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www.segye.com/20120515022073_0.jpg]] [[제9보병사단|백마부대]]를 방문한 주한 무관단. [목차] >'''재외공관 무관주재령''' >'''제2조(설치)''' 국방부장관은 군사상 필요에 따라 재외공관에 국군장교(이하 "주재무관"이라 한다)를 둘 수 있다. == 개요 == 國防武官. Military Attaché / Defense Attaché. 주재무관, [[해외무관]]이라고 하기도 한다. [[외교공관]]에 머무르며 군사 관련 외교를 맡는 [[군인]]이자 [[외교관]] 신분의 [[장교]]. == 상세 == 주된 업무는 군사 정보의 수집과 군사 및 외교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중요 행사시에 외교관의 최측근 경호를 맡기도 한다.[* 기본적인 경호는 주재국의 경찰들이 담당하나, 그와 별개로 이들도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진다.] 주재국 [[국방장관]]이나 [[장교]]들과 수시로 접촉해 국산무기 수출을 위한 상담이나 로비활동을 하기도 한다. 국방무관 또는 해외무관은 1856년부터 1881년까지 [[파리(프랑스)|파리]]에서 복무했던 [[영국군|영국 육군]]의 에드워드 클레어먼트(Edward Stopford Claremont, 1819-1890) [[장군]]이 최초인 것으로 본다. [[크림전쟁]] 등에선 [[프랑스군]] 사령부에 협력하기도 했다. [[러일전쟁]]에 이르면 무관들이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려 [[일본군]]과 [[러시아군]]의 전력을 분석해 자국으로 보고하기에 이른다. 미국과 일본은 1901년 [[의화단 사건]] 당시에 무관을 거쳐 정보를 교류했고 이런 일련의 과정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방무관은 국방과 외교에 동시에 관여하기 때문에 인식에 비해 책임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국가간 관계는 평화시에는 외교가, 전시에는 군사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지금도 군사와 외교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성웅,'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지식과감성,2014,pp20-24] 한국도 2+2 회담이라 하여 양국의 외교, 국방장관이 매년 회담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관여하는 국방무관은 이 둘을 잘 조율하여 국가에 이바지해야 한다. 때문에 국방무관으로 활동한 경험을 가진 [[장관급 장교]]가 퇴역한 후 외교관으로 부임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훙커우 공원 의거]] 당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한 쪽 눈을 [[실명]]한 [[일본 해군]] [[중장]] [[https://ko.wikipedia.org/wiki/노무라_기치사부로|노무라 기치사부로]] [[제독]]도 이 장애로 [[퇴역]]하고 외교관으로 전향했다. 국방무관은 신분상 외교관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간첩]] 행위보다는 공개된 군사정보를 주로 수집한다. 다만 간혹 불법적인 정보 수집을 하다가 주재국에 발각되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되어 추방, 영구 입국 금지되기도 한다. 국제법상 외교관은 면책 특권이 주어지므로 자국내에서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조치다. 2000년 [[일본]]에선 주일 [[러시아]] 무관이자 [[GRU]] 요원인 빅토르 보가텐코 [[러시아 해군|해군]] [[대령]]이 그간 포섭해 둔 [[방위성]] 방위연구소 연구원인 [[해상자위대]] [[간부]] 하기사키 시게히로 [[소령|삼등해좌]]에게서 기밀 문서 2건을 술집에서 접선해 입수하려다 현장에서 적발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보가텐코 대령은 [[일본 경찰]] 관계자들의 동행 요구를 외교관 신분증을 들이대며 거절한 뒤 다음날 [[나리타 공항]]에서 [[아에로플로트]] 편으로 출국, [[모스크바]]로 돌아간 바 있다.~~ 물론 기밀 팔던 하기사키 삼등해좌는 일본에서 빵살이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로버트 김(김채곤) 사건 때 미국 정보기관원이던 로버트 김이 한국 국방무관(대령)에게 정보를 제공하다 잡혔다. 마냥 안전하게만 사는 건 아니고, 내전 중인 국가 등에선 험지에서 정보수집을 하다 적의 공격으로 사망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 외에도 군인이다 보니 공식적인 행사에선 주로 [[군복]]을 착용[* [[전투복]]을 아주 안 입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정복(의복)|정복]] 혹은 [[근무복]]을 입는다.]하며, 주재국의 군사 관련 행사([[사관학교]] 졸업식이나 [[참전용사]] [[홈커밍]] 행사, 군사 박람회 등)에 참석한다. 자국에서 [[국방장관]], [[장성급 장교]] 등 군 관련 인물의 [[의전]]을 담당하기도 한다. 