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조선]], [[한국사 관련 정보]] 大夫 禮 (? ~ ?) [목차] == 개요 == 기원전 4세기 후반 활동한 [[고조선]]의 인물. == 상세 == [[이름]]은 '''예'''이며 '[[대부#s-8|대부]]'는 성이 아닌 그가 역임한 직책명이다. 보통 직책명 대부와 이름 예를 띄어 '고조선의 대부 예'라 칭하는게 흔하지만 편의상 그냥 '대부례'라 칭하는 사람도 많다.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인물인데, [[부왕(고조선)|부왕]](否王) 이전의 인물이자 조선후(조선왕)의 신하로서 '''[[한국사]]상 최초로 문헌에 이름이 전해지는 인물'''[* [[단군]]은 직책이지 이름이 아니며, [[기자(중국)|기자]]는 동래설을 부정할 경우.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이며 [[위만조선]] 이전 시대에서 '''왕[* [[부왕(고조선)|부왕]]과 [[준왕]].]을 제외하고 이름이 전해지는 유일한 인물'''[* 사실 [[고조선]] 대에 지어졌다는 시인 [[공무도하가]]까지 넓히면 곽리자고, 여옥 등도 있긴 하지만, 공무도하가는 정확한 연대를 모르며 논란이 있다. 문서 참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라는 명칭에서 보듯 고조선에 오래전부터 관직 제도가 있었음을 드러내는 인물이며 행적에서 보듯 고조선에 높은 수준의 외교가 있었음을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 행적 == [[위략]]에 따르면 기원전 323년 [[연(춘추전국시대)|연(燕)]]의 [[연역왕|퇴]]가 왕을 칭하고 동쪽을 정벌하려 하자 위기를 느낀 [[조선후(전국시대 시기)|조선후]][*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도 주 왕실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제후에서 왕을 칭하며 연을 치려 하였다.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이 형성되며 거의 전쟁 돌입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이던 이때, 고조선의 대부 예가 조선후에게 간하여 고조선이 군사를 일으키는 걸 막았고 연나라에게도 보내져 연왕을 설득해 전쟁을 막았다. 보면 쓸데없는 분쟁으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전쟁을 막았으니 고조선의 현명한 [[외교]]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분류:고조선]] [[분류:한국사/인물]] [[분류:생년 미상]] [[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