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소련]][[분류:교정시설]][[분류:인권 침해]] [목차] == 개요 == 굴라크(ГУЛАГ / GULAG)는 [[소련]]의 [[정치범수용소]]이자,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노동교화소]]의 유래가 된 기관이다. '굴라그'로도 알려져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러시아어|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어말 자음이 무성음화된 '굴라크'이다. [[러시아어]]로 '통합국가정치보안부[* 러시아어 정식 명칭은 '소련 인민위원평의회 산하 통합국가정치보안부(Объединённое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политическое управление при СНК СССР)'이다.] 교정노동수용소 총국('''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исправительно-трудовых '''лаг'''ерей ОГПУ, ГУЛаг)' 혹은 '수용소 총국('''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лаг'''ерей, ГУЛаг)'의 [[두문자어]]이다. == 기원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Gulag_Location_Map.svg.png|width=100%]] || 1918년부터 1988년까지 소련에서 운영되었던 굴라크들.[* 러시아어로 쓰인 도시들은 왼쪽 위부터 [[무르만스크]](Мурманск), [[아르한겔스크]](Архангельск), [[탈린]](Таллинн),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 [[리가]](Рига),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 [[빌뉴스]](Вильнюс), [[민스크]](Минск), [[키예프]](Киев), [[키시너우|키시뇨프]](Кишинёв), [[로스토프나도누]](Ростов-На-Дону), [[트빌리시]](Тбилиси), [[모스크바]](Москва), [[카잔(러시아)|카잔]](Казань), [[페름]](Пермь), [[볼고그라드]](Волгоград), [[아스트라한]](Астрахань), [[바쿠]](Баку), [[아시가바트|아시하바트]](Ашхабад), [[보르쿠타]](Воркута),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살레하르트]](Салехард), [[예카테린부르크|스베르들롭스크]](Свердловск), [[옴스크]](Омск), [[카라간다]](Караганда), [[비슈케크|프룬제]](Фрунзе), [[타슈켄트|타시켄트]](Ташкент), [[두샨베]](Душанбе), [[알마티|알마아타]](Алма-Ата), [[노릴스크]](Норильск), [[노보시비르스크]](Новосибирск), [[크라스노야르스크]](Красноярск),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야쿠츠크]](Якутск), [[스보보드니]](Сбоводный), [[마가단]](Магадан),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본래 [[시베리아]] [[식민지]]와 불모지대의 개척을 위해 [[제정 러시아]]에서 정치범들을 대거 동원해 척박한 땅에서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도시 기반을 닦는다거나, 운하를 파는 일을 맡겼었다. 이것이 소련의 굴라크 제도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적백내전]] 때부터 체제가 운영되었고, 조직적이고 정교한 탄압은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정권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 수감자의 종류 == * 정치범 정말로 체제 비판자일 수도 있고, [[높으신 분들]]의 비위에 맞지 않거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분 내지는 그의 가족들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 피해자 태반은 무슨 진짜 러시아 혁명 이전 짜르정과 정교회 복구를 추구하며 소련정권과 반대하던 순수한 의미에서 '반동'이 아니라 소련과 공산권 내 권력 투쟁의 피해자거나 이런 저런 노선에서 반대한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훨씬 많았다. [[대숙청]] 문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은 수감자로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NKVD]] 같은 기관의 고위급 간부가 아닌 중하위 간부나 말단 대원의 경우는 얼마 후 석방되어 수용소 간수나 경비병으로 살 수 있었다. 물론 수용소 간수나 경비병도 식량 부족 같은 걸로 고생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도 초반부에 간수실을 청소하는 주인공 옆에서 간수들이 식량 배급 문제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런저런 일로 외국에 갔다가 오는 경우도 간첩 혐의로 몰려서 가는 일이 빈번했고.[*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수용소 군도]]에 의하면 소련 선박이 기상 악화로 [[스웨덴]]에 표착했고, 어느 정도 억류 생활을 한 후에 승조원 전원이 굴라크로 직행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독소전쟁]]에서 취득한 [[독일 국방군]]의 장비나 훈장을 개인적인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가 들켜서 난데없이 [[반동분자]]가 되어 굴라크로 향한 예도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해군]]에 연락 장교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여 전후 영국 해군 제독에게 기념품과 편지를 받은 [[소련 해군]] 장교도 굴라크로 간 이야기가 나온다.[* 작중에서는 나오는 부이놉스키 중령. 매우 꼿꼿한 인물로 나오는데, 실존 인물이고 놀랍게도 굴라크에서 생존해서 스탈린 사후 석방되었다고 한다.] 대숙청의 세밀한 역사적 면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에선 놀랄법한 사실이지만 정치적 억압이 가장 극심했던 스탈린주의의 전성기, 30년대 후반 굴라그 끌려온 정치범들은 태반이 '''바로 그 국가 보안기관, 정치경찰 그 자체인 [[NKVD]] 출신'''이었다. 애초에 조직 자체가 트로츠키가 만들었고, 이때 한창 소련 내에서 일국사회주의 노선이 공식적으로 자리 잡았는지라 해외 파견 다니면서 다양한 국제 정치 집단들과 교류할 일이 많았던 NKVD가 집중 숙청 대상이 되었다. 스페인에서 비공산 독립 좌파 세력 숙청을 주도하다 바로 본인도 소련 귀국하자마자 숙청당한 [[안토노프 오브셴코]], 국제여단을 이끌며 한때 마드리드의 수호자라 칭송받은 '클레베르 장군'이란 가명으로 유명한 만프레드 스테른 같은 스페인파가 대표적인 토사구팽 피해자였고,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에서 모두 활약한 [[바실리 블류헤르]], [[미하일 보로딘]] 같은 중국파 공작원, 군무원들도 많은 수가 이때 영문도 이유도 모른체 갑자기 귀국'당하자'마자 굴라그로 끌려가 최후를 맞았다. * 전쟁 포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적국에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사람들은 일단 비겁 내지는 간첩 혐의로 거의 전원 굴라크로 직행했다. 