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성도)] ||<-3><tablealign=right><tablewidth=390><tablebordercolor=#b30000><tablebgcolor=#fff,#1f2023><bgcolor=#b30000> [[파일:중국 국기.svg|height=15]] {{{#gold '''[[중국|{{{#gold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성급시 | [[광둥성|{{{#gold 광둥성}}}]]의 성도[br]{{{+1 [ruby(广州市, ruby=Guǎngzhōu shì )]}}}'''[br]광저우시 | Guangzhou City}}} || ||<-3> [include(틀:지도, 장소=광저우시, 너비=100%, 높이=100%)] || ||<-2><bgcolor=#b30000> '''{{{#gold 면적}}}''' || 7,434km² || ||<-2><bgcolor=#b30000> '''{{{#gold 인구}}}''' || 14,900,000 명 || ||<-2><bgcolor=#b30000> '''{{{#gold 인구밀도}}}''' || 2,005명/km² || ||<|2><bgcolor=#b30000> '''{{{#gold GDP}}}''' ||<bgcolor=#b30000> '''{{{#gold 전체}}}''' || 3,571억 $ || ||<bgcolor=#b30000> '''{{{#gold 1인당 GDP}}}''' || 23,963 $ || [[파일:external/farm1.staticflickr.com/22388133611_94613a164c_b.jpg]] [[파일:24491781675_a43a63ce72_h.jpg]] 사진 우측의 건물이 [[CTF 광저우]]다. [[파일:7427ea1db1741ad97dbb37.jpg]] [[파일:23411977329_f9c1948cbd_b.jpg]] [목차] == 개요 == {{{+1 广州市 / Guangzhou City}}} * [[정체자]]: 廣州 * [[간체자]]: 广州 * [[한어병음]]: Guǎngzhōu * [[광동어]](Jyutping): Gwong2zau1 * [[영어]]: Guangzhou, Kwangchow, Canton[* 본래 [[광둥]]의 [[우정식 병음]]이지만 광저우시를 뜻하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 로망스어권(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에서는 아예 광저우시를 표기할 때 한어병음이 아닌 이 Cantón으로 적는다.] * [[한국어]]: 광저우, 광주 ||[youtube(s1VQk_yw5wU)]|| ||서양인[* 해당 인물은 serpentza라는 유튜버로 중국에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이 바라본 광저우||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의 성도(省都)이자 화난 지방 최대의 무역도시이다. 면적은 7,434㎢이고, 인구는 [[2014년]] 기준 약 1400만 명이다. 광역권은 정의가 모호하나 거의 연담화되어 있는 [[포산]]시, [[둥관]]시, [[선전시]] 등 [[주강]] 삼각지 일대의 인구는 정치적으로 분리된 [[홍콩]]을 제외하고도 4500만명에 달하여 사실상 세계 최대의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도시이다. 하위 행정구역으로 10개의 구, 2개의 현급 시가 있다. 중국에서 [[베이징]], [[상하이]]와 함께 중국 3대 도시로 꼽히며, 최근에는 [[선전시]]까지 포함해 4대 도시로 불린다. 다만, 직할시는 아니며[* 중국의 4개 직할시는 [[베이징]], [[톈진]], [[상하이]], [[충칭]]이다.], 대신 '일선도시(一线城市)'라고 불린다. 특히 [[시진핑]] 집권 후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의 핵심이 되는 도시로, 중국 주요 도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연유로 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진출의 베이스캠프 노릇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치 수도 [[베이징]]과 경제 수도로 [[상하이증권거래소]]를 둔 [[상하이]]가 동등하게 제1도시 역할을 하고, 이 광저우와 선전이 한국의 [[부산광역시]] 같은 제2도시 역할을 한다. [[충칭]]은 [[대구광역시]]하고 비슷한 포지션이다.[* 심지어 분지 지형에 지랄맞게 더운(...) 날씨도 똑같다.] 