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오늘날의 독일 연방 공화국, rd1=독일)] [include(틀:독일의 역사)] [include(틀:오스트리아의 역사)] ||<-4><bgcolor=#fcc300><tablewidth=450><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fff> {{{#000 {{{+1 '''독일 연방'''}}}[br]'''Deutscher Bund'''}}}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Flag_of_the_German_Confederation_%28war%29.svg.png|width=150]]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Wappen_Deutscher_Bund.svg.png|width=80]] || ||<-2><bgcolor=#fcc300><width=50%> '''{{{#000 국기}}}''' ||<-2><width=50%><bgcolor=#fcc300> '''{{{#000 국장}}}''' || ||<-4>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German_Confederation_1815.svg.png|width=250]] || ||<-4><bgcolor=#fcc300> '''{{{#000 1815년 ~ 1866년}}}''' || ||<-2><bgcolor=#fcc300> '''{{{#000 성립 이전}}}''' ||<-2><bgcolor=#fcc300> '''{{{#000 멸망 이후}}}''' || ||<-2><bgcolor=#fcc300> [[오스트리아 제국|'''{{{#000 오스트리아 제국}}}''']] ||<-2><bgcolor=#fcc300> [[오스트리아 제국|'''{{{#000 오스트리아 제국}}}''']] || ||<-2><bgcolor=#000> [[프로이센 왕국|'''{{{#fff 프로이센 왕국}}}''']] ||<-2><bgcolor=#000> [[북독일 연방|'''{{{#fff 북독일 연방}}}''']] || ||<-2><bgcolor=#2ca02c> [[라인 동맹|'''{{{#fff 라인 동맹}}}''']] ||<-2><bgcolor=#808080> '''{{{#fff 남부 4개국}}}''' || ||<-4><bgcolor=#fcc300> {{{#000 '''역사'''}}} || ||<-6> '''1815년 설립 [br] 1866년 붕괴''' || ||<-4><bgcolor=#fcc300> {{{#000 '''지리'''}}} || ||<width=25%><bgcolor=#fcc300> {{{#000 '''위치'''}}} ||<-3>[[오스트리아]], [[체코]], [br] [[독일]], [[리히텐슈타인]], [br] [[룩셈부르크]] || ||<bgcolor=#fcc300> {{{#000 '''수도'''}}} ||<-3>[[프랑크푸르트]] || ||<-4><bgcolor=#fcc300> {{{#000 '''인문환경'''}}} || ||<bgcolor=#fcc300> {{{#000 '''인구'''}}} ||<-3>24,900,000명(1820년)|| ||<bgcolor=#fcc300> {{{#000 '''언어'''}}} ||<-3>독일어 || ||<bgcolor=#fcc300> {{{#000 '''민족'''}}} ||<-3>독일인, 오스트리아인 등 || ||<bgcolor=#fcc300> {{{#000 '''종교'''}}} ||<-3>[[가톨릭]], [[개신교]] || ||<-4><bgcolor=#fcc300> {{{#000 '''정치'''}}} || ||<bgcolor=#fcc300> {{{#000 '''정치체제'''}}} ||<-3>[[국가 연합]] || ||<bgcolor=#fcc300> {{{#000 '''국가원수'''}}} ||<-3>[[의장]][* 오스트리아 황제가 독일 연방의 의장이었다.] || ||<-4><bgcolor=#fcc300> {{{#000 '''경제'''}}} || ||<bgcolor=#fcc300> {{{#000 '''통화'''}}} ||<-3>탈러(Thaler) || [목차] [clearfix] == 개요 == [[1815년]] [[빈 회의]]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하여 붕괴된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하는 한편으로 독일어권 국가[*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 복잡한 지역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어권 지역이라는 표현을 썼지, '독일'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나라의 개념은 유럽인들 사이에 없었다. 심지어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게 이 시기 각종 사료에는 '독일'을 복수형으로 사용했으며('독일들') 단수로서 '독일'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이의 산업적인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 새로 설립된 느슨한 [[국가연합]]. 총 39개 국가들이 참여했으나 실질적인 맹주는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였다.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가 이 연맹에서 축출되고 프로이센이 일부 국가들과 [[북독일 연방]]을 설립하면서 붕괴됐다. [[독일 제국]]의 모태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독일 연방은 편의상 '연방'이라고 번역하고는 있으나 사실은 [[연방]] 국가(federation)가 아니라 [[국가연합]](confederation)이었다. [[한국어]]에서 연방으로 번역되는 정치체(政治體, polity) 중에 실제로는 연방 국가가 아닌 경우가 꽤 많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개로 독일어로는 연방을 가리키는 분트(Bund)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아예 틀린 건 아니다. == 역사 == === 배경 === 1803년부터 1806년까지 