심지어 '''포로 수용소를 탈출'''해서 전선에 복귀한 사람도 간첩 혐의로 25년 굴라크 수감을 언도받는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주인공이 바로 이 혐의였다. 다만 형량은 10년이었고, 작중에선 약 8년을 보내고 2년 정도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작중 언급으론 형량이 개개인마다 다른 게 아니라 시기별로 일괄적으로 10년을 선고하거나, 25년을 선고했다고 나온다. 즉, 주인공은 일괄적으로 10년 때릴 때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물론 포로 기간 중에 [[자유 러시아 군단]] 같은 곳에 자원했다면 굴라크고 뭐고 [[끔살|없다]].] 다행히도 이들은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 정권 때 석방과 복권이 되었다. * 외국인 [[소련]] 치하의 [[폴란드인]], [[독일]]의 소련 점령 지구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체포된 [[독일인]]과 [[프랑스인]]들이나, [[냉전]] 시기 소련 정찰 중 실종된 조종사들[* 이 경우는 당연히 의혹 수준이고 아직도 작전 중 실종으로 기록된다.]이 여기에 수용되었다. 소련에서 [[스파이]] 혐의로 실종된 [[미국인]]들[*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 공황 전후에 '''[[미국]]에서 [[소련]]으로 이민 간''' 미국계 공산당원과 그 가족들이다.]이나 [[스페인 내전]] 중 소련으로 건너간 스페인 공산당원들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인도]] 국민군의 영웅 [[찬드라 보세]] 역시 시베리아 사망설이 심도 있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2차대전 전시 및 그 이후, 전시의 적성국가인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포로들 역시 굴라크에 수용된다. 이들 중 소련 체제에 협조적인 사람들은 [[1950년대]]에 석방되지만 대부분은 당사국이 소련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때까지 억류됐다. * [[고려인]]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전후 상당히 많은 고려인들이 굴라크에 이송되었다. [[김단야]], [[조명희(시인)|조명희]] 같은 재소련 반일 [[독립운동가]]들도 이런 식으로 숙청되었다.[* 다만 이들의 운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MBC]]에서 방영된 고려인 드라마에서 조명희는 굴라크 폭동에 연루돼서 사망한 것으로 그렸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재판 후 처형이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완역판에서도 고려인들이 수용된 이야기가 버젓이 실릴 정도였다. 해방 이후 소련군정에 반대한 인사들 중 상당수가 굴라크로 이송되었는데, 이들은 [[스탈린]] 사후 [[북한]] 이송과 [[소련]] 잔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북한 이송을 선택한 후 이송 도중 탈출한 고려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탈출한 이들의 행선지는 대부분 일본이다.], 소련에 잔류한 사람들의 수용소 기록이 90년대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관동군]]에 복무하던 조선인 장병들 역시 굴라크로 이송되었는데, 이들은 식민지 출신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았고, 대부분 40~50년대 본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6.25 전쟁]] 당시 [[빨치산]]으로 활약한 황학소의 경우도 이런 식으로 귀환한 케이스. 처음에는 북한으로 보내졌지만, 북한 당국도 고향이 이남이고 본인이 고향으로 가기를 원하면 그냥 38선 월경을 허가해주었다고 한다. 이들의 귀환은 [[6.25 전쟁]] 직전인 48~9년도경에 이루어졌는데, 그나마 이 때 송환 결정이 이루어졌기에 망정이지, 6.25 전쟁 발발 이후에는 [[사할린 한인]]들처럼 소련에 발이 묶이거나 북한에 남아야 했을 수도 있다. 송환 후에 [[삼팔선]]까지 왔지만, 넘어오는 과정에서 [[한국군]]으로부터 오인 사격을 당하는 등, 고향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고생했다고 한다. 소련 억류자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사해문집)"을 참조하면 좋다.] 남한에서 활동 중인 삭풍회라는 단체가 바로 구 [[일본군]] 출신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전우회이다. 그들과 별개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도 [[NKVD]]가 다스리는 북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체포해서 본토로 압송하여 굴라크에 구금했는데, 대부분은 못 나오고 거기서 삽질하다가 죽었다. 더러 반공 독립운동가들[* 자유시 참변과 소련 지원금 횡령 사건 때문에, 소련과 친소련계를 싫어하는 독립운동가가 많았다.]도 공산당원들이 친일파로 모함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구금되기도 했다. * [[독일계 러시아인]] [[독소전쟁]]의 개막으로 날벼락을 맞았다. * [[사보타주]] 정말로 사보타주일 수도 있지만 상습 지각[* 당대의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지각시 20분당 징역 1년. 아래 할당량 항목에 해당하는 얘기인데, 각 지역의 인민경찰(밀리치야)이 할당량을 못 채운다면 근처 출근 버스를 덮친 다음 적당한 누명을 씌우고, 또 버스를 덮치고 연행한 시간들도 지각죄로 징역을 때렸다.]이나 근무 중에 졸았거나, 집단 농장에서 기물을 파손했거나, 자기가 속한 특정 기관의 예산을 낭비[* 횡령 같은 게 아니라 기술 개발 실패 등의 문제다. 안드레이 투폴레프가 바로 이 혐의로 굴라크에 갔다. 그는 1937년에 투옥되어 1944년에 석방되었다.]했다는 이런저런 혐의로 끌려갔다. * 일반 죄수 그야말로 [[살인]], [[강도]], [[강간]] 등의 강력범들도 굴라크 행이었다. 이런 타입의 인간들은 수용소에서도 내부 조직을 만들어서 잘 먹고 잘 살고 간수들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지냈다. 위에 설명한 혐의로 들어온 일반인들은 식량, 금품, 목숨을 뺏기게 된다. 수용소 당국보다 가장 무서운 쪽이 바로 이런 죄수들이었다.[* 애플바움의 [[굴락]]에 의하면 50년대 2명의 [[미국]] 조종사가 굴라크에 이송된 정황이 있었는데, 1명은 [[모스크바]]로 이송되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런 일반 죄수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한다.] * [[내무인민위원회]]가 지휘하는 인민경찰(밀리치야)의 '''할당량''' 때문에 끌려온 사람 [[대숙청]], [[형벌 부대]] 참고.[* [[대한민국]]에서도 1980년대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삼청교육대]] 참고.] * 종교인 [[국가 무신론]]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회]], [[이슬람]], [[유대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었던 종교인들도 수감되었다. == 수감자의 숫자 == 1929년부터 1953년까지 대략 총 '''1400만 명'''이 굴라크를 거쳐갔다고 하며,[* 이것도 1929년부터 1953년까지 따진 거고 그 이전인 1918년부터 1929년 사이에는 정확히 몇 명 끌려갔다 나왔는지 측정이 어렵다고 한다.] 