참고로 이 도시의 이름에서 딴 듯한 이름의 프랑스의 [[조차지]] [[광저우만]]와는 상관없는 동네이다. == 역사 == 원래 이곳에는 [[진시황]]이 보낸 총독이었던 임효와 그의 부관 조타가 세운 [[광둥성]]~[[베트남]]에 걸친 [[남월]](南越)이 있었다가 [[한무제]] 때 남벌로 남월이 멸망하면서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그래서 고대/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중국]]보단 [[베트남]]에 사실 더 가깝고 주민의 기원들도 [[한족]]화된 월족으로 [[베트남인]]과 원래 동족이었다. [[광동성]]과 [[광시좡족자치구]] 두 성은 '''양광지역'''이라고 일컬어지며 난링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난링 산맥의 남쪽이라는 뜻의 링난 즉 영남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의 영남과는 다르나 제2도시(부산/광저우)를 끼고 있는 점에선 똑같다.] 중원 본토와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그야말로 별천지의 세계다. 쓰는 말도 [[광동어]]는 타 지역의 [[표준중국어]]와 완전 상이하며, 심지어 기후도 타 지역들과 다르다. 그러한 이유로 [[광둥성]]이 갖는 '''광동 독자의식'''은 은근히 큰 떡밥이다. 물론 [[한족]]화된 지 오래인데다 [[원나라]], [[청나라]] 등 기마민족의 중국 정복 시기에 몽골계 유목민족을 피해 강남지방에서 내려온 난민이 많아 [[한족]]들의 중화민족주의가 최고조이지만, 한편으론 '''남방의 북방에 대한 반골주의'''도 강하다. 그런지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제일 크고 [[중국 국민당]]과 [[중화민국]]에 대한 지지세가 크다. 지금이야 반국가분열법의 서슬퍼런 통제 때문에 숨죽이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장제스의 북벌]]이 시작된 [[황포군관학교]]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장제스]]가 이후 [[난징]]을 수도를 삼고 강소성-저장성-상하이를 중심으로 통치를 펴자 반란의 온상이 되었다. 이곳을 기반으로 한 군벌들은[* 월계군벌이라고 한다.] 광저우 및 [[광동성]]의 경제력을 밑천삼아 주변의 [[광시성]] 군벌들과 연합하여 장제스에 자주 반란을 일으켰으며, [[월계전쟁]]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반란으로 장제스를 골탕먹였다. 장제스는 이런 월계군벌을 달래기 위해 거액의 재정지원을 해야 했으며, 이는 난징 정부에게 큰 압박이 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어도 이곳의 분위기는 중앙에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이곳에서 발행하는 남방주말은 여러 정부 비판으로 검열이 강제되자 [[2013년]] 신중국 수립후 언론사 최초로 파업을 단행해서 중국본토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0370524|#]]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이 지역에 남해군을 설치했다. 그러나 곧 진나라의 장군인 임효와 그의 부하 조타에 의해 [[남월]]이 들어서 진나라는 이 지역을 상실한다. 그러다가 [[한나라]] [[무제]]는 이후 남월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영구히 중국의 지배 하에 두는 데 성공한다. 한나라 때도 남해군을 설치했다. 당시 남해군의 관할은 [[광시좡족자치구]]와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똑같이 중국에 복속된 중부 베트남의 [[다낭]] 일대는 일남군이 되었다. [[한나라]] 때부터 외국무역을 시작했으며[* [[삼국지 시리즈]]에서 나오는 남해가 이 광저우다. 정확하게는 남해군 태수 치소가 설치된 남해군의 번이현이다.] 바닷길 실크로드가 활성화된 [[당나라]], [[송나라]] 때 급속히 발전했다.[* 바닷길을 통해 광저우로 들어온 [[아랍인]] 상인들은 황소의 난 당시 광저우와 함께 엄청난 피해를 받았다.] [[남송]]은 [[원나라]]와 대치 중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밀린 후 [[애산 전투]]를 치루었으나 패배했고, 결국 [[홍콩]] [[구룡반도]] 까우룽베이(九龍灣,Kowloon Bay) 앞바다에서 [[송나라]] 마지막 황제인 어린 송소제를 비롯한 황족 전원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는 비극을 불렀고 결국 손쉽게 이 땅을 점령한 [[원나라]]가 이 땅을 정복했다. 그러나 애초 [[내몽골]]과 북만주, [[바이칼 호]]가 주축이던 유목민족 [[몽골족]]들은 낯설고 기후가 안 맞는 이 땅을 [[한족]] 신사층에게 위임한다. 