지속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에서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에게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참패하고 [[프란츠 2세]]가 퇴위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은 1000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완충지대를 위해 그 유명한 [[라인 동맹]]을 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에게 깨져서 반강제로 이 라인 동맹에 가입한 독일 제국(諸國)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이후 다시금 프랑스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동맹을 맺은 것이 독일 연방의 모체가 된다. === 탄생 === 마침내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유럽의 ~~옛날~~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벌어진 [[빈 회의]]를 통해 1815년 6월 8일 독일 연방이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프로이센 왕국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모든 영역을 제외한 독일 연방의 인구는 24,900,000명으로 이미 인구가 많이 증가해서 영향력은 높았다. === 1848년 혁명: 흔들림의 시작 === 외교적 타협과 균형의 달인이었던 [[메테르니히]]의 인생 최고의 걸작이었던 만큼 처음 30여년간은 그럭저럭 잘 돌아갔다. ~~애초에 느슨한 형태였으니 서로 신경도 안쓰고 잘 지냈던거지 뭐 통일된 국가로서의 역할을 한 게 있나~~ 하지만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빈 체제의 억압적인 상황 하에서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1848년 2월 프랑스에서 [[프랑스 2월 혁명|혁명]]이 일어나자 그 열기는 독일로까지 곧바로 옮겨온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독일을 휩쓸던 혁명의 열기에 겁을 먹고 민주적인 의회와 새로운 헌법, 통일된 독일을 약속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성명을 바탕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의회에서 각 독일의 대표들은 [[소독일주의]]와 [[대독일주의]] 문제로 입씨름만 하면서 6개월 넘는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이 틈을 노린 보수 반동세력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프로이센의 군대는 여전히 프로이센의 왕에게만 충성을 맹세했고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별 관심없는(...)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프랑크푸르트 의회가 준 통일 독일 황제의 자리를 거부하면서[* 이 사람은 왕권신수설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폭도'들이 준 왕관을 받을리가...] 자유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잡는다(...) 자유주의자들을 때려잡는데 성공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자신감을 되찾고 왕과 귀족 세력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킨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면서 독일 연방을 해체하고 프로이센 위주의 북독일 연방을 세우려했지만 [[올뮈츠의 굴욕|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반대로 실패]]... 그리고 이 앙금이 결국 전쟁까지 이어진다. === 붕괴 === 연방의 주도권을 놓고 사사건건 으르렁거리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다툼은 결국 [[1866년]] 전쟁으로 이어지고 패배한 오스트리아는 연방에서 ~~강퇴~~축출되면서 연방은 [[북독일 연방]]과 남부 4개국으로 재편된다. 그 후 [[북독일 연방]]은 1870년 [[독일 제국]]으로 국명을 바꾸고 남부 4개국을 가입시켜 황제로 프로이센의 왕인 [[빌헬름 1세]]를 추대한다. 그리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직후인 1871년 1월 18일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1세]]는 공식적으로 통일을 선포한다. == 정치 == === 연방 의회 === 독일 연방을 구성하는 나라가 많은 것에 비해 연방 의회의 의석은 17석 뿐이었다. 규모가 크거나 외국 왕이 [[동군연합]]인 나라 11개는 한 표 씩 행사했고, [[베틴 가문]]의 에른스트 계열 국가가 1표, 메클렌부르크의 2개 대공국이 1표, 브라운슈바이크+나사우와 올덴부르크+안할트가 1표씩, 나머지 공령들이 전부 연합해서 1표, 자유도시 4개가 1표를 나눠가졌다. === 역대 의장 === ||대수||이름||재위기간|| ||1||[[프란츠 2세|프란츠 1세]]||1815~1835|| ||2||[[페르디난트 1세#s-2]]||1835~1848|| ||3||[[프란츠 요제프 1세]]||1850~1866|| === 구성국 === 아래 구성국들 중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독일 연방에 속하지 않은 막대한 영토도 보유하였다. 이들 지역 대부분이 과거 신성 로마 제국의 영역 밖에 있었던 지역들이어서 독일 연방에서도 제외된 것. 그러나 두 나라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라서 군대만 하더라도 독일연방군 11개 군단(10개 상비군단+1개 예비군단)중 6개 군단은 각각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3개 군단씩을 차지했다. * 제1구: [[오스트리아 제국]] :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가 자동으로 연방 의장이 되었다. * 제2구: [[프로이센 왕국]] * 제3구: [[바이에른 왕국]] * 제4구: [[작센 왕국]] * 제5구: [[하노버 왕국]]: 1837년까진 영국의 왕이 하노버 왕국의 왕을 겸했기 때문에 사실상 영국 국왕이 표를 행사했다. 