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image/038/2005/12/09/jiwon7938200512091720550.jpg]] [목차]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육군]] [[동방부대|동방대대]] 소속의 한 [[병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합중국 육군]]에게 [[포로]]로 잡힌 사진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이후 국내에서 이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발단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유명한 미국의 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에 있었던 유타 해안에서 로버트 브루어 육군 [[중위]]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동방대대 출신의 포로를 심문했는데 그가 [[한국인]]이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원래 인터뷰에서 브루어 중위가 [[한국]] 출신으로 지목한 포로의 숫자는 4명. 이 사실이 어느 네티즌에 의해 상기의 사진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이 사람의 행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영화]] [[마이웨이]] 홍보나 여러 매체에서는 앰브로스의 책에 저 사진이 있다고 하지만, 앰브로스의 책에는 '''저 사진은 없다'''. 그 책에 있는 어구와 저 사진의 인물을 합성한 텍스트가 돌면서 저 사진을 앰브로스가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의 이름이 양경종이고 1920년 신의주에서 출생했다는 글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으나 근거가 불분명하여 확인할 수 없다. 어쩌다가 한국인이 노르망디에서 독일 군복 차림으로 포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추측이 있다. === [[소련군]]에 징집된 [[일본군]] 포로설 === 이 설은 한국인(조선인)이 [[일본 제국]]의 징병으로 [[일본 육군]]에 끌려감 →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됨 → [[독소전쟁]]에서 병력이 부족한 소련군이 이들을 징집함 → [[독일 국방군]]의 포로가 됨 → 독일 육군도 병력보충을 위해 이들을 군사로 씀 →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에게 붙잡힘...이라는 경로로 추정한다. 이때는 1940년대 이전이니 [[조선인]]은 징병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육군에 자원 입대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1938년에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시작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http://blog.naver.com/spartacus2/80130587710|<마이웨이>의 장동건은 어떻게 일본군에 갔을까?]]를 참조. 문제는 [[할힌골 전투]]나 [[중일전쟁]] 때 포로가 되면 안된다고 그렇게 우겨대던 일본이지만, 나름대로 이면에는 포로 교환 교섭을 했었다는 것을 볼때 소련의 포로에서 소련군 징집은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할힌골 전투나 [[장고봉 사건]] 이후에 [[소련]]과 [[일본 제국]]은 불가침 협정을 맺어서 나름 국경조약을 완료한다. 이때 대부분의 포로들이 귀국하게 된다. 그러니 마이웨이처럼 일본군 포로설은 희박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물론 역사가 기록대로 간 것은 아니기때문이다. 할힌골 전투 포로 출신으로 소련 육군 [[장교|군관]]이 된 박성훈이라는 사람도 있다. 포로의 소련군 입대가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출처:SBS스페셜).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한 조선인들은 한반도 내 부대에 주둔하라고 했지만, 첫 번째 사망자인 이인석 [[상등병]](당시 나이 25세, [[충청북도]] [[옥천군]] 서면 출신)은 화북전선에 위치한 산서성에서 전사하였다. 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로들 중에도 조선인에 관한 기록이 조금은 남아있으며 소련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고려인]]들도 [[독소전쟁]]에 참전하였다. 또한 독일도 소련군 포로들 중 전향자를 대상으로 동방대대를 편성하기도 했다. 즉 이 주장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pK-tF0qqk]] 이 영상은 사진 속 인물이 양경종이라는 인물이라는 설을 소개하고 있으며, 일제에 의해 징집-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생포-3차 하르코프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생포-노르망디에서 연합군에게 생포라는 루트를 소개하고 있다. 양경종 씨 외에도 3명의 동양인이 더 있었으며, 연합군은 그를 독일군복을 입은 일본군으로 생각해 그를 영국의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가 미국의 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다만 수용소 출감이 1945년에 바로 이루어진 것 등으로 보아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 [[고려인]]? 혹은 중앙아시아계 소련인? === 다른 설은 저 동양인은 원래부터 [[소련]]에 거주하던 사람, 즉 [[고려인]]으로서 징집되었다는 설이다.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 포로 사진 등을 보면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동양계 병사들도 드문드문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홍범도]] 장군이 후에 소련군으로 [[쿠르스크 전투]]에 참전했다는 고려인들의 구전 설화(?)를 소재로 한 [[굽시니스트]]의 [[웹툰]]도 있다. 고려인들은 독소전쟁에는 나름 참전한 경우가 있다. 겐나디 한(1919~1943) 같은 경우는 동아시아계로 드물게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며 나치에 맞서 싸우다가 격추당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이나 기록에서도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부모와 같이 이주당한 한국인으로 나왔다. 잊혀졌던 그는 90년대에 [[MBC 뉴스데스크]]에서 잠깐 다뤄져 조금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소련군에는 [[동양인]]이 꽤 많이 섞여 있었고, 고려인뿐만 아니라 생김새가 한국인과 거의 같은 [[중앙아시아]]계 소련인[* 다만 우즈베크족 같은 황백혼혈 튀르크인들의 외모는 한국인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도 무차별 징집했으므로 동양인이라고 해서 [[조선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소련 영화 "베를린 함락(1949)"와 독일 영화 "[[베를린의 여인]](2007)"에서도 아시아계 소련 병사가 비중있는 역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소련군의 동양계 병사 - [[포로]] - 부역자''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독일 국방군에는 1942년경 부터 소련군 전향자 출신 부대가 공식적으로 편제되어 있었으므로 "아시아계 소련인설"이 가능성도 높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소련군에 아시아인이 상당히 많았다. 