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단양군 출신 인물]][[분류:1881년 출생]][[분류:192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규철}}}[br]金奎喆'''}}}}}}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1년]] [[1월 5일]] ||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보곡리 || ||<|2><color=#fff> '''사망''' ||[[1929년]] [[6월 12일]] || ||[[충청북도]] [[단양군]] || ||<color=#fff> '''직업''' ||독립운동가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규철은 1881년 1월 5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보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내다가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단양을 근거지로 삼아 명상(李明相)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중군장(中軍將)이 되었다. 이후 단양 청풍, 충주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1908년 9월 죽령에서 400여 명을 인솔하고 일본군과 수차례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탈옥했다. 1909년 고종이 [[위안스카이]]에게 보내는 청병서(請兵書)를 가지고 가다가 인천에서 다시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1919년 이범규(李範圭), 남장희(南壯熙)와 합세하여 [[의친왕]]을 모시고 중국으로 망명하던 도중 안동(安東)에서 발각 당하여 실패하였다. 1922년 군자금을 모금하여 독립군에게 전하기 위해 상하이로 가던 중 인천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후에는 [[이강년]]의 창의일록을 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다가 1929년 6월 12일 단양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규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