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864년 출생]][[분류:193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구한서(具漢書) || || 생몰 ||[[1864년]] [[10월 18일]] ~ [[1930년]] [[10월 15일]] || || [[출생지]]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죽장면 매현리 || || 사망지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구한서는 1864년 10월 18일 경상북도 영일군 죽장면 매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3월 [[정용기(독립운동가)|정용기]] 의병장의 산남의진에 가담하여 영덕, 영해 방면의 의병 소모 책임을 맡았고, 도총장(都摠將)에 임명되어 각지를 전전하며 일군과 교전하였다. 그뒤 1907년 9월 1일 정용기 등이 전사하자, 그는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중군장의 소임을 맡아 청송, 진보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얼마 후 정환직 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에 그는 1908년 1월에는 최세한(崔世翰)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흥해, 청하, 청송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최세한 역시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그는 후일을 기약하고 의병을 해산한 뒤 10년간 피신 생활을 했다. 1930년 10월 15일 영일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구한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