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center> [[파일:고품진.jpg]] || || 정자체 ||顧品珍 || || 간자체 ||顾品珍 || || 한국식 독음 ||[[고품진]] || || 영문 ||Gù Pǐnzhēn || || 생몰년도 ||[[1883년]] ~ [[1922년]] [[3월 20일]] || || 자 ||소재(筱斎) || [목차] == 개요 == [[군벌/중화민국|중화민국의 군벌]]. [[전계군벌]]로 한때 [[탕지야오]]를 몰아내고 운남성의 주인이 되었으나 1922년 암살당했다. == 생애 == 1883년 [[윈난성|운남성]] 쿤밍에서 태어났다.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유학, 졸업했으며 귀국하여 운남강무당 교관에 임명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쿤밍에서 봉기하였고 운남군 제1사단장, 운남강무당 당장을 역임했다. 1915년 [[위안스카이]]가 [[홍헌제제]]를 단행하여 [[호국전쟁]]이 발발하자 [[차이어]]를 따라 호국군에 입대, 사천성에서 북양군벌과 교전했다. 1916년 [[위안스카이]]가 사망하고 [[리위안훙]]이 계임하오 구국회와 약법을 복구하자 운남군 제1군 군장, 동방독판에 임명되었다. 이후 나패금, 이근원 등과 함께 [[탕지야오]]의 밑에 있으면서 그가 [[호국전쟁]], [[호법전쟁]] 중 장악한 사천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주천전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1920년, 사천군벌들의 공격으로 패퇴하게 되자 탕지야오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고 1921년 사천군벌 [[슝커우]]의 지원을 받아 탕지야오를 몰아내고 운남성을 장악하고 [[쑨원]]의 [[2차 호법운동]]에 동참했다. 이에 쑨원은 구핀전을 운남북벌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구핀전은 1922년 의량에 대본영을 설치하고 쑨원의 북벌에 호응하여 북방으로 진군하려 했으나 [[영국령 홍콩]]으로 망명했던 탕지야오가 광서와 광동의 병력을 규합하는 한편 운남성의 반란을 사주하여 반격했다. 구핀전은 부하들의 습격을 받아 1922년 3월 20일 피살되었다. 그가 살해된 후 주천전군의 부총지휘였던 장개유와 2여단장 김한정은 잔여부대를 5개 여단으로 편성하고 귀주를 거쳐 쑨원에게 합류하려 했는데 광서에서 여단장들이 난을 일으켜 장개유를 축출하고 [[양시민]]을 새로운 수령으로 삼아 범석생, 양여헌, 양지생 등을 이끌고 쑨원에게 합류했다. 하지만 쑨원이 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 하자 양시민은 계계군벌 유진환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한다. == 참고문헌 == * 군신정권, 진지양, 고려원. *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신승하, 대명출판사. [[분류:청나라의 군인]][[분류:전계군벌]][[분류:1883년 출생]][[분류:1922년 사망]][[분류:윈난성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