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Princess_Nobuko_(cropped).jpg|width=360]] ||이름||미카사노와카미야 토모히토 친왕비 노부코[br](三笠若宮寛仁親王妃信子)|| ||결혼 전 이름||아소 노부코(麻生信子)|| ||출생||[[1955년]] [[4월 9일]]([age(1955-04-09)]세)[br][[일본국]] [[도쿄도]] [[시부야구]]|| ||가족관계||남편 [[토모히토]] 친왕[br]장녀 [[아키코 공주|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br]차녀 [[요코 공주|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 ||친정||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br]첫째 오빠 [[아소 다로]]|| ||학력||[[세이신 여학원]] 초등과[br]세이신 여학원 중등과[br][[영국]] Roselyn House College|| ||오시루시(お印)[* [[일본 황실]]에서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휘장, 마크.]||꽃[[복숭아]][* [[꽃]]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 개량된 [[복숭아]]나무이다.]|| [목차] == 개요 == [[일본]] [[나루히토]] 덴노의 5촌 당숙인 [[토모히토]] 친왕의 아내. [[다이쇼 덴노]]의 4남 내외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과 [[유리코 비]]의 큰며느리이다. == 친정 집안 == 어머니 아소 카즈코(麻生和子)는 [[요시다 시게루]] 前 [[일본 총리]]의 딸로, 카즈코의 외할아버지는 [[화족]]이자 정치인인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이다. 본래 노부아키는 [[메이지 유신]] 삼걸이자 근대 최초의 일본 총리인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이지만, 마키노 가문에 [[양자(가족)|양자]]로 [[입양]]되어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되었다. 1936년 [[2.26 사건]] 때 노부아키는 외손녀 카즈코와 함께 있다가 습격당해 위험에 처했는데, 카즈코가 적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여 외할아버지를 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버지 아소 다카키치(麻生太賀吉)는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아소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아소 집안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을 착취하여 큰 부를 일구었고,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인인 오빠 [[아소 타로]]도 극우에 망언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타로의 아내 아소 치카코(麻生ちか子)는 [[스즈키 젠코]] 前 총리의 딸이다. 노부아키의 손녀인 하야시 사다코(林貞子, 1919-2006)는 교육자이자 유아교육 전문가로, [[도쿄도]] [[시부야구]]에 쇼토(松濤) [[유치원]](2010년 폐원)을 설립했다. 쇼토유치원은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유치원으로 유명했는데, 노부코 비와 그녀의 두 딸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 시조카 [[쓰구코 공주]]·[[센게 노리코]]·[[모리야 아야코]]도 모두 이 유치원에 다녔다. [[파일:external/blog-imgs-71-origin.fc2.com/201504131931139c2.jpg]] ||1960년 2월, 첫째(장남)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을 낳고 [[궁내청]] 병원에서 퇴원하는 [[미치코 황태자비]]. 오른쪽의 중년 여성은 당시 [[토구고쇼|동궁]](東宮) [[시녀|여관]]장(女官長)이었던 마키노 스미코(牧野純子).|| 사다코의 어머니 마키노 스미코는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미치코 상황후]]의 황태자비 시절에 동궁 여관장을 지냈다. 스미코를 동궁 여관장으로 임명한 것은 [[나가코 황후]]였는데, 평민[* 말이 평민이지, [[미치코 상황후]]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대기업]]을 운영하는 [[재벌]]이며,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백작]])이다.] 출신 큰며느리를 몹시 미워한 나가코 황후가 손수 임명한 인물이니 스미코가 어떤 사람이었을지는 뻔한 일이다. 그때가 제법 인상적이었는지, 미치코 상황후의 큰아들 [[나루히토]] 덴노조차도 어린 시절에 스미코를 보고 ‘마녀 아줌마’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 결혼과 원만치 못한 가정생활 == [[파일:external/blogs.c.yimg.jp/img_1?1371973903.jpg]] ||1980년, [[토모히토]] 친왕과의 결혼사진|| 쇼토유치원을 졸업하고, [[가톨릭]] [[미션스쿨]]인 [[세이신 여학원]]에서 초등과와 중등과를 졸업한 뒤 [[영국]]에 [[유학]]했다. 결혼 전에는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17살이던 1972년에 [[토모히토]] 친왕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8년 후인 1980년에 결혼했다. [[파일:external/fimg.freeml.com/l_aa6ab0b32c4e1abc6edc03260abb1fb5ae85d373.jpg]] ||장녀 [[아키코 공주]](오른쪽), 차녀 [[요코 공주]](왼쪽)와 함께.|| [[토모히토]] 친왕과 결혼하여 1981년 큰딸 아키코 공주, 1983년 작은딸 요코 공주를 낳았다. 