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Nakayama_Yoshiko.jpg]] [목차] == 개요 == 中山慶子 [[1836년]] [[1월 15일]] ~ [[1907년]] [[10월 5일]] (71세) [[고메이 덴노]]의 측실([[후궁]])이자, [[일본]]의 근대화 시대를 이끌었던 [[메이지 덴노]]의 친어머니이다. 아버지는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걸쳐 공가, 정치가였으며 메이지 정부의 의정이기도 했던 나카야마 타다야스(中山 忠能)이고, 어머니는 현재 [[나가사키현]] 부근의 번이었던 히라도 번(平戸藩)의 번주 마츠우라 키요시의 11녀인 마츠우라 아이코(松浦 愛子)이다. == 생애 == [[1836년]], [[교토]]의 이시야쿠시(石薬師)에서 태어났다. 17세가 되었을 때 전시(典侍)로 궁중에 들어가게 되면서 '아에(安栄)'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후, [[고메이 덴노]]의 총애를 얻어 회임해서 [[1852년]] [[11월 3일]] 친정 나카야마 저택에서 황자이자 훗날 [[메이지 덴노]]가 되는 사치노미야 무쓰히토(祐宮 睦仁) 친왕을 낳았다. 당시 가록(家禄)이 고작 200석 남짓이었던 나카야마 가문은 산실(産屋)의 건축비용을 대지 못하고, 대부분을 빌린 돈으로 했다고 한다. 사치노미야 황자는 그대로 외가인 나카야마 저택에서 자랐으며, 5세가 되던 때에 궁중으로 돌아와 요시코의 거처에서 거주하였다. 그 후, [[고메이 덴노]]에게 다른 남자 후손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1860년]] [[8월 26일]]에 칙령을 내려 사치노미야를 정실인 [[에이쇼 황후]]의 양자로 하고 같은년 [[9월 28일]]에는 친왕으로 삼으면서 사치노미야에게 '무쓰히토(睦仁 목인)'라는 이름을 내렸다. [[1867년]] [[1월 9일]] 아들 무쓰히토 친왕이 [[천황]]으로 즉위한 후, 요시코 또한 그해 4월에는 병으로 그만 두었던 '전시'에 다시 취임하였다. 이듬해에는 직급이 종2위까지 올라갔고, 1869년에 수도가 [[도쿄]]로 바뀌었기 때문에, 요시코도 1870년에 도쿄로 이주하였다. 그 후, [[1879년]]에 태어난 손자 [[다이쇼 덴노|요시히토 친왕]]의 양육을 거쳐, 10년 뒤에는 양육을 일임받았으며 직급도 정2위가 되었다. 그리고 최초로 '훈1등 보관장(勲一等宝冠章)'이라는 훈장도 수여받았다. 그리하여 [[1907년]](메이지 40년) [[10월 5일]]에 도쿄 아오야마 미나미쵸의 저택에서 73세(만 71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분류:일본 제국의 인물]][[분류: 일본의 후궁]][[분류:1836년 출생]][[분류:190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