이후 1837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살리카 법]]이 적용되던 하노버 왕국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삼촌,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즉위하면서 영국과의 동군연합이 해체되었다. * 제6구: [[뷔르템베르크 왕국]] * 제7구: [[바덴 대공국]] * 제8구: 헤센 선제후국(헤센-카셀) * 제9구: [[헤센 대공국]](헤센-다름슈타트) * 제10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라우엔부르크 공국: 덴마크 국왕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으로서 참여했다.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에서 덴마크가 패배하여 덴마크 국왕이 홀슈타인 공작의 지위를 포기함으로써 소멸하였다. * 제11구: [[룩셈부르크]] 대공국(+[[림부르크 공국]]):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왕이 룩셈부르크의 대공으로서 연방 의회에 한 표를 행사했다. 그런데 1839년 영토의 서쪽 반을 [[벨기에]]에 할양하게 되면서(뤽상부르 주)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벨기에 땅이 된 지역은 연방에서 제외시키는 대신 네덜란드에서 림뷔르흐 지방을 [[림부르크 공국]]으로 분리하여 독일 연방에 새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네덜란드 국왕은 룩셈부르크의 대공 겸 림뷔르흐의 공작으로서 독일 연방 의회에서 한 표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 1866년 룩셈부르크 대공국과 림부르크 공국은 독일 연방을 떠났고 후신인 북독일 연방에 참여하지 않았다. 림부르크 공국은 이듬해 네덜란드에 재흡수되었다. 다만 룩셈부르크는 [[독일 제국]]이 멸망하는 1919년까지 독일관세동맹에 남아 있었다. * 제12구: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본명은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이었다가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의 고타 지방을 합병하고 이름을 바꿨다.]+[[작센알텐부르크 공국]][* 본명은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이었다가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의 알텐부르크 지방을 합병한 뒤 힐트부르크하우젠을 작센마이닝겐에 넘기고 이름을 바꿨다.]+[[작센마이닝겐 공국]] * 제13구: [[브라운슈바이크 공국]]+나사우 공국 * 제14구: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 제15구: [[올덴부르크 대공국]][* 1829년에 공국에서 대공국으로 승격]+[[안할트 공국]][* 안할트-쾨텐 공국은 1847년에 안할트-베른부르크에, 안할트-베른부르크 공국은 1863년에 대가 단절되어 안할트-데사우에 통합되었다.]+[[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령]]+[[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령]] * [[공령|제16구]]: --호엔촐레른헤칭겐 공령+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령--[* 둘 모두 1850년에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리히텐슈타인]] 공령+[[리페 공령]]+[[로이스그라이츠 공령]]+[[로이스게라 공령]]+[[샤움부르크리페 공령]]+[[발데크피르몬트 공령]]+헤센홈부르크 백국[* 1820년에 가입하였으나 1866년 [[헤센 대공국]]에 통합되었다.] * [[자유시|제17구]]: [[브레멘]]+[[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뤼베크]][* 모두 1820년에 가입하였다.] == 생활상 == === 경제 === ~~경제라고 쓰고 관세동맹이라고 읽는다~~ 당연히 실제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았지만 독일 연방에서 연상되는 것이 관세동맹이라고 할 수는 있다. 1834년 연방의 단결을 증진시킨다는 명분으로 프로이센의 주도하에 [[관세동맹]](Zollverein)이 이루어진다. ~~농업지주인 [[융커]]들이 사회를 주도하던 프로이센이 이런 관세동맹을 주도했다는 것이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지만~~ 관세동맹의 애당초 목적은 경제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으로, [[프랑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소국들을 연방 내의 경제권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추후에 있을지 모를 [[프랑스]]의 이간질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또한 프로이센 입장에서는 이런 통 큰 모습을 보여주어서 연방 내 주도권을 놓고 다투고 있던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고..] ~~[[나폴레옹 3세]]때 모습을 보면 이 판단이 혜안이었음이 입증됐다...