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탈리아의 역사)] ||<-3><tablealign=left> {{{+3 '''나폴리 왕국''' [br] '''Regno di Napoli''' [br] '''Regno 'e Napule'''}}} || ||<-3> [[프랑스 왕국]]의 [[동군연합]]국,,(1501~1504),,[br][[아라곤 왕국]]의 [[동군연합]]국,,(1504~1516),,[br]스페인 왕국의 [[동군연합]]국,,(1516~1713),,[br][[프랑스 제1제국]]의 종속국,,(1806~1808),,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50px-Bandera_de_N%C3%A1poles_-_Trast%C3%A1mara.svg.png|width=15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20px-Coat_of_Arms_of_Ferdinand_I_of_Naples.svg.png|width=100]] || ||<width=50%> 국기 ||<width=50%> 국장 || ||<-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03-Regno_Napoli_di_qua_dal_Faro.jpg|width=250]] || ||<-3> 1282년 ~ 1808년 || || [[이탈리아어]] ||<-2>Regno di Napoli || || [[나폴리어]] ||<-2>Regno 'e Napule || || [[라틴어]] ||<-2>Regnum Neapolitanum / Neapolis || || [[카탈루냐어]] ||<-2>Regne de Nàpols || || [[프랑스어]] ||<-2>Royaume de Naples || || 위치 ||<-2>이탈리아 남부 || || [[수도(행정구역)|수도]] ||<-2>[[나폴리]][br][[팔레르모]] || || 정치체제 ||<-2>군주제 || || 국가원수 ||<-2>왕 || || [[언어]] ||<-2>이탈리아어, 나폴리어 || || 종족 ||<-2>나폴리인 || || [[종교]] ||<-2>가톨릭 || || 주요사건 ||<-2>1282년 시칠리아 왕국으로부터 독립[br]1381년 두라초, 앙주가의 내전[br]1435년 [[앙주|발루아-앙주]] 가문의 승리[br]1442년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1세가 정복[br]1501년 [[프랑스 왕국]]의 루이 12세가 정복[br]1504년 스페인 왕국의 정복[br]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지배[br]1735년 [[부르봉 왕조]]의 복위[br]1806년 [[프랑스 제1제국]]의 정복[br]1815년 부르봉 왕조의 재 복위[br]1816년 [[양시칠리아 왕국]]으로 통합 || || 통화 ||<-2>나폴리 피에스타[br]나폴리 리라 || || 성립 이전 ||<-2>[[시칠리아 왕국]] || || 해체 이후 ||<-2>[[양시칠리아 왕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탈리아 남부에 존속했던 왕국이다. == 역사 == 원래는 [[시칠리아 왕국]]의 일부로, 앙주 왕조의 시칠리아 왕 카를루 1세[*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동생이자 앙주 & 프로방스 & 포르칼퀴에 백작으로 당시 시칠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호엔슈타우펜 왕조]] 세력을 일소하기 위한 교황청의 사주로 시칠리아를 침공, 당시 국왕 만프레디를 살해하고 앙주 왕조를 열었다.]가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영지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반란이 일어나 시칠리아 섬이 카를로의 통치에서 벗어나고 이탈리아 남부만이 카를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시칠리아 섬은 자신들의 지배자로 아라곤 왕 페드로 3세를 모셔 왔고, 이후 아라곤 왕가와 앙주 왕가가 서로 시칠리아 왕국의 왕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시칠리아에 영토가 없는 앙주 왕가의 왕국을 편의상 나폴리 왕국이라고 불러 나폴리 왕국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공식 명칭은 계속 시칠리아 왕국이었다. 그래서 합쳐지고 나서 '양' 시칠리아 왕국이 된 것이다.] 시칠리아 왕 카를로 1세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의 아들이라 프랑스에서 앙주와 멘의 백작을 겸하고 있었는데, 카를로 1세를 이은 카를로 2세는 앙주와 멘 백작을 발루아 백작 샤를의 아내인 딸 마르그리트에게 주었다. 앙주와 멘 백작은 마르그리트와 샤를의 아들인 [[필리프 6세]]에게 넘어갔고 필리프 6세가 프랑스 왕이 되면서 왕의 겸직 작위가 됐다가 필리프 6세의 아들 [[장 2세]]가 작위를 앙주 공작으로 높이고 둘째아들 루이 1세에게 줬는데, 이 혈연관계로 인해 루이 1세의 후손들은 카를로 1세의 후손이 끊기면서 루이의 손자인 르네 1세, 이탈리아식으로는 레나토 1세가 1435년에 나폴리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레나토 1세는 아라곤 왕 알폰소 5세와 싸워 지고 나서 알폰소 5세가 나폴리 왕위를 빼앗았다. 알폰소 5세가 죽자 아라곤과 나폴리 왕위는 분리되어 계승되었으나, 레나토 1세의 친척인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전쟁]]으로 이탈리아에 간섭하고 있던 차에 나폴리 왕위를 주장하며 쳐들어왔다. 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발루아 앙주 왕가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아라곤 왕이 나폴리 왕을 겸하게 되었다. 아라곤 왕의 나폴리 지배권은 아라곤과 카스티야-레온이 동군연합으로 통합 스페인 왕국을 만들면서 스페인에게 넘어 갔고,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날 때까지 스페인이 나폴리를 다스렸다. 나폴리 왕국의 수도였던 나폴리의 인구는 1600년에 280,000명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졌던 거대 도시였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후 맺어진 [[위트레흐트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당시였던 1800년에 나폴리의 인구는 430,000명으로 서유럽에서도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성장했다.이후 1816년 [[동군연합]]이던 [[시칠리아 왕국]]과 통합, [[양시칠리아 왕국]]이 되었다. == 관련 문서 == *[[시칠리아 왕국]] *[[양시칠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 [[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유럽의 왕국]][[분류:19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