추가로 600~700만 정도가 국외나 소련의 오지로 추방당하고, 여기에 400~500만 명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감금 되었고, 350만 명이 강제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출처: Robert Conquest, Victims of Stalinism: A Comment.] 이 중 사망한 사람은 대략 '''최소 160만[* 출처: Steven Rosefielde, Red Holocaust.]에서 최대 1000만[* 출처: Robert Conquest, The Great Terror: A Reassessment.]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이오시프 스탈린|양반]]이 [[백정#s-2|인간백정]]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아래는 대략 연대순으로 굴라크 감금 인원을 추정한 값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Gulag#History_of_Gulag_population_estimates|영어판 위키백과 자료 차용]]. || 굴라크 수감자수 || 그 해의 수감자 추정인원 || 출처 || 검증방법 || || 1500만명 || 1940~42년 || 모라와 즈비에르나크(1945)[* David Dallin and Boris Nicolaevsky, Forced Labor in Soviet Russia.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47), p. 59-62.] || 미상 || || 230만 || 1937년 12월 || 티마셰프(1948)[* Timasheff. The Postwar Population of the Soviet Union.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 54, No. 2 (Sep. 1948), pp. 148-155.] || 권리를 빼앗긴 인구를 계산함 || || 최대 350만 || 1941년 || 야스니(1951)[* Naum Jasny. Labor and Output in Soviet Concentration Camp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 59, No. 5 (Oct. 1951), pp. 405-419.] || 소련 NKVD 사료 분석 || || '''5000만''' || [[스탈린]] 치하에서 굴라크를 거쳐간 인원의 종합수 || 솔제니친(1975)[*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제2부, Harper and Row, 1975. Estimate was through 1953.] || 수많은 증인의 간증과 솔제니친 본인의 경험, 그리고 다양한 간접적 자료를 분석 || || 1760만 || 1942 || 안토노프-옵세옌코(1999)[* Beria Moscow, ACT, 1999, page 203.] || NKVD 문서 || || 4~500만[* 후에 하향조절함.] || 1939 || 휘트크로프트(1981)[* Wheatcroft. On Assessing the Size of Forced Concentration Camp Labour in the Soviet Union, 1929–56. Soviet Studies, Vol. 33, No. 2 (Apr. 1981), pp. 265-295.] || 인구 통계학적 자료 분석 || || 1060만[* 후에 하향조절함.] || 1941 || 로즈필드(1981)[* Steven Rosefielde. An Assessment of the Sources and Uses of Gulag Forced Labour 1929–56. Soviet Studies, Vol. 33, No. 1 (Jan. 1981), pp. 51-87.] || 모라와 즈비에르나크의 자료와 연간 사망률을 기반으로 함 || || 550~950만[* 후에 하향조절함.] || 1938년 후반 || 콩퀘스트(1991)[* Robert Conquest. Excess Deaths and Camp Numbers: Some Comments. Soviet Studies, Vol. 43, No. 5 (1991), pp. 949-952.] || 1937년 인구조사 수치, 체포와 사망자 인원 추정, 다양한 개인 및 문학들을 기반 || || 4~500만 || 매년 || 볼코고노프(약 1990)[* Rappaport, H. Joseph Stalin: A Biographical Companion. ABC-CLIO Greenwood. 1999.] || 미상 || == 노동과 생활 == 백해 운하, [[TSR]] 노선의 건설, 2차대전 시기 [[소련]]의 산업 생산 중 상당부분이 여기에서 나온 성과였다... 노동 수용소에 수용된 죄수들에게서 뭐 뽑아낼 게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소비에트 러시아가 굴러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다. 특히 스탈린 시절은 굴라크가 대규모로 확대되고 생산량도 폭증했던 시기. 스탈린의 통치 하에 굴라크의 주요 목적은 러시아 내륙의 미개발지를 '식민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소련의 경제 개발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죄수들은 금광, 목재, 니켈, 다이아몬드, 주석 등의 천연자원 생산에 투입되었고, 보너스로 그 곳에서 관련 인프라와 산업도 발전시키게 되었다. 수용자들이 특히 많이 투입된 작업은 러시아 북부 지방의 목재를 베는 일이다. 1차 5개년 계획으로 이동 된 죄수 집단은 1934년에 우랄 목재 산업의 전체 인원 중 90% 이상을 차지하였다. 당시 우랄 공업 노동자 가운데 죄수 집단이 차지한 비율인 40~80%보다 좀 더 높은 비율이다. 1930년에 우랄 주가 131,922명의 인원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최소한 1만 명 이상이 목재 관리 일에 투입되었다. 굴라크는 계속 존속되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업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책임졌으며, 단순노동에만 투입됐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엘리트 두뇌들도 상당수 굴라크에 투옥돼 무기 개발과 개량을 책임졌다. 개발이 성공했을 경우의 인센티브는 주로 '''형량 감경'''. --조기전역-- 어찌 보면 가장 확실한 인센티브라고 할 수 있을지도. 스탈린 시절 소비에트 러시아는 문자 그대로 '수용소에서 공돌이가 갈려들어가는' 나라였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그 시절에 수학을 대단히 잘했다는 전력 때문에 잠시 이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얼마 뒤 벽돌을 날랐다. 그의 책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따르면, 시베리아답게 영하 30도 정도는 따뜻한 날씨이며, 작업장의 난로는 수감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산품이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음식은 1끼 200g 정도의 빵과 너무 오래 끓여서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국[* 보통 생선이나 오래된 야채가 들어가는데, 때때로 식량이 부족할 때는 사료용 귀리, 심지어 들풀로도 국을 끓인다. 다른 작품에서는 '무만 넣고 끓인 맹탕 같은 수프' 가 나오기도 했다. 그냥 아무거나 넣고 끓이는 건가 보다.]이다. 