단지 몽골만호부라는 몽골 기마군단을 지방군으로 주둔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타지와 달리 머리가 [[변발]]로 밀리는 참극을 피할 수 있었으며 훗날 이 광동을 기반으로 장사성의 난이 일어나고 마침내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해 몽골족을 [[내몽골]]로 전원 쫓아내 버리고 한족이 중원을 회복한다. 애초 장사성과 주원장 두 사람 모두 청나라 말기 한족들과 달리 한족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이후 [[한족]] [[명나라]]와 [[만주족]] [[청나라]]가 차례로 들어섰고 청대에는 [[만주족]]에 대항하는 [[한족]]영주들의 [[삼번의 난]]이 일어났다. 청을 건국한 [[만주족]]은 과거 몽골족과는 달리 향신층의 자치 이딴 거 없이 주방 [[팔기군]]을 박아놓고, [[변발]]을 강제했으며 변발을 거부하는 성은 '''성 하나를 통째로 도륙하는''' 소위 '''도성(屠省)'''을 실시해 수 많은 광동인이 변발을 거부해 [[만주족]]들의 손에 학살당했다. 그리고 만주족들에 의해 [[팔기군]]으로 내려온 바요트나 칼간 등 내칼카 부족들 및 차하르, 오르도스, 투메드, 곤기라트 등 몽골부족으로 구성된 몽골팔기들 역시 도성을 행해 광저우 근처 성들은 피비린내가 진동했으며 특히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번의 난]]이 일어났다 진압된 후 양광지방에는 한동안 피비린내가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 지역 한족들이 몽골족이나 만주족에 대해 갖게 된 적대감은 맥시멈에 이르게 되었다. [[청나라]] 때 공행무역의 중심지로 서양세력과의 교류 창구로 번성했으나, 이를 불만으로 여기던 [[영국]]이 1841년 [[아편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영국군]]에 잠시 점령당했다. [[1911년]] [[쑨원]]이 [[신해혁명]]을 일으킨 본거지였다. 신해혁명은 원래 현재 [[우한]]인 우창봉기에서 시작했으며 이후 전 중국으로 확대되어 만주인들의 청조는 멸망하고 다시 한족의 나라이자 '''아시아 최초 민주공화국'''인 [[중화민국]]이 들어선다. [[1921년]]에는 [[쑨원]]이 이 곳을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행정구역)|수도]]로 정했다. 특히 국민당군의 요람으로 [[장제스]]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했던 [[황포군관학교]]가 1924년에 광저우에 설립되어 1927년까지 광저우에 있었다. [[1922년 홍콩 선원 파업]]에 대한 연계 파업, 1922년 [[영풍함 사건]], 1924년 [[광저우 상단 사건]], 1925년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 1926년 [[중산함 사건]]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1925년 광저우에서 국민정부가 수립되었으나 1927년 [[우한]]으로 수도가 이전했다. [[4.15 광저우 쿠데타]]가 일어나 난징에 이어 공산당 숙청이 시작되었고 1927년 11월에 [[장파쿠이]]가 [[장황사변]]을, 12월 11일 [[중국 공산당]]이 [[광저우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진압당했다. 1931년 [[탕산 사건]]이 일어나자 광저우 국민정부가 수립되어 [[1차 양광사변]]이 일어났으나 [[만주사변]]의 발발에 장제스 하야를 조건으로 1932년 광저우 국민정부를 취소하고 난징 국민정부와 통합했다. 이후 광동 군벌 천지탕이 지배했으나 1936년 [[2차 양광사변]]의 실패로 그가 몰락하면서 장제스에게 충성하는 [[위한머우]]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1938년에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원자폭탄 두 방을 쳐맞은 일본이 [[중화민국]]을 포함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해 일본은 전쟁에서 졌으며 일본군 패배 이후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이후 [[국공내전]] 발발 후 국민정부가 다시 이쪽으로 오기도 했다가 결국 공산군 즉 중공군에게 점령되어 [[중국 공산당]]의 영토가 되었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나서야 [[항구]]로 무역이 재개했다. [[1980년]] 중국이 개방될 당시 경제특구들과 가까운 광저우가 최대도시 [[상하이]]와 함께 주요 무역항으로 지정되었고 특히 [[홍콩]]과 가깝단 이점을 살리게 된다. [[1997년]] 홍콩이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반환되어 흡수되자 홍콩과의 연계는 더욱 늘어나게 되며, [[광저우둥역]]- [[홍함역]] 간 직달열차, [[광저우난역]]-[[홍콩사이까우룽역]] 간 [[고속철도]], [[고속버스]]는 물론 선박까지 다양한 교통이 오가게 된다. == 경제 == [[파일:attachment/광저우/Example.jpg]] ▲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광저우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가 3,204억 달러로 총 25위를 차지했다. 