 담을 넘는 중 그만 [[개]]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 얼마 뒤 죽었다고 한다. == 같이보기 == * [[전륜성왕]] [[분류:신라의 왕태자]] [[분류:근친상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