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영화/목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Good_earth_%281937%29.jpg]] [youtube(ikY9aQCAujw)] [youtube(Zs70mkDrYwc)] [youtube(v55oPz2p6tM)] [[펄 벅]]의 소설 [[대지(소설)|대지]]를 영화화한 것. 한국에서는 1988년부로 50년이 지났기에 판권이 만료됐다. 1937년에 미국에서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국 영화)]] 감독이기도 한 [[빅터 플레밍]]과 시드니 프랭클린이 공동 감독을 맡았으며 왕룽은 [[폴 무니]](1895~1967), 오란은 [[루이제 라이너]](1910~2014[* 105번째 생일(1월 12일)을 보름도 안 남기고 2014년 12월 30일에 사망했다.])가 연기했다. 백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으나 나머지 조연들은 [[중국계 미국인|중국계]] 및 [[한국계 미국인|한국계]] 배우들[* 하지만 한국계 배우들 중 이름이 남은 사람은 오란의 백치 딸 역을 맡은 수자나 킴 뿐인데 이후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이 연기했고, 복장이나 배경은 꽤 원작처럼 중국풍 고증을 잘 따른 편이다[* 당시 중국이 군벌이나 일본의 침략등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미국의 황무지에서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관련 소품은 중국에서 주문해서 가져왔다고.]. 유명 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1908~1997)가 이름없던 시절, 이 영화에서 [[엑스트라]]인 중국 농부로 나오려고 반나절을 분장해 잠깐 촬영했지만 도저히 중국인같지 않다고 나오던 분량이 삭제되는 통에 스튜어트가 울분을 참아야 했던 일화도 있다. 당시 헐리우드에서 그나마 제일 잘 알려졌던 동양계 여배우 애나 메이 웡[* 1905~1961. 본명은 웡리쫑(黃柳霜)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출생. 1920~30년대에 여러 영화에서 전형적인 중국인 유혹녀 역을 자주 맡았으며 1950년대에는 TV에서 활동했다. 헐리우드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동양계 배우로, 선구자로 인정받는다.]에게 여주인공이 돌아가지 않고, 첩인 연화 역을 제의하자 그녀는 동양인의 이미지를 그렇게 소비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이 역은 유태인인 틸리 로쉬[* 오스트리아계 유태인으로, 30-40년대 헐리우드에서 스캔들메이커로 유명했다.]에게 돌아갔다. 영화 [[그렘린]]에서 모과이를 팔던 가게 주인으로 나온 중국계 배우 키예 루크(1904~1991)가 여기서 왕룽의 장남 왕이로 나왔었다. 제작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맡은 [[MGM/UA]]. 참고로 음악을 [[아르놀트 쇤베르크]]에게 맡기려 했는데 그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가, 도중 하차[* 쇤베르크의 하차 이유에 대하여 90년대에 삶과 꿈이라는 잡지에서는 제작자인 레윈이 여기서 [[폭풍우]]를 느끼는 음악을 넣어달라는 황당한 조건과 이것저것 넣어달라는 조건을 걸면서 심한 간섭을 하자 쇤베르크가 "그냥 폭풍우 치는 소리를 넣으면 되잖아요!" 라고 짜증내며 하차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하여 에드워드 워드(1900~1971),허버트 스토더트(1885~1949)가 맡았다. 영화는 원작을 좀 간추리긴 했지만[* 그 바람에 몇몇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보도 바뀌었다. 첩인 렌화랑 눈이 맞는 것도 장남이 아닌 차남이고, 비적단의 부두목인 숙부도 여기선 그냥 백수건달. 욕심많고 뻔뻔한 숙모는 아예 캐릭터가 확 바뀌어서 오란을 걱정하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흥행에 성공했고(박스오피스 280만 달러, 제작비는 80만 달러였다), 평도 꽤 괜찮았다. 참고로 영화에선 오란이 죽자, 왕룽이 울면서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대지였어." 대사를 하면서 끝난다. 단, 벅은 이 영화를 상당히 싫어했다. 중국 이야기인데 주연 배우들만은 왜 죄다 [[화이트워싱|백인으로 바꿔버린 것]]이 문제였고, 원작의 이야기인 농부의 삶을 왜곡하여 왕룽과 오란 사이의 멜로드라마로만 만들어 버린 것도 문제였다. [[화이트워싱]]이야 당시 시대상 어쩔수 없었기에[* 예를 들어 당시 인기 있었던 시리즈인 [[찰리 챈]]이 있다. 이 경우도 원작에서는 중국인이었으나 영화에서는 대부분이 백인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든 넘겼지만 굴곡있는 삶을 사는 농부 가족을 그린 것이 아닌 서로의 멜로로맨스나 하는 한심한 가족으로 만든 것은 벅 자신이 그냥 넘기기 힘든 문제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영화 프로듀서[* 공동 제작자이던 어빙 솔버그는 1936년 9월 촬영한지 한 달 만에 37세 나이로 요절했다. 참고로 이 사람은 배우들이 죄다 백인으로 바꿔버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안타까워했다.]인 앨버트 레윈(1894~1968)도 이 영화의 완성본을 보고는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만약 멜로를 넣지 않고 굴곡있는 삶을 살면서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희대의 명작으로 남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광복]] 이후에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ine212722&logNo=220109511939&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개봉된 바 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대지,version=51)] [[분류:미국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