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시설물)] [include(틀:한강의 댐)] [[파일:attachment/금강산댐/Example.jpg]] [[파일:attachment/금강산댐/Eahhsjse.jpg]] [include(틀:지도,장소=임남저수지)] 본 댐으로 형성된 임남호의 모습이다. 큰 지도로 볼 경우 아랫쪽 파로호와 소양호를 비교하여 엄청난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도상으론 대략 둘을 합쳐놓은 크기다. [목차] == 개요 == [[북한]]에 있는 높이 121.5 m, 폭 710 m의 중력[[댐]]이다. [[북한강]] 상류를 막아 건설하였다. [[평화의 댐]]에서 더 올라가서 [[군사분계선|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넘어가면 나온다. [[대한민국]]에서는 금강산댐이라 부르지만,[* 다만 건설 당시에만 그렇고, 면 이름도 임남면인데다가 평화의 댐 물문화관에서도 임남댐이라 부르는 등 혼용돼서 쓰인다.] 임남댐을 혼용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임남댐'''[* '림남댐'이 아니다. 김화군 임남면의 한자가 '任南'인데, 任의 원음이 '림'이 아닌 '임'이기 때문이다.]이라 부른다. 이 문서에서는 금강산댐으로 통일해서 표기한다. == 수공 == 댐의 크기와 물 수용량이 엄청났기 때문에 [[수공]] 가능성이 처음부터 제기되었다. 1986년 봄 [[대동강]] 갑문공사에 동원되었던 북한군 병력 15만 명이 금강산 쪽으로 이동하였고, 4월 8일에는 [[조선중앙방송]]에서 [[최고인민회의]]가 [[금강산]]발전소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으며, 10월 21일에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금강산댐은 17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3년에 완공되었다. 그래도 평화의 댐이 없던 1980년대만 해도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고, 팔당댐이 방류를 한다고 해도 [[반포대교#s-3|잠수교]]가 잠기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1986년]] [[10월 30일]][* 이 때 [[건국대학교]]에서 [[10.28 건국대 항쟁|전두환 정권을 반대하는 단체의 결성식을 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는 사건]]이 있었고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금강산댐에 쏠린 사이 시위는 다음날인 31일 1525명 연행, 1289명 구속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진압되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19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금강산 근처에 금강산 댐을 지어서 터뜨려서 200억톤 규모의 수공(水攻)을 하려 한다'''는 발표를 했다.[* 발표 당일에는 [[https://youtu.be/5F7OKU8GOJU|특집프로그램까지 방영]]되었는데 생방송이 아니라 발표가 있기 전에 미리 제작하고 발표 당일에 방송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웃음거리가 되기 좋은 얘기지만 그 당시의 북한은 충분히 그런 짓을 할 만한 [[또라이]]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였다. 더군다나 그 땐 북한이 남한을 뒤흔들기 위해서 '''[[미얀마|자기 우방국]]의 성지급 장소에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테러를 일으키고]]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멀쩡한 민항기까지 폭파시키던]] 시대였다.''' 실제로 [[2016년]]에는 [[두만강]]의 댐들이 불안해지니까 '''새벽에 주민들에게 어떠한 통보도 없이 수문을 열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63빌딩]] 중간부(3분의 1이며 20층 높이)까지 [[https://youtu.be/QtY_qc97FJg|물이 들어차는 모형]]이 공개되자 대한민국은 그대로 공포에 휩싸였고[*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난 규탄대회 영상을 보면 당시의 극심한 공포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A1DnIj0VcOU|재향군인회를 포함한 단체가 참석한 규탄대회 영상]], [[https://youtu.be/xsOC2Xnlzrc|전국 각지 주민의 규탄대회 영상]], [[https://youtu.be/gxDhq40M4eU|학생 규탄대회 영상]])] 이후 한국에서는 금강산댐 건설 규탄대회 국민성금과 정부 예산 등을 조달하여 [[평화의 댐]]을 부랴부랴 지어 1988년에 1차 완공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나중에 [[전두환]]도 물러가고, [[노태우]]도 물러가고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다.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그답게 전직 두 대통령에 대한 국정감사를 대대적으로 벌였고, 이 과정에서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주도하에 이 댐의 스펙이 과장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사기극으로 건설된 평화의 댐이었지만, 댐의 효과 자체는 몇 번의 기회로 볼 수 있었다. 1995년, 1996년, 2010년의 강원 북부 지역의 집중호우와 2002년, 2005년 북한 측에서 예고없이 금강산댐의 수억톤에 달하는 물을 예고없이 대량 방류했을 때 이를 막아주었다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188246|기사]]. 