사실 [[홍콩]]이 과거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중국 정부의 입김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따지고 보면, 이 광저우가 광둥 지역이자 중국 남부 지방의 실질적인 제1 경제 도시권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직물 관련 산업이 발달했고, 오늘날에도 이쪽 계통에 있어서 주요도시로 꼽힌다. 이 외에도 첨단 IT 산업체들이 대규모로 입주해 있으며,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서 전략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중이다. [[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E4%B8%AD-%EC%9D%BC%EB%8C%80%EC%9D%BC%EB%A1%9C-%ED%98%84%EC%9E%A5-%E2%91%A2%EC%A4%91%EA%B5%AD%EB%AA%BD%EC%9D%98-%EC%B2%A8%EB%B3%91-%EC%A4%91%EA%B5%AD%EC%9D%98-%EC%B2%A8%EB%8B%A8-%EA%B8%B0%EC%97%85%EB%93%A4/ar-BBYQ0he|#]]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 [[푸조]]가 이곳에서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자동차를 생산했다. 중국 내에서도 각종 짝퉁이 생기며(...) [[2016년]] 겨울 한국에서도 진출해 점포를 늘려가는 중국 저가 라이프스타일샵인 [[미니소]]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완구]] 도매시장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완구 도매시장 이외에도 다른 도매시장들의 규모가 넓은 편이다. [[홍콩]], [[대만]]에 있는 장난감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넘어온다. [[KINTEX]]의 3배나 되는 실내전시면적을 자랑하는[* 338,000㎡] [[수출입상품교역회전시관]]이 위치해 있다. == 문화 == [[광동어]]의 중심지다. 물론 광동어를 일상에서 쓰는 곳은 홍콩과 마카오 둘 뿐이고 여기선 중국 정부의 강력한 [[표준중국어]]화 정책으로 광동어는 가정에서만 쓰이는 형편이다. 게다가 요즘 세대 광저우인들은 대개 부모 중 한쪽이 외지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광동어를 못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광저우 광동어는 홍콩 광동어의 모체이지만 홍콩 쪽은 영어 차용어가 절반 이상이라 단어는 꽤 다르다. 마카오의 광동어는 애초 서부 광동지역이 주축에 [[포르투갈어]]의 영향도 강해서 아예 이질적이다. 요리 문화도 발달해 있는데, 광저우 요리는 4대 [[광동 요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광동식 [[경극]]과 광동 음악의 중심지이며, 현대 광동 음악은 홍콩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광동식 경극은 월극이라 하는데 홍콩에서 주로 상영되며 중국본토인 이 쪽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조금 쇠퇴한 감이 있다. === 스포츠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개최지이다. 프로 스포츠 구단들도 성업 중인데, 특히 축구의 인기가 높다. 부동산 부호가 인수해서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의 연고지이다. 또한 헝다 덕분에 존재감이 떨어지는 [[광저우 푸리]]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푸리 역시 헝다만큼은 아니지만 [[중국 슈퍼 리그]]에서도 돈을 많이 쓰는 편에 속한다. [[중국 슈퍼 리그]] 뿐만 아니라 [[홍콩 프리미어 리그]]에 참가중인 R&F 사커 리미티드도 광저우를 연고지로 두고 있다. 