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fff 김용국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4><table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 ||<bgcolor=#074ca1> '''[[2011년 한국시리즈|{{{#ffffff 2011}}}]]''' ||<bgcolor=#074ca1> '''[[2012년 한국시리즈|{{{#ffffff 2012}}}]]''' ||<bgcolor=#074ca1> '''[[2013년 한국시리즈|{{{#ffffff 2013}}}]]''' ||<bgcolor=#074ca1> '''[[2014년 한국시리즈|{{{#ffffff 2014}}}]]''' || ----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 주장)]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7번}}}''' || || [[천보성]](1982 ~ 1984) || → || '''김용국(1985 ~ 1993)''' || → || [[이정훈(1963)|이정훈]](1995) || ||<-5><bgcolor=#224433> '''[[태평양 돌핀스|{{{#ff9933 태평양 돌핀스}}}]] {{{#ff9933 등번호 8번}}}''' || || 정영진(1993) || → || '''김용국(1994 ~ 1995)''' || → || 팀 해체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78번}}}''' || || [[김용희]](1999~2000) || → || '''김용국(2006 ~ 2009)''' || → || 결번 || || 결번 || → || '''김용국(2011 ~ 2016)''' || → || [[강봉규]](2017~) || ||<-5><bgcolor=#820024> '''[[넥센 히어로즈|{{{#fff 넥센 히어로즈}}}]] {{{#fff 등번호 75번}}}''' || || [[백인수|백인호]](2008~2009) || → || '''김용국(2010)''' || → || [[서한규]](2011~2014) || ||<-5><bgcolor=#000000><color=#373a3c> '''[[kt wizs|{{{#fff KT 위즈}}}]] {{{#fff 등번호 78번}}}''' || || [[김일경(야구)|김일경]](2016) || → || '''김일국(2017~2018)''' || → || 결번 || }}} || ---- ||<-2><tablealign=center> [[파일:김용국 삼성 코치.jpg]] || || '''이름''' || 김용국(金用國 / Yong-Gook Kim) || || '''생년월일''' || 1962년 6월 21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지''' || [[대구광역시]] || || '''학력''' || 대구수창초-[[경상중]]-[[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53회 졸업생이며 [[김용국]], [[김성갑]], [[이강돈]], [[이종두]]가 동기다.]-[[한양대학교|한양대]] || || '''포지션''' || 내야수(3루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1차 지명]]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5~1993)''' [br] [[태평양 돌핀스]] (1994~1995) || || '''지도자''' || [[현대 피닉스]] 수비코치 (1996) [br]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마이너 수비코치 [br] (1997) [br]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 수비코치 (1998~1999) [br]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00~2005) [br]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06~2008) [br]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09) [br]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09) [br] [[넥센 히어로즈]] 1군 수비·작전코치 (2010) [br]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11~2016) [br] [[kt wiz]] 1군 수비코치 (2017) [br] [[kt wiz]] 1군 수석코치 (2018) [br] kt wiz 2군 야수총괄코치 (2018) [br] [[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등학교]] 감독 (2019~2020) || || '''병역''' || [[병역특례]][* 1983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77&aid=0000126990|#]]] || [목차] == 소개 == [[삼성 라이온즈]]와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전 야구 선수이자 前 [[kt wiz]]의 1군 수석코치. == 선수 시절 ==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4 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였으며, [[한양대학교]] 졸업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1985 시즌부터 1986년까지 꾸준히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류중일]]에게 유격수 자리를 넘겨준 [[오대석]]과 1987년 3루 자리를 번갈아 맡았으나 [[류중일]]이 1988년 팔꿈치 수술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유격수 자리로 가면서 1988년부터 3루 자리를 지켰다.