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초산군 출신 인물]][[분류:1900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국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정범}}}'''[br]'''金貞範'''}}}}}} || ||<-2> [[파일:김정범4.png|width=300]][* 1939년 5월 경성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00년]] [[9월 4일]] || ||[[평안북도]] [[초산군]] 동면 화풍동 || ||<color=#fff> '''이명''' ||김정범(金禎範), 김상률(金尙律) || ||<|2><color=#fff>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정범은 1900년 9월 4일 평안북도 초산군 동면 화풍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만주로 망명한 뒤 통의부에 가담하여 무장 항일투쟁에 착수했다. 그해 평북 초산으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일경찰대와 총격전을 벌였다. 또한 1924년 5월 초산군에 잠입하여 남면 송묘동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친일분자를 척결하였다. [[파일:김정범.png]] 1933년 7월 17일 경성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파일:김정범2.png]] 1937년 2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파일:김정범3.png]] 1937년 6월 1일 경성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그러나 1932년 8월 22일 집안현에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국내로 이송된 뒤 1933년 2월 13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강도상인(强盜傷人)·살인미수 등으로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8년 10개월의 옥고를 겪다가 1941년 6월 15일 가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 사후 ==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김정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그가 건국훈장을 서훈받게 된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가보훈처]]는 1968년 김정수가 통의부 소속으로서 국내로 잠입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오랜 기간 옥고를 치렀다며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했으며,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그러나 실은 김정수가 김정범의 공적을 자신이 한 것으로 위조한 것이었다. 그 후 [[독립유공자]] [[김진성(1914)|김진성]]의 장남 김세걸씨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진실이 드러났고, 결국 국가보훈처는 2018년이 돼서야 김정수에게 서훈되었던 건국훈장 애국장을 취소하고 김정범에게 서훈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김정수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남아 있어서 비판이 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김정수 일가 건국훈장 서훈 취소 사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