외국에 나가있는 고위직 군인이다 보니, 적국에 포섭되어 [[간첩]]이 되는 경우도 있다. [[타이완]]에서는 현역 [[중화민국 육군]] [[소장(계급)|소장]]이 중국의 [[미인계]]에 홀려 간첩 활동을 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그 외에 관계가 나빠졌을 때 [[희생양]]으로 추방당하거나 [[인질]]이 되기도 한다. 재외 국민이 대규모로 사건사고를 당하여 이를 수습하기 위해 본국에서 군인들이 파견될 경우 현장 지휘관이 되기도 한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때 주헝가리대사관 주재 국방무관이던 육군 대령이 현장지휘관이 되어 본국에서 급파된 해군 [[해군 해난구조전대|SSU]]와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등을 지휘한다. == [[한국]] == [[한국]]에선 1950년대에 도입됐다. [[대한제국]]의 경우엔 국방무관을 파견했는지 확실치 않다. 초창기에는 [[미국]], [[터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서방국들이 대상이었고 1960년대에는 [[일본]] 등에도 무관을 파견했다. 2009년엔 46개국에 83명의 국방무관을 파견했으나 예산 절감을 이유로 2012년엔 39개국 62명으로 감축했다. 해외에 파견된 [[한국군]] 국방무관의 계급은 2012년 5월 기준으로 소장 1명 (미국), 준장 4명 (일본·중국·러시아·터키), 대령 40명, 중령 17명이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5/15/20120515022247.html|관련기사]] 국방무관 외에도 [[방위사업청]]에서 파견하는 군수무관(Defense Logistics Attache)도 있었는데 2011년에 폐지했다. 국방무관은 업무 특성상 만찬 등에 참석해야 하므로, 만찬용 예복[*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num=141466|동예복과 하예복이 있으며 보기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이 정식 지급된다. 국군에서 국방무관이 아니면 [[장군]]이나 [[제독]]이라도 이 만찬복은 지급되지 않고, 갖고 싶으면 자비로 맞춰 입어야 한다. 국방무관 및 해외에 파견된 장교들은 [[진급]]심사에 불이익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른 장교들이 해외에 파견된 [[장교]]들이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역에 따라서는 국내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근무중인 경우도 많다.[* 열악한 환경일 경우 [[외교관]]과 동일한 고통을 겪게 된다. 외교관 문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 같은 곳을 생각해보자. [[미국]], [[UAE]] 등 장성급 장교및 정치인들이 자주 왕래하는 국가면 계급에서 밀릴 때 [[의전]]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 어떤 때에는 여러 그룹이 같은 시기에 오는 경우도 있다.] 재한 외국무관은 33개국 57명이다. *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국방무관으로 육군 대령 1명을 파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러시아군에서 파견한 국방무관이 1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해군 대령, 육군 중령, 해군 소령' 3명이 국방무관의 보좌관(Assistant)라는 명목으로 함께 따라온다. * [[뉴질랜드]],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는 한국이 해외 국방무관을 파견하지 않았지만 한국에는 자신들의 국방무관을 파견했다. == 해외에서 == === 미국의 국방무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United_States_Defense_Attach%C3%A9_System.png]] [[부대마크]]라기 보단 그냥 인장이겠지만. 1890년 파견을 시작했고 1960년대엔 최대 2345명에 이르기도 했다. 1985년 [[미국]]의 아서 니콜슨(Arthur Nicholson) [[미 육군|육군]] [[정보]][[소령]]은 [[베를린]]에서 동북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군사기지를 사진 촬영 하다가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국경경비대]]에게 사살당했다. 당시 [[운전병|운전]][[부사관]]이었던 제시 샤츠(Jessie Schatz) [[중사]]는 경고 사격이 없었고 국경경비대나 동베를린 주둔 [[소련군]] 측도 니콜슨 소령을 [[병원]]에 후송하지 않고 고의로 한 시간 가량 방치해 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 출신인물 == * [[육군]] * [[장창국]] * [[황진하]] * [[강대영(군인)]] * [[김국환(군인)]] * [[이서영(군인)]] * [[신경수(군인)]] * [[표세우]] * [[해군]] * [[김성학]] * [[장정길]] * [[공군]] * [[한주석]] * [[옥만호]] * [[서동열]] * [[김두만]] * [[장지량]] [[분류:외교관]][[분류: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