강도 높은 처벌을 위해 '중영창'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 갇히면 15일도 살아남기 힘들고 살아남더라도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 회복하기 힘들다고 한다. 수용소에 따라서는 외부로부터의 소포도 허용된 모양. 뇌물로 쓰인다. 과학자들이 주로 수용된 노동 수용소를 '샤라쉬카'라고 부르며, 유명한 과학자들도 상당수가 저 곳에 투옥되어 갈려들어갔다. 예를 들면 러시아 우주개발의 아버지 격인 [[세르게이 코롤료프]], 로켓엔진 설계자인 발렌틴 글루슈코, 항공기 설계자인 안드레이 투폴레프와[* 폭격기로 유명한 투폴레프 [[설계국]]의 수석설계자.] 페틀랴코프, 미야시시체프, 폴리카르포프 등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소련의 핵개발]]에도 이 굴라크의 인력을 동원했다. 단, 이 부분이 와전되어서 어차피 죽을 죄수들이니 방사능에 오염되는 위험한 일을 일부러 맡겼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냉전식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굴라크 죄수들이 동원된 건 주로 천연 우라늄을 채굴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광산의 채굴 작업이 안전하고 편안한 일일 리는 없지만, 적어도 방사능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자연 상태의 천연 우라늄은 방사능 수치가 매우 낮아서 큰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방사선 피폭의 위험이 있는 본격적인 핵연료 가공 등의 작업은 해당 기술이 있는 전문 노동자들이 따로 담당했다. 미국에서도 이런 천연 우라늄 채굴은 평범한 민간 광부들이 맡았다. 굴라크에서의 생활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에서 잘 표현돼 있다. 솔제니친이 훌륭한 작가이기도 했지만, 그가 그러한 곳을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 솔제니친 자신이 직접 그러한 수용소에서 오래 살아봤기 때문이다. 국가 반역죄인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다 스탈린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을 [[노땅]], [[꼰대]]류로 비하한 것이 발견되어서이다. 굴라크의 벽돌 노동자부터 지식 수용소 인원, 유형지 생활까지 죽는 거 제외하고는 상당한 코스를 밟았다.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가한 뒤 소련 당국으로부터 귀국이 불허되어 이후 1994년까지 [[소련]]에 돌아오지 못했으며, 2008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또한 [[예수회]] [[신부(종교)|신부]] 월터 치세크(Walter Ciszek)의 자서전인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With God In Russia)'에서도 굴라크의 생활과 출소 후의 소련 생활에 대해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사람은 [[폴란드계 미국인]] [[가톨릭]] [[신부(종교)|신부]]로,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 있다가 [[바티칸]] 스파이로 지목되어 붙잡혀 15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여러 굴라크를 돌아다니며 15년간 강제노동을 했고, 풀려난 뒤에도 감시와 거주 제한이 딸린 제한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다 1963년 미국에 침입했다 잡힌 소련 첩보원 2명과의 교환 조건으로 [[소련]]에 억류된 2명의 미국인을 풀어주는 일이 있었는데, 월터 치세크는 이 기회를 통해 23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미국에서 종교활동에 전념하다가 1984년에 [[선종(가톨릭)|선종]].] 소련의 굴라크는 정말 최악의 장소라고 생각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고, 굳이 비유하자면 [[정치범수용소/북한|북한 정치범수용소]]나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보다 조금 덜한 정도였다. 그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원조도 굴라크이고, 논픽션 [[굴락]]의 저자 애플바움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구 [[소련]]의 그 곳과 '''가장 근접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에 따르면 [[그린 엘리펀트|간수가 똥을 먹인다던가]] 하는 일도 있다. 한편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1930년대부터 노동자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누구나 경쟁하는 스타하노프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관련한 포상들 가운데 기묘한 것이 있었다. 우수한 실적을 올린 노동자는 여자 죄수 수용소에 위로휴가를 갈 수 있었다. [[임신]]을 하면 3년을 감형시키는 소련 법률 때문에 여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성관계|검열삭제]]를 원했고 [[강간]]도 횡행했다고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간수에게 뇌물을 주면 원하는 여자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다. 노동자의 포상도 해결할 수가 있고, 임신을 원하는 여자들을 대체 누가 임신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쓸데없는 고민도 해결할 수가 있고. 궁극적인 목표인 인구의 증가도 해결할 수가 있다. == 석방? == 스탈린 시대에는 최고 유기징역형인 25년 징역형을[* [[소비에트 연방]]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 소비에트]]의 [[형법|형법전]]에 따르면 사형, 25년 후 가석방이 가능한 무기징역, 25년 징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러시아 연방]]의 [[형법|형법전]]도 그대로 계승했는데, 사형이 사문화되면서 현재는 최대 25년 형과 무기징역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마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그런 거 없다'''. 대신 미개척지이거나 소외지인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에서 평생 유형 생활을 한다. 이곳은 비록 강제노동이나 수감, 고문 이런 건 없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감시받는[* 박헌영의 전처는 딸을 [[모스크바]]에 두고서도 유형 생활 때문에 가끔 방문만 허가 받았다.] '''시민'''으로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8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1953년 석방되었는데, 3월 2일 유형지인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카자흐스탄]] 남부 비를리크에 유배되어 나흘 뒤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종양이 도져 이듬해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유형지를 옮겨 치료를 받고(이 때의 경험이 바로 암병동이라는 소설에 나온다), 그 후 교사 노릇을 하는 유형 생활을 했다. 