토모히토 친왕에게는 남동생이 2명 있는데, 바로 아래 남동생인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고, 막내 남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은 세 딸 [[쓰구코 공주]]·[[노리코 공주]]·[[아야코 공주]]만을 남기고 죽었다. 토모히토 친왕과 노부코 비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도 하고, 토모히토 친왕의 폭력이 원인이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황족 체면에 [[이혼]]은 할 수 없어서인지 [[별거]]했다. 서류상 이혼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혼에 가까운, 즉 [[졸혼]]이었던 것. 노부코 비는 몸이 아팠을 때도 남편과 딸들이 함께 사는 본인의 집에서 쉬지 않았고, 친정 형제들의 [[별장]]에 신세를 졌다. 2004년 일과성 뇌허혈증을 앓았을 때는 큰언니 소마 유키코(相馬雪子)의 별장과 오빠들의 별장에서 요양했다. 어느 정도 회복되자 2006년 [[도쿄]]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2008년 기관지 천식이 발병하자 다시 별장을 전전했다. 몸을 다시 회복한 후로는 [[궁내청]]장 관저에서 지냈다. (이 무렵에는 남편 [[토모히토]] 친왕도 건강이 좋지 않았고, 큰딸 [[아키코 공주]]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대학원]]에 [[유학]] 중이었기에, 작은딸 [[요코 공주]]가 가족들을 대신하여 공무를 했다.) [[파일:attachment/토모히토/ayo.jpg]] ||2012년 [[토모히토]] 친왕의 장례식에서, 큰딸 [[아키코 공주]](좌)와 작은딸 [[요코 공주]](우).|| 2012년 토모히토 친왕이 병으로 사망했을 때도 상주는 장녀 아키코 공주가 맡았고, 아내인 노부코 비는 장례식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2016년에는 시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노환으로 앓다가 사망했는데, 이때도 맏며느리인 노부코 비는 문병하지도 않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노부코 비는 딸들과도 사이가 나빠서, 아키코 공주는 한 주간지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어머니와 거의 교류가 없다.”고 대놓고 발언했을 정도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본]]에서 신빙성 높게 보고 있는 사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 노부코 비는 어린 두 딸에게 시부모 다카히토 친왕·[[유리코 비]] 내외에 대한 험담을 했는데, 두 딸이 자라서 보니 어머니가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해서 한 말은 사실이 아니었기에, 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되었고 모녀들 간의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 [[다카히토]] 친왕이 죽은 후로 미카사노미야 가문에는 남자가 없기에 그의 아내 유리코 비가 당주(當主)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 다음으로는 노부코 비가 시어머니 유리코 비로부터 당주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는 어머니에게 당주 자리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자신들이 이어나가기로 결정하였고, 특히 아키코 공주는 “시집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황실에 남아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토모히토]] 친왕이 생전에 살던 저택에는 두 딸만 살고 있고, 노부코 비는 딸들과는 따로 살고 있다. 2016년에는 딸들이 공무 때문에 집을 비운 사이에 자신의 짐을 챙기러 집에 왔다가, 문이 잠겨 있자 딸들이나 [[궁내청]] 직원에게 연락하는 대신에 [[열쇠]]수리공을 불러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2019년 9월에는 집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에서 치료[* 전치 3개월 진단을 받아 1~2개월 입원했고, 이 때문에 9월의 공무 일정들은 모두 취소했다.]를 받았는데, 이 사실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노부코 비는 토모히토 친왕 저택이 아닌 [[궁내청]] 분청사[*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궁내청]] 소유의 건물.]에서 별도로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 공무와 황실 생활 == 노부코 비는 미카사노미야 일가 및 황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황실에서는 그녀에게도 공무를 할당하고 있다. 2018년 가을 [[다카마도노미야 아야코 공주]]가 평민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황적을 이탈하면서 황족이 또 1명 줄어들었고, 2019년에는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 내외가 생전퇴위했으며, 노부코 비의 시어머니 [[유리코 비]]는 연로하여[* 1923년생. [[일본 황실]]의 최고령자.] 공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때문에 황실에서는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노부코 비까지도 공무에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부코 비는 남편 [[토모히토]] 친왕이 죽고 1년이 지난 2013년부터 공무를 재개했으나 그리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로 노부코 비도 황실의 공식석상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2019년 5월 22일 일본 적십자사 대회에서 참석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싫은데 억지로 (공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것은 [[아키시노노미야 키코]] 비에 대한 반감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19년 6월 6일 남편 [[토모히토]] 친왕의 사망 7주기 추모식, 이틀 후인 6월 8일 시동생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의 사망 5주년 추모식에도 유일하게 불참했다. 