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희궁)] [include(틀:조선 왕궁의 편전)] [목차] ||<table width=662>[[파일:external/dunggu.com/gyeonghuigung15.jpg|width=100%]]|| || 자정전 사진 || == 소개 == {{{+1 慶熙宮 資政殿}}} [[경희궁]]의 편전이다. 편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정무를 보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이다. 경희궁 정전 [[경희궁|숭정전]]의 바로 북쪽 뒤편에 있다. '자정(資政)' 뜻은 '정사(政)를 돕는다(資)'이다.[[http://egloos.zum.com/q8imcs/v/10680742|#]] 현재 [[현판]]은 서예가 송천 정하건 선생(松泉 鄭夏建. 1939 ~ )이 썼다.[[http://songchun.co.kr/board_ljfo93/3320|#]] == 역사 == 1620년(광해군 12년) [[경희궁]] 창건 때 지었다. 편전으로 처음 사용한 시기는 1624년(인조 2년)부터이다. [[이괄의 난]]으로 --중건한 지 얼마나 됐다고-- [[창덕궁]]과 [[창경궁]]이 불타자 [[인조]]가 경희궁[* 당시 이름은 경덕궁.]을 사용하면서 그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에는 빈전으로 주로 사용했고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는 용도로 쓰기도 했다. [[숙종(조선)|숙종]], [[영조]] 연간까지 활발히 사용되었으나 [[정조(조선)|정조]] 이후부터는 사용이 뜸해졌으며 [[순조]]가 간간히 이용할 뿐이었다. 빈전[* 빈전(殯殿):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곳.]으로서의 사용이 빈번하고 접근성의 문제도 있어서, 조선 후기에는 내전과 가까운 [[경희궁 흥정당|흥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했다. 1865년 [[고종(대한제국)|고종]] 때 [[경복궁]] 중건을 하면서 경희궁을 헐어 경복궁 공사의 자재로 썼다. 이 때 자정전도 철거했다. 흔히 일제가 없앴다고 알고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서궐(경희궁) 내에는 '''[[경희궁 숭정전|숭정전]], [[경희궁 회상전|회상전]], 정심합(正心閤), 사현합(思賢閤), [[경희궁 흥정당|흥정당]]만 남기고 그 나머지는 모두 헐었다.''' 목재를 가져오니 다수가 썩었다. 이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서 (경복궁의) 나인간(內人間)과 각사의 건조에 사용했다. >---- >《경복궁 중건일기》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 숭정전을 찍은 사진을 보면 자정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정전이 없다. 이로 보아 고종 시기에 자정전을 없앴음을 알 수 있다. ||<table width=662> [[파일:P1060512.jpg|width=100%]] || || 1901년 이전에 촬영된 경희궁 숭정전 사진 ([[프랑스어]] 교사인 [[샤를 알레베크]]가 제작한 사진 엽서의 사진)[* [[파일:알레베크 사진엽서 경희궁 숭정전.jpg]] 사진엽서 전체의 모습.] || 일제강점기 이후 일제는 자정전 터에 경성중학교 교사를 세웠다. 8.15 광복 후에는 [[서울고등학교]]가 사용하다가 1990년대에 [[서울특별시]]와 [[문화재청]]에서 경희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기존 학교 건물을 철거했다. 그 뒤 발굴 조사를 거쳐 2001년 복원을 완료하여 오늘에 이른다. || [[파일: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png|width=100%]] || || 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 왼쪽 사진은 북쪽에서, 오른쪽 사진은 남쪽에서 바라 본 모습. || == 정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경희궁 자정문)] == 특징 == * 2단의 [[암석|돌]]로 만든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1층 목조 전각[* 보통 [[전통]] [[건축]]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이다. * [[경희궁]] 자체가 원래 [[궁전|이궁]]으로 잠시 머물 목적으로 지은데다 산자락이란 [[지형]]의 한계 때문인지 [[조선]] [[궁궐]]의 편전 중 규모가 제일 작은 편이다. 단적으로 [[창덕궁 선정전|선정전]], [[창경궁 문정전|문정전]]과 같은 측면 3칸이지만, 선정전은 가운데 칸에 문짝이 4개 달려있고 좌, 우칸으로 문짝이 3개다. 문정전도 규모가 작고 측면 가장자리 칸의 문짝이 각각 2개 달려있지만 가운데 칸의 문짝이 4개이다. 그런데 자정전의 측면은 가운데 칸과 좌, 우 가장자리 칸의 문짝이 다 2개 씩 달려있다. * 하지만 산자락의 지형을 역이용해 [[기단]]을 높임으로써 오히려 편전의 위엄을 돋보이게 했다. 다른 [[궁궐]]의 편전들은 전부 1단이지만 자정전은 2단이다. 