동물원에 주말에 놀러가거나 아플 때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정도의 자유를 누리긴 했다. --군대에서는 외진이란 형태로 경험할 수 있다--] 그나마 유형 생활 도중에 체포되거나, 집에 다시 갔다가 체포돼서 20년형을 받는 일도 많아졌는데...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사후에는 이런 악습은 사라졌고,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이후에는 유형을 받은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런 케이스 중에 기구한 것은 [[북한]] 정권에 반대한 혐의로 투옥된 [[반공]] 인사들이다. 이들은 소련 군정에 의해서 체포돼서 굴라크에 수감되었는데 스탈린 사후 '''북한으로 송환'''되는 일을 겪는다. 물론 상당수는 중앙아시아 잔류를 택하지만... ~~다행이다~~] == 변화 == 1953년 4월에 [[소비에트 연방]]의 연방 대법원이 '의사들의 음모' 사건과 '민그렐리야' 사건에 대하여 심리를 취소했으며, 사건에 연루한 사람들의 석방과 복권을 실행했다. 1953년 9월에는 [[소련 장관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장관회의]]가 트로이카[* [[소련 공산당]]의 [[지구당]] 서기, [[검찰|지방검찰청]]의 검사장, [[내무인민위원회]]의 지부장이 움직이는 3인조.] 제도를 폐지했다. 1954년 4월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연방 대법원이 '레닌그라드' 사건에 대하여 심리를 취소했으며, 사건에 연루한 사람들의 석방과 복권을 실행했다. 1954년 4월부터 1956년 1월까지 [[소련 공산당]]은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당에서 제명한 당원들을 복당했다. 1954년 5월에 [[소련 최고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최고회의]]가 입법한 [[특별법]]은 반혁명 범죄로 기소한 사람들의 석방을 허용하면서 정치범들과 경제범들에 대하여 대규모로 [[사면]]을 베풀 수가 있는 길을 닦았다. 동시에 [[소련 공산당]]은 정치범들과 경제범들 가운데 '근거가 없는 정치적인 죄상을 이유로' 출당한 당원들을 복당했다. 때마침 [[노릴스크]], [[보르쿠타]], 켄기르, 콜리마에서 죄수들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수용소의 [[유지비]]가 광공업의 [[기계화]]와 [[자동화]] 비용을 초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북한]]도 아닌 나름 공산권의 수장이며 현대국가인 소련이 이들을 비밀리에 다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초에 반대파를 일가족까지 모조리 수용소 보내서 죽인다는 발상 자체가 [[북한]]외에 그 사례를 찾기 힘들다. 굳이 일시적인 사례를 찾자면 1970년대의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아시아권 공산 국가들 중에 몇 있긴 하지만, 북한과 달리 전쟁 직후 혼란기였고 또 몇 년 가지 않았다.] [[소련 장관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장관회의]]가 결단을 내려 [[사면]]을 베풀었다. 1956년 2월에 열린 [[소련 공산당대회|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가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악행을 규탄하면서 희생자들의 복권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다. 덕택에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신나게 까던 시절쯤에는 굴라크에서 강제노동의 비중도 줄었고, 석방한 다음에 재투옥하는 법제를 차례로 폐지했으며, 유형 생활자도 석방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이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 정권 시기부터 [[유리 안드로포프|안드로포프]] 정권 시기까지 다시 강화되었지만, 이 때는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도 어느 정도 굴라크의 실태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굴라크에 주요 정치범이 수용되었다는 소식이 서방에 알려지면 '''서방에서 지속적인 석방요구'''와 생존 사실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스탈린 시절에는 그런 거 없이 서방에서도 "설마 그런 게 있겠냐"는 [[도시전설]] 수준... 이었으나, 굴라크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자유 폴란드군]] 장교들을 통해서 서방도 공식적으로 굴라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반대파를 놔둔 것은 아니다. 스탈린 사후의 [[소비에트 연방]]은 굴라크보다도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했는데, [[정신병원]]에 수감하거나 출당 후 가택연금으로 아예 대외적인 활동을 물 샐 틈 없이 차단하는 술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법을 최초로 쓰기 시작한 [[흐루시초프]]부터 숙청당한 뒤에는 그 대상이 됐다.] 내부적으로는 제명이라고 불린 방식인데 브레즈네프 정권과 안드로포프 정권의 관점에서 고려해도 굴라크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술책을 편리하게 잘 쓰는 마당에 굴라크 체계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크게 만들어 본들 이미지만 나빠지고 또 인재라는 게 갑자기 필요할 때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유사시 필요하다 싶으면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다. 당장 독소전쟁 때도 반대파 인사들 중에 쓸만한 사람들은 석방해서 독일과의 전쟁에 써먹은 전력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도 수많은 반체제 인사들을 오지에 구금하는 수단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콜리마와 [[노릴스크]]와 [[페름]]에서 정치범과 경제범을 대규모로 구금하는 수용소를 운영했지만, 기본적으로 굴라크가 아니라 일반적인 교도소 수준이었고, 목적도 수용소에 가둬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둬놓고 세뇌시키는 쪽에 더 가까웠다. 1990년대에 [[소비에트 연방]]의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 인수한 [[소련 장관회의|러시아 소비에트의 공화국 연방정부]]는 정치적 자유를 인정한 뒤 정치적 이유로 갇힌 사람들은 모두 풀어줬다. 물론 그들 중 상당수가 푸틴 시절에 [[방사능 홍차]]를 지급받은 건 함정이지만. 또한 구금 시설을 현대화하여 연쇄살인범과 같은 흉악범을 가두는 [[교도소]]로 사용하고 있는데, NGC의 최악의 러시아 교도소라는 프로그램에서 교도소 내부를 제한적으로 공개했으며. 최근에 석유 [[재벌]]로 널리 알려진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구금한 교도소는 실제로 그렇게 개조한 곳이다. 그래도 그는 안락하게 살았다. == 세간에 알려지기까지 ==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소련]]의 굴라크 체제는 '''그야말로 [[도시전설]]이었다.''' 