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47a0><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FFFFFF '''{{{+1 남삼진}}}'''[br]'''南三鎭'''}}}}}} || ||<-2> [[파일:남삼진.jpg|width=100%]]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태열(台烈) || || '''본관''' ||[[영양 남씨]][* 중령공파(中領公派) 16대손 진(鎭) 항렬. 영양 남씨 24세.] || ||<|2> '''출생''' ||[[1883년]] [[8월 23일]] ||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마령[br](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그의 출생지인 1749번지는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 ||<|2> '''사망''' ||[[1954년]] [[12월 12일]][* 남씨대동보 4권 밀직공파(영양 본관) 중령공파 579쪽에는 1950년 3월 1일에 별세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신사리 ||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남삼진은 1883년 8월 23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마령(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아버지 남만강(南萬康)과 어머니 [[경주 김씨]] 김제선(金濟善)의 딸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정9품 군위훈도(軍威訓導)를 지낸 남첨(南䄡)의 12대손이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30896|김은수]](金銀守), [[천양쇠]] 등이 주도한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 편향 시장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일본 경찰이 이를 막으려 하자, 그는 군중과 함께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여 비품과 서류들을 파기하고 경찰을 폭행했다.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검사의 공소로 열린 대구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끝에 8월 19일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0월로 형이 확정되어 1년여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동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아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신사리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던 중 1954년 12월 12일에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남삼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안동시 출신 인물]][[분류:영양 남씨]][[분류:1883년 출생]][[분류:195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