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를 이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차전에서 해태의 에이스 선동열을 상대로 홈런 1개 포함해서 9회에 2타점 적시타까지 기록하며 맹활약한 것이 대표적.[* 이 경기 전날 선동열과 밤새 술을 마셨다는 전설과 같은 후문이 전해진다. 자신은 조금 먹고 선동열은 많이 먹였다고...][* 그해 패넌트레이스에서는 선동열한테 6타수 무안타였다.][* 팀의 4점을 혼자서 책임졌다.](1990년 정규 시즌 홈런은 4개) . 참고로 선동열은 다음날 2차전에서도 삼성 [[김용철(야구)|김용철]]에게 9회 동점 홈런을 맞고, 끝내 연장전에서 역전을 허용하면서 팀의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의 원흉이라는 오명을 썼다.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던 시절에 선수로서 절정의 기량을 보였다. 삼성 1루수 [[신경식(야구)|신경식]],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김용국으로 이어지는 철벽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 당시에는 맨손으로 공을 바로 잡아던지는(영어로 bare-handed catch) 능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3루수였지만, 이러한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타격에선 주로 9번으로 출장하였다.]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의 [[한대화]]에게 밀려 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한대화와 달리 선수시절 우승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1993 시즌이 끝나고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의 3루수 자리는 후배 [[김한수]]에게 물려 주었다. 1994~1995 시즌 [[태평양 돌핀스]] 선수로 뛴 다음 야구단을 새로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가 기존의 선수단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1996년 시즌을 앞두고 그는 세대교체의 명분 아래 [[김성갑]]과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 은퇴 후 == 1996년 실업 야구 팀 [[현대 피닉스]]의 코치로 활동하며 [[현대 유니콘스]]에서 불러 주기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가족들을 데리고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 1997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산하 싱글A, 1998년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싱글A팀에서 수비, 주루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양 팀 모두 무보수 방문코치 자격으로 있었다. 마침내 1998년 말 3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되며 한국인 최초로 유급 코치가 됨과 동시에 트리플A 코치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코치를 하려면 영어에 더 능숙해야 했기에 결국 귀국을 결정했다. [[파일:PS15040700152g_99_20150407121503.jpg]]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파일:/image/109/2007/01/15/200701151239101103_1.jpg]] 2007년 1월 [[이승엽]]과 함께. 2000년 [[LG 트윈스]]를 시작으로 2006년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2010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가 이듬해에 다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선동열]] 감독의 용퇴와 [[류중일]] 작전코치의 감독 승격으로 인해 삼성의 수비코치 자리가 비었고, 아직 넥센과 재계약하지 않았던 김용국 코치를 [[류중일]] 감독이 다시 불러들여서 영입한 것. 그리고 이 선택은 본인에게 있어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V5)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그리고 [[2011년 한국시리즈|이어지는]] [[2012년 한국시리즈|4]][[2013년 한국시리즈|연]][[2014년 한국시리즈|패]] ㅎㄷㄷ~~ 수비코치로서의 평은 무난한 편. 