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ablealign=center><bgcolor=#cccccc,#323232> '''역대 캄보디아 국왕''' || || [[노로돔 시아누크]] ||←|| '''노로돔 시아모니''' ||→|| (현재) || [include(틀:군주 일람)]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311092017745004011.jpg]] នរោត្តម សីហមុនី[* 크메르어 발음대로 표기하면 노로떰 싸이하무니.] (Norodom Sihamoni) [목차] == 개요 == [[캄보디아]]의 현 국왕. [[크메르 공화국]]과 [[크메르 루주]] 정권 이전의 캄보디아를 다스렸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이다.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 이후 [[훈 센]] 총리에 의해 반강제로 국왕에 즉위했으며, 현재까지 캄보디아의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 생애 == 1953년 5월 14일생([age(1953-05-14)]세). [[프놈펜]]에서 [[노로돔 시아누크]]의 7남7녀 중 6남으로 태어났고, 초중고등학교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다니던 와중에 론 놀의 쿠데타가 터지자 계속 눌러앉아 [[프라하]] 공연예술 아카데미(AMU)[* 한국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해당]에서 1975년 고전무용과 음악을 전공했으며,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영화 촬영과 무용등을 배웠다. 아버지 시아누크가 북한을 방문했을때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춘 영상이 남아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cwOhSolTg-o|50:57]] 1977년 유학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귀국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쿠데타 후 대통령과 총리를 오가며 권력을 쥐고있던 론 놀이 삽질과 베트남전 미군 폭격 등으로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에 정권을 내주자,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 론 놀 군부독재 시절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베이징으로 망명가서 라디오로 쿠데타 정권을 규탄하고 [[크메르 루주]]를 응원했다. 이 덕분에 그는 크메르 루주의 치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과 캄보디아 왕가는 귀국했지만,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은 1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1977년부터 프놈펜 왕궁에 유폐되었다.[* 이 시기 7남 7녀 중 5명이 생사불명 되었다.] 결국 북베트남 군대가 침공한 덕에 가족들과 왕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1981년부터 프랑스로 가서 20년 이상 영화 감독이나 발레 강의, 캄보디아 전통무용 소개 등을 하고 종종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프라하를 다녀오며 지냈다. 캄보디아 왕국이 들어서고 아버지인 [[노로돔 시아누크]]가 다시 국왕으로 복위한 1993년부터는 캄보디아 대사 자격으로 유네스코 대사 일을 맡았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세력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인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 시절부터 맡아달라는 요청이 계속되어왔지만 거절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시아누크 국왕이 2004년에 퇴위 의사를 밝히고, 2004년 10월 7일, 왕실 평의회에서 살아있는 형들(라나리드, 짜끄라뽕)을 젖히고 자신을 차기 국왕으로 지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훈 센이 사실상 모든걸 독재하고 왕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기에 그대로 왕위를 계승하면 남은 생애를 왕궁 안에 갇혀 감시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왕위 계승을 거부하며 [[중국]] [[베이징]]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왕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만류에 마지못해 즉위식을 사치스럽지 않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차기 국왕으로 올랐고[* 빈곤한 조국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남은 생애를 그대로 왕궁 안에 갇혀 현재까지 감시받으며 가끔 가다가 서류 결재와 손님접견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입헌군주국인 [[일본]]의 [[나루히토]] 덴노 즉위식같은 국외 행사에 가끔 참여하는 것을 보면 총리의 허락을 받으며 어느정도의 대외 활동도 다니고 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유럽]]에서 발레와 영화 등 예술 쪽에서 활동하던 왕족일 뿐, 캄보디아의 정치 상황에 밝은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캄보디아는 독재자 훈 센이 모든 것을 휘어잡고 있는 나라이다.[* 대표적으로 2017년 지방선거에서 훈 센에 질려버린 캄보디아 국민들이 캄보디아 구국당이라는 반독재 야당연합체에 힘을 실어주었더니, 2018년 총선을 앞두고 구국당 당수를 체포하는 한편 구국당 자체를 해산시켜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시아모니 국왕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미혼]]으로, [[왕비]]도 [[왕자]]도, [[공주]]도 모두 없다. 이걸 두고 항간에서는 국왕이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도는 모양.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여성들을 자기 남매들만큼 사랑한다고.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는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높고 시아모니 국왕 역시 선량한 성품으로 인기가 높다. 자식은 없지만 캄보디아 법에 따라 이 [[국가]]의 왕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총리, 상하원 의장 및 부의장, 불교 종정 등 9명으로 구성된 국왕선출위원회가 왕족 중에서 [[선거군주제|선출]]한다. 따라서 시아모니 국왕에게 자식이 없다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왕족 중에서 실권자 훈센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차기 국왕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분류:1953년 출생]][[분류:캄보디아의 군주]][[분류:불교도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