농구도 인기가 있는 편이며 [[중국 농구 협회]] 소속의 롱 라이온즈가 이곳을 연고지로 두고 있다. 광저우에 연고를 두고 있는 [[e스포츠]] 구단으로는 [[오버워치 리그]]의 [[광저우 차지]]가 있다. == [[교통]] ==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홍콩 국제공항]],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에 이어 네 번째로[* 특별행정구 홍콩을 빼면 사실 세 번째다.] 교통량이 많은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중국남방항공]]과 [[FedEx]]의 아시아 허브 공항이다. 철도도 잘 갖춰져 있는데 [[광저우베이역]]과 [[광저우난역]]에서 [[징광선강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광저우역]] 등에서 도시간 광역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광저우 동역에서는 [[구룡반도]] [[홍함역]]으로 직행하는 직달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MTR]]사가 운영하는 한국의 구 [[새마을호]]급 특급열차인 KTT도 들어온다. [[광저우 지하철]]과 시 외곽의 고속도로가 시내 교통을 담당한다. [[광저우 지하철]]은 [[둥관 지하철]] 및 [[선전 지하철]]과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있으며 [[홍콩 지하철]]과도 [[동철선]] [[로우역]] 및 [[록마차우역]]에서 환승 가능하게 되어 있다. 물론 홍콩은 [[홍콩 달러]]와 [[옥토퍼스 카드]]를 써서 쓰는 돈부터 다르고, 그 전에 특별행정구 경계를 넘어야 한다. 중국본토 후커우 소지자의 경우 중국 정부의 홍콩/마카오/대만지구 입경허가가 없을 경우 당연히 홍콩으로 못 간다. 반면 홍콩 입국시 90일 내 무비자인 [[대한민국]] 여권 보유자는 홍콩으로 가는 건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한국 국적자들이 홍콩-> 중국으로 갈 경우 중국은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다 입국심사가 꽤 까다로워 오히려 고생한다. [[동철선]] [[로우역]]은 선전 도착비자를 공안이 발급해주지만 수수료가 꽤 센데다 도착비자는 입국이 더 까다롭다.] 선박교통의 경우 난샤구에 위치한 난샤 페리 터미널(南沙码头)과 판위구에 위치한 리엔화 페리 터미널(莲花码头)에서 홍콩으로 이어지는 쾌속선을 이용할 수 있다. == 매체에서의 등장 == * [[도미네이션즈]]의 [[도미네이션즈/건물 및 병력/기타(부두)|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 [[요리왕 비룡]](신 중화일미)에서 양천주가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 여담 == 도시 이름을 정체로 쓰면 廣州, 넓은 고을이라는 뜻인데 [[경기도]] [[광주시]](廣州)와 한자가 같다. 자매 결연은 경기도 광주시가 아닌 [[광주광역시]]('''光'''州)와 맺었다.[[광주광역시]] 쪽은 '빛고을'이라는 뜻이다. 광저우의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공안]] 마스코트 '방니'[* 帮你. '당신을 도와주겠다' 라는 뜻의 [[중국어]].]가 포돌이를 그대로 표절한 것. 2003년 [[스펀지(KBS)|스펀지]]에서 광저우 지역 경찰서에 연락하여 표절 이야기를 하자 일절 무반응과 같이 필사적으로 피해다녔다고 한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뭔가를 주문하면 열에 아홉은 이 동네에서 출발하거나 이 동네를 거쳐 한국으로 온다. [[북회귀선]]보다 남쪽에 있다. 위도가 꽤 낮아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남십자성]]이나 [[아케르나르]], [[알파 센타우리|센타우루스자리 알파]] 등을 관측할 수 있다. 다만 높이 떠오르지는 않는 편이다. 아케르나르는 이 도시에서도 지평선 위로 10도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한나라 때는 [[세차운동]] 때문에 거의 지평선에 붙어 보이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는 한국의 [[대전광역시]]처럼 도시는 큰데 특색이 없는 지루한 곳으로 취급받는다. 인근의 홍콩, 선전, 마카오가 경제와 관광의 중심지로 중국 국내외적으로 유명한것에 비해서 광저우는 존재감이 약하다. [[분류:중국의 옛 수도]][[분류:중국의 성도]][[분류:광둥성]][[분류:하계 아시안 게임 개최도시]][[분류:국가역사문화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