그런데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 공화국]] 정부는 굴라크의 존재를 탐지하고 있었다. 1926년부터 1935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전역에서 폴란드 공화국의 [[교민]]들이 [[내무인민위원회]]가 지휘하는 인민경찰(밀리치야)에 무더기로 잡혀갔는데,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주재 폴란드 [[외교공관|대사관]]이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 공화국의 외무부에 보고한 덕택이다. 게다가 1940년에 [[폴란드 망명 정부]]가 [[자유 폴란드군]]을 결성하면서 [[폴란드군]] [[포로]]들이 [[이란]]과 [[터키]] 및 [[인도 제국]]과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통해서 귀환하고 [[영국]]과 [[프랑스]] 및 [[서독]]과 [[스위스]]에 정착하면서 그들을 구금한 굴라크의 실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의 경우는 그것을 운영한 체제가 완전히 사라졌고, 심판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진상이 공개된 것이지만 소련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었고, 2차 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서방과의 동맹 체제 때문에 오히려 굴라크에 대한 이야기를 서방에서는 모른 체한 면이 있다. 심지어 [[카틴 학살]]조차도 정황이나 여러 증거로 봐서 소련의 소행임이 분명함에도, 미국측에서 동맹을 의식해 그 사실을 [[독일]]의 소행으로 발표했다. 1940년대 말 들어 냉전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고 동유럽에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거 들어서자, 이에 발 맞춰 굴라크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이슈화 되기시작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에서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리가 없었기 때문에 실체가 드러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소련이 해빙기를 맞게 되면서 굴라크의 실상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흐루쇼프가 쫓겨나고 보수화 된 브레즈네프 체제하에서부터는 서방도 고위 반체제 인사나 유명한 운동권 대학생의 굴라크 수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국가적인 항의를 하게 되었다. 80년대 유형생활을 한 핵물리학자 사하로프 박사가 대표적인 케이스. 굴라크에 대한 고발을 넘어서 체계적인 연구는 솔제니친의 르포 '[[수용소 군도]]'가 최초였고[* 한국에서는 1부만 70년대 발췌 번역되었고 소련 체제를 설명한 완역본은 80년대 후반에야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시중에서는 1부(정확히는 1부의 1~7장 부분)만 번역한 발췌본만 구할 수 있다. [[열린책들]]에서 발행한 완역본은 현재 절판 상태.], 소련 붕괴 후 여러 자료들을 모아 집필한 애플바움의 역작 [[굴락]]이 출간되었는데, 번역본은 [[불쏘시개]]다.[* 가히 최악의 번역이라 할 만하다. 애초에 번역 작업을 제대로된 번역가가 맡아서 하지 않고 GAGA통번역센터라는 번역 업체에서 했다. 각 챕터마다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당연하고 비문과 오역이 난무한다. 읽다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오는 수준. 심지어 책 첫 페이지의 '감사의 말'조차 번역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 [[소비에트 연방]]의 손실 보상 == *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연방 대법원이 해마다 특정 사건들의 심리를 취소해 죄수들의 석방과 복권을 실행했고,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소련 장관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장관회의]]가 해마다 [[사면]]을 베풀어 죄수들의 석방과 복권을 실행했다.[* 안병직, 세계의 과거사 청산 ; 김남섭, 스탈린 체제와 러시아의 과거청산, 342쪽~354쪽.] * 모든 생존자들은 구속한 날까지 당사자가 근무한 사업소에서 받은 [[월급]]을 기준으로 2월만큼의 [[임금]]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가 있고, [[교도소]]와 [[수용소]]에서 복역한 기간을 모두 더해 [[연금]]의 지급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에 합산하는 식으로 금액을 배가한 [[연금]]을 받을 수가 있음. * 1961년 1월에 [[소련 장관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장관회의]]가 [[화폐개혁]](10:1)을 단행.[* 1960년에 [[소련 루블|옛돈]]으로 지급을 완료한 [[퇴직금]]과 [[연금]]의 금액 = 1961년에 [[소련 루블|새돈]]으로 지급을 고려한 퇴직금과 연금의 금액으로 규정.] * 1953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장관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장관회의]]가 [[아파트]]의 청약에 대하여 최우선의 편의를 제공함. * 1988년에 [[소련 최고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최고회의]]가 입법한 [[특별법]]에 따르면, [[소련 공산당]]의 지구당과 [[국가보안위원회]]의 지부와 지방 [[검찰청]]이 1926년부터 1955년까지 [[내무인민위원회]]가 수사한 모든 사건들을 재심함. * 1989년에 [[소련 최고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최고회의]]가 입법한 [[특별법]]에 따르면, 트로이카를 비롯한 초법적인 기관에서 내린 판결은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으며, 그 재판을 받은 사람들을 복권함. * 1990년에 [[소련 최고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최고회의]]가 입법한 [[특별법]]에 따르면, 농장의 집단화에 반대하거나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거나 [[추축국]]에 협력한 죄목으로 구속한 사람들을 복권함. * 1991년 1월에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비에트 연방의 대통령]]이 [[화폐개혁]](1:1)을 단행하면서 [[자연인]] 1명당 교환이 가능한 액수를 1천 [[소련 루블|루블]](당시의 환율로 1천 [[미국 달러|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대통령령]]을 발효함. == [[러시아 연방]]의 손실 보상 == * 1991년 10월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소련 최고회의|6개국 소비에트의 공화국 최고회의]]가 입법한 [[특별법]]들은 정치적인 억압에 의한 희생자들의 복권을 다루고 있으며, [[소련 최고회의|소비에트 연방의 최고회의]]가 입법한 [[특별법]]들을 대체함.