삼성이 원체 수비 조직력은 좋은 팀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능하다고 마구 씹히는 [[김태한|어느 모 투수코치]]에 비하면야 확실히 별 언급이 없는 자체가 이미 수비코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다만, 2009 시즌에 1군 수비코치를 맡아 팀 실책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었고, 이는 해임으로 이어졌다. 갈수록 능력이 발전한다고 이해하면 편할 듯. [[파일:20161122_1142272_99_20161122134903.jpg]] [[kt wiz]]에서의 코치 시절 찬바람이 몰아친 2016 시즌 후 삼성이 코치진까지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삼성은 그와 재계약하지 않고, [[kt wiz/2군|kt 2군]]에서 수비코치를 맡고 있었던 박재현을 새로운 수비코치로 영입했다. 그 후 새로 부임한 [[김진욱(1960)|김진욱]] [[kt wiz]] 감독의 부름을 받아 [[강성우]] 배터리코치와 함께 [[kt wiz]]에 합류했다. 2017시즌을 수비코치로 재임한 뒤 2018년에는 수석코치로 승격했다. 2018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8년 12월 12일 [[정경훈]]의 후임으로 [[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 감독을 맡게 됐다. == 기타 == * 2010 시즌 7월, 올스타전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뤄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김용국이 레전드 3루수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의 고전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상당히 없었다. 일단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양준혁]] 등의 대단한 인기와 위의 내야진 3명([[강기웅]], [[김성래]], [[류중일]])에 비해 네임 밸류가 떨어진다는 점. 같은 3루수였던 [[김한수]]의 인지도가 상당했던 탓에 존재감이 미비했던 선수. 어쩌면 [[이영우]]나 [[김태균(1971)|김태균]]의 원조격이었을지도 모른다. *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둘 다 프로 야구선수였지만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몇년 안되어 '''방출당했다'''. 장남 [[김동영(1990)|김동영]]은 김용국 코치와 같은 팀인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는데 [[2013년]] 시즌 중 방출되었고, 차남 김동빈은 [[한화 이글스]] 소속이었으나 [[2012년]] 방출되었다. * LG 주루코치로 활동하던 2002년 [[LG 트윈스]]의 KS 준우승에 어느정도 지분이 있다고 한다(...). ~~친정팀 사랑~~ >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도]]는 이건 여러분들이 심각하게 들어야 되는 문제라고 보는데, > [[LG 트윈스|LG]]가 8회 초에 2점 놓고, 4점 리드했어요, 그때. 4점 리드면 이기는 거예요, 거의 다, > 8회니까. 그런데 4점 들어온 다음에 내가 번트 지시를 했다고. 그럼 번트를 하면, > 보내기 '''번트를 시켰는데 써드 코치가 사인을 놓쳐버렸어요.''' > 근데 거기서 번트를 성공했다, 한 점 들어왔으면 세상의 비난 무지 받았을 거예요. > 근데 내가 냈다고, 냈는데, 코치가 사인을 놓쳐버렸어요. 놓치는 순간에 졌다 싶었다고, > 나는. 이건 거짓말이 아니고, 내가 직감이 왔다고, 졌다 싶었어요. > 아니나 다를까 9회에 뒤집어졌잖아요. 그 문제는, 그게 나한테 좋은 경험이 됐는데, > 그때 그 [[200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한국시리즈는 우승하는 게 목표지, 준우승이 목표 아니에요. > 6차전에서 지든, 5차전이 되든 그런 건 별 문제가 아니에요. > 7차를 어떻게 이기냐 하는 문제였지. 그때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이라고 하는 피처가 클로저였는데, > 이상훈이를 내가 6차전에 써버리면 7차전에 쓸 토막이 안돼요. > 그럼 7차전 못 이기는 거예요. > 물론 흐름이 있으니까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지만, 승부라고 하는 것은. > 그러니까 거기서 번트를 대면 이상훈이 안 쓰고 7차에 갔으면 가능성이 있은 거예요. > 번트 하나 실패하니까 졌다 싶은 거예요 > 마, 그때는 아쉬움이라고 하는 것은 큰 역전패, 마지막에. > 그리고 혼신의 힘이라고 하는 걸 아이들에게서 봤고, > 그때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코리안시리즈, 3단계를 올라왔으니까, > 지칠 대로 지친 한없이 지친 상태였어도 애들은 잘했지 않나 싶은데, > 내가 야구장에서 눈물을 흘린 게 그때가 처음이에요. > 뒤에 기대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 사장은 지니까 기분 좋아서 [[김성근|김 감독]] 수고했어, 그러더라고, > 그리고 결국은 자르더라고요. > > ㅡ 한 강연에서 [[김성근]]이 [[2002년]] [[2002년 한국시리즈|비화]]를 이야기하며. 이 때 번트 사인을 놓친 서드 코치(3루코치)가 바로 김용국. ~~LG 팬 지못미~~ ~~원조 비밀사자~~ * 2015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 [[야마이코 나바로]] 대신 나와서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167549&redirect=true|나는 현역 때 후보에만 올랐었는데, 이렇게 대리 수상이라니... 