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막글)]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전대협]]-[[한총련]] 산하 전남지역 학생회연합체 [[남총련]] 학생들이 운행중인 열차를 강제로 정차시켜서 서울에 올라온 사건. 유사한 사건이 한 번 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벌어졌다. == 상세 == === 1992년 5월 29일 === === 1994년 6월 17일 === [[한총련]]과 함께 '[[우루과이 라운드|UR]] 국회비준저지를 위한 범국민대회' 참석을 위해 상경하려던 남총련 단원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한다는 구실로 23시 경 [[광주송정역|송정리역]]에서 500여m 떨어진 위치에서 열차를 강제로 세운 뒤, 무단으로 탑승[* 남총련 측은 나중에 제대로 운임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서울로 진입했다. 새벽 4시에 [[영등포역]]에 도착한 이들은 하차하여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고, 5시 경 [[신촌역(도시철도)|2호선 신촌역]]에 도착하여 경찰과 대치했다. 6시 경 [[홍익대학교]] 앞까지 진출한 이들은 40여 명의 경찰관을 납치하여 홍대 안으로 피신했고[* 남총련 측은 붙잡힌 학생들과 교환하기 위한 인질이라고 밝혔다.], 경찰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며 대치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한 후 일부 학생은 인근 [[서강대학교|서강대]]나 [[관악산]] 방면으로 도주하기도 했다. 또 이들과는 별도의 멤버가 전날 밤 [[민주당(1991년)|민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건국대학교|건국대]]와 [[서울대학교|서울대]] 등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 1994년 6월 25일 === === [[1997년]] [[5월 30일]] === [[한양대학교]]에서 열리려던 한총련 제5기 출범식에 참여하려고 남총련 단원 약 2천여 명이 역시 열차를 세운 뒤 서울시내로 올라온 사건. 그러나 출범식 자체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열리지 못했다. 이들은 [[광주역]]과 [[광주송정역|송정리역]]이 경찰에 의해 차단되자 인원을 분산시켜 목포발 서울행 열차가 정차하는 역들 중 비교적 경비가 허술하고 한산한 중간역을 골라, 5월 30일 목포발 서울역행[* 당시에는 [[호남선]] 열차도 [[서울역]]에서 시종착을 하였다.]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는 [[무안군]] [[일로역]], [[함평군]] 학교역(지금의 [[함평역]]), [[나주시]] [[고막원역]], 심지어 일부는 도계를 넘어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신태인역]]으로 이동하여 역무원들의 제지를 뚫고 열차에 탑승했다. 남총련 인원 상당수가 고막원역에서 체포되기도 했으나, 이런 제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서울행 열차에 탑승한 이들은 열차를 점거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대전역]], [[천안역]], [[수원역]] 등의 중간 정차역은 무정차로 통과하거나 다른 승객들을 강제로 하차시키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대해 [[남총련]] 측은 "자신들은 전부 기차요금을 지불했고, 다른 승객들이 대신 기차요금을 내주는 경우도 많았으며, 철도청 직원들과 시민들이 동조해서 자신들을 안전하게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주장했다.] 열차가 [[구로역]]을 지나 [[신도림역]]에 이르자, 이들은 열차를 강제로 정차시켜 일제히 하차하였다. 그리고 경찰의 제지를 피해 [[서울 지하철 2호선|2호선]]으로 환승하거나 [[신도림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시내로 도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임승차'''까지 저질렀다. 게다가 이 일이 벌어진 시간이 하필이면 퇴근 시간대라서 [[신도림역]] 일대가 큰 혼잡을 빚었다. 이 일로 인해 서울시내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들을 해산시키는데 1주일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분류:철도 사건사고]] [[분류:토막글/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