[* 안병직, 세계의 과거사 청산 ; 김남섭, 스탈린 체제와 러시아의 과거청산, 355쪽~362쪽.] * [[소련 장관회의|러시아 소비에트의 공화국 연방정부]]가 메모리알([[시민단체]])의 굴라크 기념사업에 대하여 [[유지비]]를 [[기부]]할 수가 있게 되었음. * 1992년 3월에 [[소련 최고회의|러시아 소비에트의 공화국 최고회의]]가 복권한 사람들에게 몰수한 재산을 반환하는 [[특별법]]을 입법했는데, 매월 180[[소련 루블|루블]](당시의 법률에 바탕한 매월 [[최저임금]]의 75%)을 수감한 기간만큼 곱해 지불하면서 최다 액수를 2만 5천 [[소련 루블|루블]] 이하로 규정하고 있으며, [[소련 장관회의|러시아 소비에트의 공화국 연방정부]]가 복권한 사람들의 의식주에 대하여 [[아파트]]와 버스표와 무상 의료 혜택을 제공함. * 1992년 10월에 [[소련 장관회의|러시아 소비에트의 공화국 연방정부]]가 1억 명의 국민들에게 민영화기업 주식상환권을 평등하게 지급했는데, [[러시아 연방]]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연인]] 1명당 민영화기업 주식상환권을 1만 [[소련 루블|루블]](당시의 환율로 1백 [[미국 달러|달러]])만큼 지급함. * 1993년 7월에 [[보리스 옐친|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이 [[화폐개혁]](1:1)을 단행하면서 [[자연인]] 1명당 교환이 가능한 액수를 10만 [[러시아 루블|루블]](당시의 환율로 1백 [[미국 달러|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대통령령]]을 발효함. * 1996년 6월에 [[보리스 옐친|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이 1990년 12월 31일까지 '[[러시아 연방]] [[저축은행]]'에 [[예금]] [[통장]]을 미리 개설해 돈을 [[저축]]한 사람들 가운데 아무리 늦어도 1915년 12월 31일까지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서 출생한 만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당시에 [[저축]]한 금액의 1000배만큼 환불하면서 [[자연인]] 1명당 환불이 가능한 액수를 100만 [[러시아 루블|루블]](당시의 환율로 1천 [[미국 달러|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대통령령]]을 발효함. == 현실의 굴라크 == * [[루뱐카]] - 현 [[러시아]]의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본부이자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의 본부. * [[보르쿠타]] 소재 굴라크 == 매체에서의 굴라크 == === 게임에서의 굴라크 === * [[보더랜드 2]]에서 The Dust에 끼어있는 맵인 Friendship Gulag(우정 굴라크). 정작 맵은 오픈월드 FPS답게 하이페리온 직원들과 로더들로 우글거린다. 블러드샷 요새에서 제때 롤랜드를 구출 못하면 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브퀘스트 모두 완수하는 도전과제를 달성하기 전에는 갈 일이 거의 없는 지역.[* 서브퀘가 하나 존재한다.] 애초에 구석에 처박혀있기도 하고.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모던 워페어 2]]에서의 미션 "The Gulag" - 캄차카 반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폐쇄된 굴라크를 TF-141이 ~~겸사겸사 SAM 레이더 파괴해 가면서~~ 강습하는 것이 주 내용으로 이 굴라크에는 마카로프의 테러조직, 이너 서클이 억류 중인 627번 죄수가 있다. 이 죄수를 구출하는 것이 이 미션의 목적으로 이 죄수의 [[프라이스 대위|정체는...]] 미션 시작 전 브리핑 영상에서 소련 시절 사진이 삽입된다. * [[콜 오브 듀티: 워존]] - 배틀로얄 모드에서 사망 시 생포되며 굴라그로 간다. 1:1 매치를 벌여 이기는 사람은 1회에 한해 굴라그를 탈출해 부활할 수 있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 [[트로피코 4]]의 Labor Camp : 기존의 들어가서 5년만 썩고 나오는 교도소와 달리 이쪽은 진짜 굴라크다. 죄수들은 '''프레지덴테가 석방해주고 싶으실 때까지''' 수용되어 그 안에서만 먹고 자며 '''강제노동'''으로 농사를 짓는다. 이 건물이 생기고 난 후 교도소는 안 짓고 이것만 짓는데, 수용인원도 훨씬 많고 영원히 가둬둘 수 있고 식량도 얻기 때문. ~~나이 20세에 들어와서 90세에 석방될 수도 있다~~ * [[팀 포트리스 2]] : 다른 것들과는 달리 그냥 설정상으로만 등장한다. 코믹스에서 [[헤비(팀 포트리스 2)|헤비]]가 굴라크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했다고 언급되었다. * --[[문명 6]]에서 산업단지를 설원이나 툰드라에 짓는 걸로 재현할 수 있다.-- === 소설 및 만화 매체에서의 굴라크 === * [[수용소군도|수용소 군도]](Archipelag Gulag)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자신의 경험과 주변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다큐멘터리 에세이이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씌어, 매우 신빙성 있고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책.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DC 코믹스]]의 [[킹덤 컴]] - [[슈퍼맨]]이 빌런들을 가둬놓고 교화시키기 위해 만든 시설 * 동명의 영화 - 1985년작 영화로 KBS 방영 제목은 '수용소 군도 굴락'. 미국인 [[미식축구]] 선수가 ~~여자를 잘못 만나서~~ 소련의 계략으로 수용소에 수감돼서 겪는 일. 비중 있는 조연으로 [[맬컴 맥다월]]이 영국인 스파이로 나온다. * 싸이베리아 ~~게임방~~ - 원제는 LOST IN SIBERIA. [[영국인]] 고고학자가 [[이란]]에서 체포돼서[* 진짜 스파이와 동명이인이었는데, KGB가 잘못을 알고도 그냥 시베리아로 보냈다.] 고통 받는 이야기. 한국에서는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잔인한 장면은 없어도 구질구질하고 비참한 장면의 연속이라 보는 내내 고문을 받는 듯한 작품. 실제 수용소에서 10년을 보낸 감독의 경험이 녹아있다. 결말은 주인공이 이란의 [[샤]]의 도움으로 석방돼서 돌아간다고 하는데, ~~오오 팔레비~~ 잘 보면 이 부분은 주인공이 죽기 전에 꾼 환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환영회 장면에서 수용소 친구들이 환상 속에서 갑툭튀하고, 남아있던 친구들이 굴라크 이송 중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고, 석방되어도 아직도 마음만은 굴라크에 살고 있다는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간다.] 깐느 출품작. * Coming Out of the Ice - 1920년대 포드사 공장 건설 때문에 소련으로 이주한 미국공산당원을 부모로 둔 주인공의 이야기. 이 사람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소련에서 낙하산 시범이나 노력 영웅으로 성공했지만 굴라크에 수용된다. 결국 1970년대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안정효의 책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반공특선'''으로 TV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 웨이백 -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피터 위어 감독의 최신작.