나바로가 꿈에 나와서 수상 소감을 전해 줬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역대급 수상 소감을 보여줬다. *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올림픽]] 야구 사상 최초의 퇴장 선수다. 야구가 시범 종목이던 [[1984 LA 올림픽]]에서 [[미국]]과의 4강전에서 퇴장당했다.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팀에서 영어가 되는 사람이 자신뿐이어서 항의할 사람이 자기뿐이었다고 한다.[* 팀 통역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뭐 그 당시에 영어 실력이 얼마나 됐겠나만 야구 선수들 중에서는 좋은 편이었던 듯. 이후 [[미국]] 유학에서도 이런 점이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루 태그가 되기도 전에 아웃콜을 부르는 2루심을 보고 2루까지 가서 항의했는데 이것이 묵살당하며 2루심이 무시하며 뒤돌아서자, 돌아보라면서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이게 빌미가 되어 퇴장당한 것. 결국 경기는 2:2로 팽팽하던 승부에서 5:2로 역전패당하고 만다. == 연도별 성적 == ||<-15><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0066b3>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 1985 ||<|9> [[삼성 라이온즈]] || 99 || 306 || .239 || 73 || 14 || 1 || 7 || 37 || 46 || 3 || 36 || .359 || .319 || || 1986 || 108 || 278 || .216 || 60 || 10 || 2 || 0 || 31 || 20 || 6 || 20 || .266 || .261 || || 1987 || 75 || 182 || .264 || 48 || 6 || 1 || 4 || 27 || 18 || 6 || 17 || .374 || .319 || || 1988 || 101 || 333 || .285 || 95 || 11 || 1 || 3 || 42 || 40 || 8 || 35 || .351 || .349 || || 1989 || 98 || 333 || .288 || 96 || 15 || 1 || 9 || 44 || 53 || 8 || 33 || .420 || .348 || || 1990 || 91 || 255 || .220 || 56 || 11 || 0 || 4 || 29 || 29 || 2 || 14 || .310 || .256 || || 1991 || 126 || 403 || .295 || 119 || 21 || 1 || 7 || 58 || 55 || 4 || 56 || .404 || .380 || || 1992 || 121 || 311 || .264 || 82 || 14 || 1 || 6 || 35 || 39 || 4 || 43 || .373 || .353 || || 1993 || 90 || 202 || .208 || 42 || 5 || 0 || 2 || 13 || 22 || 3 || 29 || .262 || .306 || ||<rowbgcolor=#224433> {{{#ff9933 연도}}} || {{{#ff9933 소속팀}}} || {{{#ff9933 경기수}}} || {{{#ff9933 타수}}} || {{{#ff9933 타율}}} || {{{#ff9933 안타}}} || {{{#ff9933 2루타}}} || {{{#ff9933 3루타}}} || {{{#ff9933 홈런}}} || {{{#ff9933 타점}}} || {{{#ff9933 득점}}} || {{{#ff9933 도루}}} || {{{#ff9933 4사구}}} || {{{#ff9933 장타율}}} || {{{#ff9933 출루율}}} || || 1994 ||<|2> [[태평양 돌핀스]] || 121 || 280 || .189 || 53 || 12 || 0 || 4 || 34 || 26 || 3 || 48 || .275 || .302 || || 1995 || 62 || 135 || .215 || 29 || 4 || 1 || 0 || 8 || 11 || 3 || 13 || .259 || .282 || ||<-2><color=#373a3c><rowbgcolor=#ffff99> '''[[KBO]] 통산'''[br](11시즌) ||<color=#373a3c> 1092 ||<color=#373a3c> 3018 ||<color=#373a3c> .250 ||<color=#373a3c> 753 ||<color=#373a3c> 123 ||<color=#373a3c> 9 ||<color=#373a3c> 46 ||<color=#373a3c> 358 ||<color=#373a3c> 359 ||<color=#373a3c> 50 ||<color=#373a3c> 344 ||<color=#373a3c> .342 ||<color=#373a3c> .323 ||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ㄱ]][[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출생]][[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병역특례자/야구]][[분류:삼성 라이온즈 은퇴/이적]][[분류:태평양 돌핀스 은퇴/이적]][[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출신]][[분류:한양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