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鷄林大都督府}}} / 계림주(신라) 대도독부 [목차] == 개요 ==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남은 [[신라]]까지 제어하고 지배하기 위해 설치하려고 시도했던 통치 기관. == 역사 ==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는 옛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지역 통치를 계획했다. 백제 잔존세력은 [[부흥운동]]을 전개하며 저항하였지만 [[백강 전투|결국 분쇄되었고]] 백제 땅은 이후 고구려 멸망, [[나당전쟁]] 이전까지는 당나라의 실질적 지배를 잠깐 받았다.[* 옛 백제 땅의 전체가 당나라의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니고 웅진 주변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663년까지 백제부흥군을 토벌하던 당시 신라가 옛 백제 영토를 어느 정도 흡수했기 때문.] 이 때 당나라는 신라 지역에도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을 대도독으로 임명(663년)하는데, 백제와 달리 신라는 아직 건재했기에 이는 [[이북 5도]]와 비슷하게 이름만 있는 명목상의 조치에 불과했다.[* 비슷한 예로 당나라는 실제로 지배력이 닿지 않는 일본도 일본 서부의 역사적 지명 [[규슈|츠쿠시]]를 따 [[다자이후|축자도독부]](筑紫都督府)를 명목상 설치하기도 했다. 다만 축자도독부 관련 기록은 왜국 측에서 중국식 이름 도독부를 따 와 설치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사실상 '웅진주도독' [[부여융]]과 '계림주'''대'''도독' 문무왕이 동격으로 당나라 장수의 주재 아래 [[취리산 회맹]](665년)하였으니, 결국 신라도 백제와 동급에 같은 성격의 존재로 당나라에게는 규정되고, 또 신라도 장차 백제처럼 될 수 있다는 협박인 셈이었다. 옛 고구려의 땅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안동도호부]]나 백제 땅의 웅진도독부와 달리 실체가 없는 명목상의 기관이었고 [[당나라]]가 [[나당전쟁]]에서 패하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계림주도독의 작위는 명목상의 작위로 성덕왕까지 승계됐다. 그러다가 733년 발해의 당나라 침략 때 신라가 당을 도와 발해를 공격하자 나당 간 관계가 회복되었고 이후 명목상의 작위도 사라지게 되었다. == 역대 계림주대도독 == ||<#dcdcdc> 대수 ||<#dcdcdc> 성명 ||<#dcdcdc> 재임기간 ||<#dcdcdc> 비고 || || 1 || [[김법민]] || 663년 ~ 681년 || 문무왕 || || 2 || [[김정명]] || 681년 ~ 692년 || 신문왕 || || 3 || [[김이홍]] || 692년 ~ 702년 || 효소왕 || || 4 || [[김흥광]] || 702년 ~ 733년(?)[* 733년 발해가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자 신라가 당을 도와 발해를 공격했다. 이에 당은 성덕왕에게 개부의동삼사 영해군사의 작위를 제수했는데 이때부터 계림주도독의 작위가 기록에서 사라진다.] || 성덕왕 || == 삼국통일전쟁 이후 당이 한국에 세운 기관 목록 == * 계림도독부 * [[안동도호부]] * [[웅진도독부]] [[분류:신라]][[분류:수당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