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역사]] == [[교동도]]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이다. === 원삼국시대 === [[마한]]의 국가 중 하나인 [[마한#s-5.4|소석삭국]]이였다. === [[삼국시대]]~[[남북국시대]] === 원래 교동도의 지명은 대운도 또는 고림,달을신이라고도 불렸으나, [[고구려]]가 [[강화도]]를 차지한후로 '''고목근현'''이였다. [[신라]]가 강화도를 차지하고 나서 [[경덕왕]]대에 '''교동현'''으로 개칭했다. 그리고 이 지명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 [[고려시대]] === 수도 개경과 가까워, 국제교역의 중간 기척지 역할을 하였다. 한편 한강과 임진강 하구가 만나는 지점을 감제하는 요충지여서 항상 정예병력이 상주하고 있고, 수도와 가까워 감시가 용이한 점 때문에 왕과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하였다. === [[조선시대]] === 고려시대부터 수도와 가까워 강화도와 함께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연산군, 광해군이 있으며 연산군은 여기서 죽었다.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어 경기수영 예하 함선과 병력이 항시 주둔하고 있었으며, [[인조]] 시대에는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에 들어가지 않는 경기, 황해, 평안 수영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 [[현대]] === [[대한민국]]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중립]]수역이 되었다. 2010년대에 교동연륙교가 개통되어 강화버스 18번과 자동차로 교동도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분류:인천광역시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