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노벨상 목록)] ||<-2><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000,#fff> '''{{{+1 노벨물리학상}}}[br]The Nobel Prize in Physics'''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60%]] || ||<colbgcolor=#000,#fff><colcolor=#fff,#000> '''주최 및 장소''' ||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br][[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width=20]] [[스톡홀름]] || || '''상금''' || 900만 [[스웨덴 크로나|SEK]][br]100만 [[미국 달러|달러]][* 한화 기준 약 10억 6,680만 원.][br]^^(2018년 기준)^^ || || '''첫 시상년도''' || [[1901년]] [[12월 1일]] || || '''최근 수상자''' || [[로저 펜로즈]] [[파일:영국 국기.svg|width=20]][br]라인하르트 겐첼 [[파일:독일 국기.svg|width=20]][br]앤드리아 게즈 [[파일:미국 국기.svg|width=20]][br]^^(2020년 기준)^^ || || '''링크''' || [[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공식 홈페이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과학 분야 중 좁게는 [[물리학]], 넓게는 [[천문학]], [[지구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이 받을 수 있는 상 중 가장 영예로운 상. 1901년 [[X선]]을 발견한 [[뢴트겐]]에서부터 2009년 광섬유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한 가오와 CCD 소자[* 디지털 카메라에 사용되는 그 CCD]를 발명한 스미스와 보일까지 103년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수상을 할 수 없게 되었던 1916년과 1931년, 1934년, 1940~1942년을 제외하면 186명의 과학자가 이 상을 수상했다.[* 다만 1956년과 1972년 바딘이 이 상을 두 번 수상했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187번 수상된 것.] 우리들이 알고 있는 많은 과학자들이 이 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파인만]] 등이다. 수상자들은 엄청난 명예와 함께 1천만 [[스웨덴 크로나]]의 상금[* 약 1000만 크로네는 140만 달러 가량 된다.]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노벨재단의 운영비 확보를 위하여 상금이 20% 삭감되었다. 현재는 800만 크로네인 약 110만 달러을 받게 된다. 시상식에서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가장 먼저 수여받으며 여러 가지 노벨상과 관련된 행사에서 의전상 맨 앞에 나온다. == 수상 방법 == 수상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된다. 노벨상 시상식이 이루어지기 전 해의 9월경, 노벨 위원회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각 대학의 저명한 교수, 그리고 스웨덴 왕립 과학회의 회원들에게서 노벨상 수상후보에 대한 추천을 받는다. 이때 선정된 3000여 명의 후보자들은 다음해 2월까지 350~450명으로 갈무리된다. 이후 3월에서 5월간 노벨 위원회는 후보자에 대하여 특별한 검증 작업을 거치게 되며, 6월에서 8월까지는 이 후보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후 위원회의 최종적인 승인을 거치게 되면, 대망의 10월, 투표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게 된다. == 특징 == 실험적으로 검증된 영역에 대해서만 수상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 이론]]이 당대 학계에 엄청난 여파를 불러일으켰고, 당연히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이 수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실험으로 검증된 영역으로만 수상을 하는 노벨 위원회에 의해 거의 5년간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서 번번히 까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반발이 심했다고 하며, 어느 정도냐면 '아인슈타인 말고 노벨상 받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 !'라고 할 정도였다고. 이 여파 때문에 당시 노벨 물리학상의 권위가 바닥을 칠 뻔하자, 결국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수상한다. 당시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 명칭은 "이론물리학에 대한 기여와 [[광전효과]]의 발견". [* 그러나 수상 전인 1919년 [[아서 에딩턴]] 탐사대에 의해 일반 상대성 이론이 실증적으로 검증되었으며, 1900년대 중반쯤 실험 물리학자들에 의해 특수 상대성 이론이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가 있다.][* 이 연구가 나중에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축이 될 [[양자역학|또 다른 불멸의 업적]]을 낳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광전효과만 해도 대단한 업적이다.] 획기적인 이론들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도 [[블랙홀]] 등 검증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론을 주로 했기 때문에 생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지 못했다. 아예 본인이 자학 농담 소재로 썼을 정도. 인물의 품성도 꽤나 중요한 듯하다. [[빅뱅 이론]]의 창시자인 [[조지 가모프]]가 그 대표적인 예. 가모프의 연구는 노벨상을 받을 만하지만 이 양반은 음주가무를 밥먹듯이 일삼았으며, 학회에서의 기행으로 인하여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물리학상은 아니지만 [[존 내시|존 포브스 내시]]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던 1994년에는 노벨 위원회에서 직접 찾아와서 그의 성격이 어떤가 살펴보기도 했다. 참고로 내시는 미국의 수학자로, [[조현병]]을 앓아 프린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썼던 논문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데 45년이 걸렸다. 그래서 위원회 측에서도 상의 권위가 훼손될까봐 내시를 직접 확인하러 찾아왔었다고 한다. 한국은 한국계를 합쳐 아직까지도 과학상 전반은 물론이고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분야에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는 수상자가 없는 건 아니다. [[노벨화학상]] 항목 참조.] 현재까지 가장 유력했다고 생각되는 학자로는 [[벤자민 휘소 리]] 박사[* 이휘소 박사는 소립자 물리학에서의 업적이 매우 뛰어나며, 그와 일했던 사람 중에는 1979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가 있다. 거의 '절친'이라고 칭할 정도.]와 김필립 박사(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꼽힌다. 이휘소 박사는 한국 출신 물리학자 중 가장 많은 업적을 쌓은 학자로 꼽히나, 1977년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였다.--훗날, 2007년 난부, 2018년 애쉬킨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 인해 노벨상은 장수해야 받는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또한 김필립 교수는 지난 2010년 한국인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아깝게 놓친 경험이 있다. 김 교수는 그래핀의 존재를 확증하는 실험을 가임·노보셀로프 교수와 같은 시기에 성공했다. 때문에 2010년 노벨상위원회가 굳이 수상자를 가임·노보셀로프 두 명으로 제한, 김 교수를 배제한 결정에 이의 제기가 잇달았다. [[네이처]]에는 노벨상 위원회가 실수를 했다는 기사까지 실렸다. 참고로 통상 노벨상은 해당 분야 업적이 있는 세 사람까지만 주도록 돼 있었다. == [[/수상자|역대 수상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벨물리학상/수상자)] 한 해에 최대 3명까지 수상한다. [[노벨 경제학상]]("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상")을 제외하면 여성 수상자가 가장 적은 부문이다. 2020년 기준 각각 1명, 4명 수상. 그중 한 명이 [[마리 퀴리]]. [각주] [[분류:물리학]][[분류:노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