여전히 황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하다. 또한 노부코 비는 [[궁내청]] 및 황실과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듯하다. 2020년 1월 말의 [[와카]][* [[일본]]의 전통 시(詩)] 행사에서 노부코 비는 [[마사코 황후]]의 옆자리[* 원래대로라면 [[유리코 비]]가 있어야 할 자리였으나, 고령의 유리코 비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면서 맏며느리인 노부코 비가 대신했다.]에 배치되었는데, 유독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 것이다. [[일본 황실]]의 행사에서는 황후가 먼저 무슨 의상을 입을지 결정하고, 궁내청에서는 황후의 의상을 다른 여성 황족들에게 알려주어 ‘알아서’ 적절하게[* 이 [[드레스 코드]] 때문에 [[미치코 상황후]]와 [[마사코 황후]]는 황태자비 시절 수차례 골탕(시집살이)을 먹었다.], 황후보다 한결 수수하게 입고 오도록 조치해놓기 때문이다. 노부코 비가 황실 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이런 관습을 모를 리가 없고, 2019년의 [[적십자]] 행사에서도 마사코 황후에게 우호적으로 대했던 것을 보면 고의적으로 황후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소통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말. ==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와의 갈등 == 아랫동서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 비와 마찬가지로, [[나루히토]] 덴노의 남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일가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듯하다. 2019년 [[마사코 황후]]가 단독 공무로 참가했던 [[적십자]] 행사에서, 노부코 비는 마사코 황후에게 웃는 얼굴로 대했지만 [[아키시노노미야 키코]] 비에게는 무표정을 넘어서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만 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AQNmGPWGeI|행사가 끝나고 귀가할 때의 영상]]을 보면, 노부코 비는 [[마사코 황후]]에게 밝게 웃어주고 연신 손을 흔들며 계속 바라보았지만, [[키코 비]]에게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숙였고 인사 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황족들도 마사코 황후와 키코 비를 대하는 모습이 크게 다르다. ‘장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대한 불만이, 황족들 사이에서도 팽배해 있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이에 대해서 “역시 대재벌 아소 가문의 막내딸답게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성격 또한 그 오빠([[아소 다로]])에 그 여동생이다”라며 화제가 되었다. 2020년 1월 무렵의 미야케 회의에서는, 동서 히사코 비와 함께 아키시노노미야 부부의 면전에서 “큰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2020년 7월에도 노부코 비는 [[히사코 비]]와 함께 다시금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한소리를 했다. 얼마 후에 노부코 비의 장녀 [[아키코 공주]]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가 나왔는데,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오히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수작’으로 보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를 비판했고, 노부코 비도 문제의 보도를 보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우익들도 아키코 공주의 편을 들었고[*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는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이 생전에 하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자위대]] 행사 참석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극우들에게는 칭송의 대상이다.], 아키코 공주의 외삼촌 [[아소 다로]]는 [[일본 자민당]]의 유력한 정치인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노부코 비와 척을 지게 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로서는 몹시 부담스럽게 되었다. == 기타 == 특기는 [[요리]]이며, 1992년과 2013년에는 [[요리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2번째 책에서는 [[후쿠시마현]]의 요리에 대해 다루었다. [[분류: 일본의 친왕비]][[분류:1955년 출생]][[분류:시부야구 출신 인물]][[분류:기업인 자녀]][[분류:일본의 정치인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