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는 [[폴란드]] 전쟁포로가 굴라크를 탈출해서 [[티벳]]과 [[인도]]를 거쳐 귀환하는 이야기이다.[* 다만 이 수기 부분은 이전부터 가짜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소련의 기록에 의하면 주인공은 석방돼서 [[자유 폴란드군]]에 인계되었다고 한다. 2007년 또 다른 폴란드 조종사 출신 장교가 그 경험은 자신의 경험이었고, 주인공은 자신의 경험을 도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도 주둔 영국군 기록에 의하면 실지로 굴라크를 탈출해서 인도로 망명한 사람들이 존재하긴 한다고 한다.] * 마지막 한 걸음까지 - 2차대전 직후 독일군 포로가 시베리아의 동쪽 끝에 위치한 굴라그[* 소름 끼치게도 [[알래스카]]와 마주보고 있다.]에서 탈출하여 수 년의 세월에 걸쳐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고 이란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작중 엄청난 집념으로 주인공을 쫓는 수용소장[* 전쟁영웅으로 진급이 보장된 전방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수용소에 전임 왔다. 자신의 감독하의 수용소를 탈주한 주인공을 잡아들이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여기며, 상부에서 수색을 중단하라고 하자 근무지 이탈까지 하며 주인공을 여러 번 위험에 처하게 한다.]의 모습과 주인공을 도와주거나 해치려 하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정식 개봉하진 않았으나 알음알음 인터넷 상에서 숨겨진 명작 취급을 받는 영화. 다만 좀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주인공이 굴라그에 끌려간 이유가 독일군 소속[* 정확히는 [[예비군]]으로 전쟁 말기에 급하게 징집됐다.]으로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토벌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것 뿐이지만, 해당 국가들에게는 그저 침략국의 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 ~~시베리아 14수용소~~ - 나찌 일사 시리즈 4편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백야의 연인 - 원제 Ice Runner. CIA 요원인 주인공은 [[높으신 분들]]의 사정상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도 석방이 되지 않고 시베리아로 이송 중 같이 타고 있다 사고로 죽게 된 범죄자와 신분을 바꾸게 된다. 이후 그 범죄자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둘이 사랑하게 되는데...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그의 정체가 탄로나서 석방될 기회가 생기지만, 공산주의에 투철한 소장은 주인공을 알래스카 근방의 북극권 수용소로 이송하고 그는 말 그대로 설원을 '''달려서''' 에스키모 마을로 탈출에 성공한다. KBS에서 방영된 바 있다. * 북극권의 탈출 - 원제 Born American. [[핀란드]] 영화로 휴가를 맞아 핀란드에 사냥을 떠난 미국인 청년들이 술김에 '''국경을 넘어''' 난리를 치다가 소련군에 체포돼서 시베리아 굴라크로 이송된다.[* 미국 대사관에서 구하려 했지만 소련 당국이 제공한 [[성노예]]를 받고 입을 씻는다.] 이후 하나는 살해당하고, 하나는 미쳐버리고, 나머지 주인공은 굴라크의 지하 지도자인 제독[* 놀랍게도 흑인이며 미국의 [[높으신 분들]]의 치부를 알고 있고 책으로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고위 스파이라는 암시가 있다.]을 통해 러시아 여인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게 된다.[* 제독은 나중에 미국으로 돌아가서 행방을 감추고 은거했다고 자막에 나온다.] 핀란드 영화 중에 당시로서는 제작비가 많이 들었던 작품이고[* 막상 소련에 대한 비판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상영금지를 먹었다. 하지만 감독인 레니 할린은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척 노리스]]가 주연을 맡을 뻔했으나 아들인 마이크 노리스가 주연했다. ~~굴라크 수용소장 목이 꺾일 기세~~ * 숨그네 - 전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독일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가장 강조되는 감정은 배고픔으로, 죽음의 공포나 힘든 노역보다도 더한 굶주림이 배고픈 천사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실체화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 [[유녀전기]] - 라게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러시아어로 캠프라는 뜻. 연방의 마도장교인 미켈 대령이 이곳에 수감되어 있다가 전쟁이 발발한 후 연방이 밀리자 풀려나서 참전한다. 또 4권 중간에 보면 굴라크를 비꼬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중 일부를 가져와 보여주자면 '그것은 실드베리아(시베리아)에서 나무를 센다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자연으로 치유하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산림욕을 하면서 밤에는 맑은 별 하늘을 바라보고...(후략)' 이런 식으로 나온다. 그 밖에도 소설 중간중간에 굴라크를 묘사한다. * [[마블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 캡틴 아메리카로 활동하던 버키 반즈가 과거 [[윈터 솔저]]로서 한 일들에 대해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게 잘 끝난 직후에 러시아에서 [[버키]]를 굴라크로 집어넣는다. 명분은 윈터 솔저가 명령 외의 민간인을 죽였다는 거였지만, 알고 보니 죽은 두 사람 다 민간인이 아니었고, KGB의 잘못을 덮으려고 버키를 데려갔다는 게 드러난다. 버키는 굴라크에서 엄청 고생하다가[* 엄청난 크기의 곰이나 이마에서 무슨 불 같은 레이저가 나오는 사람과 강제 결투를 한다든지.] [[블랙 위도우]]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다. === 영화에서의 굴라크 === * [[마이웨이]] - 일본군으로 징집당한 [[김준식]] 일행과 일본군 지휘관인 [[하세가와 타츠오]]와 병사들이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여기로 오게 된다. [[파일:external/images3.static-bluray.com/6398_18_large.jpg]] [[파일:external/images.static-bluray.com/6398_16_large.jpg]] * [[웨이백]] - 굴라크에 수용된 동유럽 출신 죄수들의 생활과 탈출 과정들을 다루고 있다 * 더 콘서트 - 멜라니 로랑의 부모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굴라크에 오고 거기서 사망하는 장면이 있다.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작중 주인공이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미움을 사 이곳에 수용된다. == 네이버 카페 [[세계대전 떡밥 수용소]](굴라그) == [[세계대전 떡밥 수용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