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1차 세계대전/러시아 함선)] [[https://en.wikipedia.org/wiki/File:Gromoboy1901.jpg|사진]] [목차] == 제원 == || 전장 ||146.5m|| || 전폭 ||20.9m|| || 흘수 ||7.9m|| || 기준배수량 ||12,359t|| || 최대출력 ||14,500hp|| || 최대속력 ||20.1kn|| || 항속력 ||10kn로 8,100해리|| || 무장 ||20.3cm 단장포 4문, 15.2cm 단장포 16문, 7.5cm 단장포 24문,[br] 47mm 기관포 12문, 37mm 단장기관포 18문, 63.5mm 상륙포 2문,[br] 맥심기관총 4정, 45.7cm 수중어뢰발사관 2기, 기뢰 200발|| || 탑재기 수 ||없음|| || 승원 ||815명|| || 동형함 ||없음|| == 개요 == 그로모보이는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은 없다. 함명은 [[키예프 공국]] 시절의 대문호인 그로모보이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1898년 5월 7일에 발트 공장에서 기공한 그로모보이는 1899년 5월 8일 진수 후 1900년 9월에 완공, 취역하여 발트 함대에 편입되었다. == 활동 == 1903년에 창설된 제 1 태평양함대 [[블라디보스톡]] 소함대에 소속된 그로모보이는 [[러일전쟁]]에 참전하여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에 이르는 일본의 해상통상로에서 [[통상파괴전]]에 종사했다. 개전직후인 1904년 4월 12일에는 <하기누라마루>, 4월 13일엔 [[원산]]으로 향하던 수송선 <킨슈마루>, 6월 2일에 3,900톤급의 대형수송선 <이즈미마루>와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육군소속 수송선인 <히다치마루>를 [[현해탄]]에서 격침했다. 이어서 7월 4일부터 19일까지 일본의 스쿠너선 6척과 영국의 증기선 <나이트 커맨더>, 독일 증기선 <테어>를 격침했다. 1904년 8월 14일에는 [[울산]] 앞바다에서 같은 장갑순양함을 주력으로 편성된 [[일본해군]] 제2함대와 조우하여 전투가 발생했는데(울산 해전), 이 전투에서 동료함 [[류리크(순양함)|류리크]]가 격침당하고 중파된 그로모보이는 전사자 91명, 부상자 185명을 냈다. 1905년 2월말까지 수리를 받은 그로모보이는 1905년 5월 11일에 루스키 섬 연안에서 [[기뢰]]와 접촉폭발하는 바람에 9월까지 수리를 받았다. 1905년 4월 25일부터 28일까지 그로모보이는 4척의 일본상선을 격침시켰다. 러일전쟁 종결 후 그로모보이는 다른 함과 함께 [[발트해]]로 돌아갔다. 1907년부터 1911년에 걸쳐 [[크론슈타트]] 증기선 공장에서 오버휠 조정을 받은 그로모보이는 보일러를 교체하고 8문의 152mm 포와 선수 부분의 203mm 포에도 포곽을 장비했다. 수중[[어뢰]] 발사장치도 45.7cm의 2문으로 교체했다. 1914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그로모보이는 [[핀란드]]만에서 순항임무에 종사했다. 1915년 6월에 다시 개장공사가 이루어져 기관포와 고각포를 강화한 그로모보이는 1916년 6월에 통상파괴와 습격작전에 종사하다가 1917년 2월의 [[러시아 혁명#s-2.3|2월 혁명]]에서 [[러시아 혁명#s-2.4|러시아 임시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10월 25일에 발생한 [[볼셰비키]]의 [[러시아 혁명#s-2.7|10월 혁명]]에서 [[러시아 혁명#s-2.8|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가 [[소련 해군|적색 발트함대]]에 편입되었다. 11월 26일부터 27일에 크론슈타트로 이동한 그로모보이는 1918년 5월 이후 크론슈타트 군항에서 장기보관상태에 들어갔는데 1919년에 152mm 포를 철거하고 [[리가]]를 방어하는 해군부대에 주어졌다. 1922년 7월 1일에 러시아와 독일의 합자회사인 독일 러시아 금속회사에 매각된 그로모보이는 10월 12일에 해체를 위해 독일로 예인하던 도중 30일에 폭풍을 만나 외항에서 침몰해 후에 인양 후 해체되었다. 출처:헤인사 <러시아/소련해군 순양함사> [[분류:순양함]][[분류:해상 병기/근대]][[분류:해상 병기/세계 대전]][[분류:1900년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