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동아일보의 역대 회장)] [include(틀:동아일보의 역대 사장)] ||<-2><tablebordercolor=#0f8184><tablebgcolor=#ffffff,#191919><tablealign=right><tablewidth=430> || ||<width=65><colbgcolor=#0f8184> '''{{{#ffffff 이름}}}''' ||김상기 (金相琪 ) || || '''{{{#ffffff 출생}}}''' ||[[1918년]] [[4월 14일]] || || '''{{{#ffffff 사망}}}''' ||[[2011년]] [[7월 3일]] || || '''{{{#ffffff 본관}}}''' ||[[울산 김씨]] || || '''{{{#ffffff 부모}}}''' ||아버지 [[김성수(1891)|김성수]]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언론인, 기업가. == 가족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동아일보 가문)] == 상세 == 1918년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으로 동아일보 창업주인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의 차남이다.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대학]] 상과를 졸업했다. 1957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1963년 4월 [[동아방송]] 개국과 함께 초대방송국장으로서 방송을 진두지휘하고 1974년 2월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동아일보 광고 탄압]] 때 경영합리화조치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가 다음해 재입사했다. 그 후 1981년 3월 2일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는데 취임사에서 그는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기로에 당면한 현 상황에서 [[동아일보]]의 사장 자리는 영광의 좌석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임을 잘 알고 있다.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은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종의 지구전이기 때문에 동아의 과거가 그랬듯,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궁극의 목표를 향해 꾸준하고 의연하게 전진해 나가자"고 말했다.[[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10704/38516698/1|#]] 1983년에는 동아일보 회장에 올라 1989년까지 자리에 있었다. 실제 동아일보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에서 저 발언의 정점을 이뤘다. 동아일보는 사건 직후부터 부검의인 오연상의 증언과 박종철 삼촌의 증언들을 통해 이 사건이 단순 사망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1987년 1월 19일자에서는 12개 면 중 6개면에 걸쳐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질식사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것은 [[6.10 민주 항쟁]]을 촉발한 결정적인 보도였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나온 날에는 서울시내 가판대에서만 동아일보 40만 2800부가 팔리기도 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10703/38507708/1|#]] [[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부안군 출신 인물]][[분류:동아일보 가문]][[분류:1918년 출생]][[분류:2011년 사망]][[분류:김성수(1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