~~ 관세 동맹이 체결된 지 약 10년이 지난 1842년이 되면 거의 모든 연방 내 국가들이 관세 동맹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 도입할 때는 예상못했던 것이지만, 이런 경제 공동체의 형성은 민족주의자들의 통일운동을 자극하는 한편으로, 독일 연방 국가 사이[* 단 오스트리아는 제외]의 관세 폐지 및 도량형 통일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경제적으로 보면 독일의 경제가 통일을 이루면서 많은 도움은 주었다. === 문화 === 독일 문화 역사상 최고의 [[리즈 시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문학, 음악, 학문 곳곳에서 대가들이 등장한다. 긴 말이 필요없이 이 시기 활동한 인물들의 목록을 한 번 봐보자... 입이 안 다물어진다. 문학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프리드리히 실러|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 [[그림 형제]] * 에른스트 호프만 음악 * [[프란츠 슈베르트]] * [[루트비히 반 베토벤]] * [[요제프 하이든]] * [[로베르트 슈만]] * [[프란츠 리스트]] * [[리하르트 바그너]] 학문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레오폴트 폰 랑케]] * [[알렉산더 폰 훔볼트]] === 사회 === 1820년에 독일 연방의 인구는 24,900,000명으로 상당히 많았지만 이후에도 서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가 조금 더 빠르게 성장했다.[* 오스트리아는 제외한 통계이다.] 이러한 인구 증가에는 각종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와 같은 영양실조 및 기근으로 인한 아사가 크게 줄었던 점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또한 각종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진 것이 한 몫 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층민 사이에서 유아 사망률은 높은 편이었다. 독일 연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30년이 지나고 나서 나온 함부르크 시 통계를 보면 20~30%의 신생아가 1세를 못 넘기고 사망했다. 이 정도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중상층 계급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지는 움직임도 동시에 관찰된다.[* 이 시기 산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낮아지며 인구 규모가 고착화되는 현상도 관찰된다.] 더불어 [[미국]]으로의 [[이민]]도 이 시기 증가해서 약 30년 동안에만 24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으로 추산된다. 이름 탓에 [[독일인]]들로만 이루어졌을 거 같지만 정말 엄청나게 복잡한 다민족 국가였다. 물론 독일인들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기는 했다. 우선 홀슈타인 지역에는 덴마크인들이 전통적으로 살고 있었으며, [[룩셈부르크]]에는 [[프랑스어]]를 모어로 삼는 벨기에인, [[오스트리아]]에는 체코인, 이탈리아인, 슬로베니아인들이, [[프로이센]]에는 폴란드계, 카슈브인, [[소르브인]]이 살고 있었다. 게다가 1839년 이후에는 ~~비록 게르만 사촌관계라지만~~ [[네덜란드]]도 연방에 포함됐으니..... 여러 왕실들과 더불어 [[프로이센]] 동부 지방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융커]](Junker)로 대표되는 귀족들이 상류층을 형성했다. 이 융커 계층은 토지 소유권을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과 군대 내의 고위직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면세 혜택과[* 1861년에야 관련법규가 생겨 귀족들도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 금융지원, 경찰력 행사와 같은 여러 특권을 누린 융커 계층은 [[독일 제국]]의 등장 이후에도 그들의 사회적 위신을 지키는데 성공하며 공무원과 군인 사회를 지배한다. 심지어 군인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제2차 세계 대전]]때까지도 이어졌다.[* 2차 대전 때 독일군 주요장성 들의 출신성분을 보면 융커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는게 더 빠르다. 예를 들면 사막의 여우라 불렸던 [[에르빈 롬멜]]이 있다.] 한편 [[실레시아|슐레지엔]]과 [[루르]]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부르주아]] 중산계급도 등장한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프랑스 혁명|1789년]]의 프랑스 부르주아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재산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귀족들과 결탁한다. 물론 나중에 가면 실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지긴 한다. 사회 최하층의 주류를 구성한 사람들은 ~~예상했듯이~~ [[소작]]농들이었다. 융커들의 토지에서 소작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융커들이 보낸 대리인~~[[마름]].......?~~의 감시와 함께 이 시기까지도 잔재한 봉건적인 의무들에 시달려야 했고, 여기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로이센 당국이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이제는 사병으로 병역의 의무까지 져야 하는 등 여러모로 불쌍한 존재였다. 또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자 계층도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운동은 아직 이 시기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었다. [[분류:독일 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