당시에는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인, 우즈베키스탄인, [[타지크|타지키스탄인]] 등 중앙아시아계 민족들과 [[카스피해]] 지역에 사는 [[몽골족]]의 후예인 [[칼미키야 공화국|칼미크인]]들도 상당수 소련군에 (반강제적으로) 입대해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독일에 포섭되어 국방군에 참여하게 되고 각 민족별로 편성된 이른바 '[[동방부대|동방대대]](Ostbatallion)' 에서 복무하게 되며, 러시아계 포로 전향자는 이와 별도로 '[[자유 러시아 군단]]'이라는 이름의 러시아인 부대로 편성된다. 전후 소련은 [[스메르시]], [[NKVD]]를 통해 송환된 포로 전원을 심사하여 [[처형]]하거나 [[굴라크]]로 보냈다. 만약 사진 속의 병사가 고려인이라면 그는 중앙아시아계 소수민족으로 편성된 투르키스탄 부대나 (언어 문제로 인해) 자유 러시아 군단에 편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1944년 6월의 노르망디에는 러시아계 부대와 조지아계 부대만이 상륙지점에 배치되어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노르망디 지역에는 709 보병사단 소속 635 러시아 대대, 795, 797 조지아 대대가 있었으며 716 보병사단에도 단대호 미상의 구 소련군 포로출신 부대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 부대 소속일 가능성이 높으나 사진에서는 소매에 붙어 있어야 할 부대마크(아래 사진 참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소속을 알 수는 없다. [[파일:POA.jpg|width=30%]] [[자유 러시아 군단]] 부대마크. == 행로는? == 이들이 누구이며, 또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는데 이들의 최후에 대해 앰브로스 등은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전쟁]]을 치렀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시 소련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고 주장한다. 소설가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이 이 주장을 따른다. 공산권 붕괴 후 공개된 소련 문서에 따르면 이런 대량처형은 일종의 잘못된 속설이었고 대부분 노동을 위해 [[굴라크]]로 이송되었다. 그중 협력사실이 경미한 전직 포로들은 다시 군에 들어가는 것이 허가되었고 대부분 노동부대나 굴라그 경비병으로 차출되었다. 처형된 비율은 의외로 적고 실제 [[전범]]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맞는 비율이다.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이 [[미국]]에 남아 여생을 지냈다고 추측한다. 북토피아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장웅진]]의 <노르망디의 조선인>이라는 소설이 이 주장을 따른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1612|#]]). 일단은 이런 사람들이 5~10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http://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t=82819|이 페이지]]를 보면 조선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4명의 사진이 있다. 그 밖에도 투르크계 병사들의 사진도 보인다. 사실 연합국은 [[소련군]] 전향 포로와 [[러시아 혁명]] 이전부터 망명한 코사크계, 백계 러시아인들을 [[소련]]에 다시 넘긴 사례도 있었다. 특히 동방대대 포로들의 경우에는 [[동유럽]]에서 [[소련군]]의 보호하에 있던 자국 포로들의 안전확보를 위해 국제조약도 무시한 경향이 있다. 본문 아래의 사례 같은 해피 엔딩이 많기만 바랄 뿐. 사실상 [[소련군]] 전향 포로에 대해서 2가지 사례가 모두 공존한다고 보면 된다. 어찌보면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서 기구한 삶을 산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군]]에서 [[중국군]](팔로군), [[북한군]]을 거쳐 다시 [[한국군]]에 복무한 할아버지도 있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62401073527258002&w=nv|#]]) == 미디어 == [[2005년]]에 [[SBS]] 스페셜에서 "[[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1_review_detail.jsp?vVodId=V0000311936&vProgId=1000126&vMenuId=1002036&vVodCnt1=00021&vVodCnt2=00|노르망디의 코리안]]"이라는 제목으로 이들에 대한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21~22회) [[http://youtu.be/2FSg4oAt69s|1부 - 독일 군복을 입은 조선인]] [[http://youtu.be/BpFRJqcawsQ|2부 - 국적 없는 포로]] [[2007년]]에 발표된 [[조정래]]의 역사소설 <오 하느님>은 이 [[한국인]]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 찾아보면 절판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2009년]] <사람의 탈>이라는 제목으로 제목이 변경되어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이를 중심 소재로 삼은 영화 [[마이웨이]](강제규 감독 작품)가 [[2011년]] [[12월 22일]]에 개봉했다. [[장동건]], [[오다기리 죠]], [[판빙빙]](范氷氷) 등 캐스팅이 매우 화려하다. [[장웅진]]이 쓴 노르망디의 조선인에서는 심문관인 러시아계 정보장교가 [[러일전쟁]] 뒤 자기만 [[미국]]으로 보내고 [[러시아]]에 남았던 아버지가 재취한 뒤 얻은 딸, 그러니까 배다른 누이동생의 남편이 이 인물인 것을 알아차리고 빼돌리는 식으로 전개했다. [[중국]]의 밀리터리넷에서는 --아니나 다를까--이 사람을 [[중국인]]이라 주장하고 있다. == 결론 == 일단 노르망디 캉에 있는 2차대전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 설명에는 그가 한국인이라 나와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고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기구한 운명에 처한 역사의 희생자임은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사진과 별개로 [[국립국악원]]은 독일에서 독일 인류학자가 채록한 아시아인이 부른 노래를 발굴했는데, 에디슨 원통형 축음기로 녹음한 것이라 앨범화 작업에 시간이 걸렸다. 추적 결과 2차 대전 시기가 아닌 1917년에 녹음한 것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정 러시아 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독일군에게 포로가 된 [[고려인|연해주 거주 한국인]]의 음원이었음이 밝혀졌다. [[http://dylanzhai.egloos.com/3518061|참조 바람]] [[분류:제2차 세계 대전]][[분류:도시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