이후 2002년, 북한의 금강산댐의 노후화로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댐의 높이를 좀 더 올리는(80m→125m) 등 2단계 공사(보강공사)가 시행되어 2005년 완공되었다. 모두 '''19년''' 만에 완공이 이루어진 것이다. 들어간 예산은 약 3995억원이다. [[파일:attachment/d0133024_4eeb9c8c5fbd2_(1).jpg]] 금강산 댐의 수공가능성에 대한 참고자료다. 금강산댐은 폭 710미터, 높이 121.5미터, 저수용량은 만수위시 최대 59억톤(?)으로 추정되며 실제로도 매우 큰 댐인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고의적인지 북한 토목기술의 한계인지는 모르지만, 금강산댐은 인위적으로 일정 수준 이하로 수위를 낮출 수 없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1인 독재 체제하의 북한상황과 최근 개성의 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일련의 돌발행동으로 볼 때 금강산댐 폭파로 수공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평화의 댐이 없을 경우 북한이 미친 척 수공을 하거나 불안한 구조로 인해 댐이 붕괴되어 26억톤의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유입될 경우 하류댐들은 범람하거나 높은 유속과 수압으로 연쇄 붕괴되어 서울 등 하류도시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으로 예측된다. 평화의 댐은 금강산댐 붕괴시 1차적으로 댐 본체가 홍수로 인한 충격파를 막고 2차로 방류터널로 일정 유량으로 상쇄시켜 방류되어 하류의 댐과 제방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유량으로 조정하는 기능이다. 평화의댐 준공이후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남한에 걸친 집중호우로 북한강 상류의 모든 댐이 만수위가 된 상태에서 금강산댐 마저 고의든 사고든 붕괴가 이뤄지더라도 평화의 댐이 1차로 홍수 충격파를 완화시키고 이후 초당 만 톤 정도 유량으로 방류되면 하류 일부 저지대가 홍수로 인해 침수될 것이나 그 피해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일 것이다. == 여담 == 이 댐이 지어지면서 북한 행정구역상 [[창도군]] 중심지를 비롯한 대부분이 수몰되어버렸다.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김화군]] 통구면, 창도면, 임남면, 그리고 [[양구군]] 수입면에 해당된다. 통구면[* 특히 통구면은 면의 대부분이 수몰되어 통일되더라도 사실상 저수지 물을 빼내거나, 아니면 댐을 폭파시켜버리지 않는 이상 사실상 소멸될 정도로 심각하게 수몰되었다.(...)], 임남면, 수입면은 면소재지까지 잠겨버렸고, 창도면 쪽의 면소재지는 간신히 수몰을 면했다. 그래서 창도군의 중심지는 좀더 북쪽에 있는 지점(광복 당시 [[회양군]] 회양면 신안 일대)으로 옮겨가야 했다. 또한 해당 구간을 지나가다가 일부 폐선된 [[금강산선]]의 흔적이 수몰되면서 지워지고야 말았다. 비록 [[민통선]] 평화의 댐 아래의 사람들에겐 북한의 무단방류에 대한 위험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평화의 댐 상류 민통선 위 북한강 인근에서 근무하는 육군 장병들은 군생활 내내 해당 댐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수 있다.[* 비록 금강산댐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임진강]] 황강댐의 물을 북한이 통지도 없이 무단으로 방류해 2009년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장마철에 임남댐이 수위조절을 위해 방류를 시작하면, 강 옆에 바로 붙어있는 저지대 육군 초소나 단위제대는 잠길수도 있고 실제로 잠긴 적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축선의 GOP/GP(그중에서도 전망이 좋은 소초)에서 근무한다면 경계근무 서면서 이 댐을 실컷 볼 수 있다. 다만 날씨가 어느 정도 맑아야 보인다. 북쪽으로는 금강산댐, 남쪽으로는 평화의 댐이 보이는게 경치가 정말 좋다. 부실공사에다 댐이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남북통일이 되면 안전성 문제로 철거될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상당히 큰 시가지였던 창도면과 서울-금강산 라인의 통구면을 다 물에 말아먹었기 때문에 철거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댐 하나를 건설할때 드는 엄청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고려할때 기왕지어놓은 댐을 보수하여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현시점에선 막연한 추측이다. 2018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남북한 간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43955&ref=A|금강산댐의 공동 활용의 방안이 떠올랐다.]] 금강산댐에서 방류하는 물을 기존의 북한강 쪽으로 되돌려서 북한강 수계의 수자원과 수력발전소들의 발전량을 확보하고, 그 대신 남한에서 전력과 비료 등을 북한에게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이런 효율적 교환이 안 되는 것 또한 통계상 잡히지 않는 분단의 비용... == 관련 문서 == * [[강원도(북한)]] * [[북한]] [[분류:강원도(북한)]][[분류:2005년 설립]][[분류:한강의 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