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조선]] 전기 [[함경도]] 영흥(永興)의 [[기생]]인 소춘풍(笑春風)이 당시 왕이었던 [[성종(조선)|성종]] 앞에서 창작한 3수의 [[한글]] 권주가. [[해동가요]](海東歌謠), [[청구영언]](青丘永言)에 그 시조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내용 == 조선 성종(1469~1494) 때의 함경도 영흥(永興) 기생이었던 소춘풍(笑春風)이 왕인 성종의 총애를 받아 선상기(選上妓)가 되어 궁중의 연회에 참석하였을 때 지은 3곡의 시조이다. 성종이 연회에서 대신들에게 소춘풍의 기재를 자랑하며 즉석에서 싯구를 짓게 하자 바로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지었다. ||唐虞(당우)를 어제 본 듯 漢唐宋(한당송)을 오늘 본 듯 ||요순 태평 시대 어제 본 듯 한당송 시대 오늘 본 듯 || ||通古今(통고금) 達事理(달사리) 하는 明哲士(명철사)를 어떻다고 ||예부터 사물 이치 밝으신 선비를 그냥 두고 || ||저 설 데 歷歷(역력)히 모르는 武夫(무부)를 어이 쫓으리 ||제 분수 똑똑히 모르는 무사를 어이 내가 따르리 || 이에 문신을 높이고 무신을 깔아 낮추는 내용이라 하여 그 자리에 있던 무신들이 불쾌해했다. 그러자 웃으며 바로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지었다. ||前言(전언)은 戱之耳(희지이) 라 내 말씀 허물 마오 ||앞 말씀 농담 이오니 내 말씀 허물 마소서 || ||文武一體(문무일체) 인 줄 나도 暫間(잠간) 아옵나니 ||문무가 같은 줄 나도 조금 아옵니다 || ||두어라 赳赳武夫(규규무부)를 아니 쫓고 어이리 ||어째서 용맹스런 무사를 아니 따를 수 있겠습니까 || 이에 무관들이 흡족해 하였으나 이젠 문관들이 삐질려고 하자 또 다시 웃으며 바로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지었다. ||齊(제)도 大國(대국)이요 楚(초)도 亦(역) 大國(대국) 이라 ||제도 큰 나라요 초도 역시 큰 나라다 || ||조그만 螣國(등국)이 間於齊楚(간어제초) 하였으니 ||조그만 등국이 제 나라와 초 나라에 끼었으니 || ||두어라 이 다 좋으니 事齊事楚(사제사초) 하리라. ||차라리 다 좋은 일이라 제도 섬기고 초도 섬기리라 || 이 마지막 시조까지 모두 듣고나자 그 자리에 있던 문관과 무관 모두가 기뻐하며 기생 소춘풍의 재능에 크게 감탄하였다고 한다. 왕 앞에서 문관과 무관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대담함과 순발력 있는 재치, 그리고 연회를 화락한 분위기로 이끌며 즐거움을 더하는 기지가 일품인 작품들로 기녀 시조 특유의 멋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월탄 [[박종화]]는 어째서인지 소설 '세종대왕'에서 성종대의 인물인 그녀와 이 권주가를 뜬금없이 [[태종(조선)|태종]]대에 등장시킨다. 심지어 그녀의 딸인 비오리는 '''한글창제'''에 사실상 주역으로 참여(...) 더 어이가 없는것은 권주가의 배경이 문관과 무관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그냥 쓸개빠진 권신을 희롱하기 위한 것으로 각색된데다가, 작가가 쓰다가 설정을 까먹은것인지 소춘풍과 비오리가 등장하기 한참 전에는 가희아라는 [[이숙번]]네 집 가희가 등장해 태종이 참석한 연회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의 권주가를 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희아는 무려 [[효빈 김씨]]가 된다(...)[* 실록에서 언급하기로는 효빈 김씨는 원경왕후 민씨의 몸종 출신이다.] == 바깥고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79118&cid=41708&categoryId=41732|한국고전여성시사 : 소춘풍]]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89439&cid=41708&categoryId=41711|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소춘풍]] * [[http://www.sijomunhak.com/gnu4/bbs/board.php?bo_table=gosijo&wr_id=328|笑春風 고시조 3편감상]] [[분류:시조]] [[분류:조선시대 여성의 저서]] [[분류: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