물론 윗 단과 아랫 단의 높이 차이가 좀 있어 실제로는 1단 반으로 봐도 될 정도지만. * 내부는 칸막이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뚫려있으며 대들보 위를 우물천장으로 가려 서까래가 바로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실내에도 [[단청]]을 칠하여 보존성을 높임과 동시에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다른 [[궁궐]]과 달리 내부의 [[옥좌]] 및 당가[* [[옥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는 [[복원]]되지 않았고 바닥도 [[벽돌|전돌]]이라 [[신발]]을 벗고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table width=662> [[파일:자정전 내부.png|width=100%]] || || 자정전 내부 || * [[정문]] 자정문은 자정전과 일직선 상에 있지 않으며 자정전보다 더 서쪽에 있다. 이 역시 지형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자정문의 동쪽 칸과 자정전의 서쪽 칸이 마주보고 있다. ||<table width=662> [[파일:자정전 축.png|width=100%]] || || 자정전과 자정문의 축 || * 위에 언급한 것처럼, [[조선]] 후기에 들어 다른 궁궐의 편전과 마찬가지로 혼전/빈전의 기능을 주로 맡았다. 이에 따라 혼전/빈전에 설치하는 [[복도|복도각]]을 설치했다. 여기서 복도각은 [[혼령]]이 드나드는 길이란 의미를 가진다. [[고종(대한제국)|고종]] 시기 자정전을 철거할 때 같이 헐었다. 2001년 자정전 본전을 [[복원]]할 때 같이 짓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른다. ||<table width=662> [[파일:서궐도 자정전.png|width=100%]] || || <서궐도안>을 채색한 <서궐도>에서 묘사 한 자정전 || * 자정전 서쪽 측면 출입문과 붙어있는 [[복도|복도각]] 아래에 실제 [[조선시대]] 당시의 [[벽돌|전돌]] 유구를 발굴하여 보존 중이다. ||<table width=662> [[파일:자정전 전돌1.png|width=100%]] || || 자정전 전돌 유구 || == 여담 == * 자정전에서 태령전으로 넘어가는 길에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이를 [[경희궁 서암|서암]]이라 한다. 원래 ‘왕의 바위’란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렀는데 왕의 기운을 나타낸다 하여 [[광해군]]이 이 곳에 --동생 집 뺏고[* 원래 [[경희궁]] 자리가 [[광해군]]의 동생 [[정원군]]의 집터이다. 광해군에게 [[능창대군|아들]]도 [[역모]]로 억울하게 몰려 죽고 집마저 뺏기면서 정원군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나중에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로 즉위하면서 뺏긴 집을 도로 다시 찾은 모양새가 되었다.]-- 경희궁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숙종(조선)|숙종]] 때에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란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큰 돌에 ‘瑞巖(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겼다. == 매체에서 == 2000년대 후반 들어 [[문화재]] 보호 등의 이유로 [[경복궁]], [[창덕궁]] 촬영이 어려워지면서, [[드라마]], [[영화]] 제작사에서는 [[경희궁]]에서 촬영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숭정전]]이나 [[경희궁 태녕전|태령전]]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고, 자정전은 지나가는 배경 정도로만 등장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BS]] [[드라마]]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숙빈 최씨]]의 처소로 나왔고 [[영화]] 《[[사도(영화)|사도]]》에서 [[태후|대왕대비]] [[인원왕후]]([[김해숙]] 분)의 빈전 내부를 이 곳에서 찍었다. [[상복]]을 입은 [[영조]]([[송강호]] 분)와 [[사도세자]]([[유아인]] 분)가 절하는데 그 와중에 영조는 인원왕후의 사망이 사도세자 때문이라며 또 갈군다.(...) || [[파일:장희빈 65회 자정전.png|width=100%]] || [[파일:사도 자정전 내부.png|width=100%]] || ||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 65회에 등장한 자정전[* 참고로 극본을 맡은 강태완은 사실 [[신봉승]] 작가로, 당시 가명으로 집필했다.] || 영화 《[[사도(영화)|사도]]》에 나온 자정전 내부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경희궁, version=300, paragraph=5, title2=경희궁, version2=300, paragraph2=5)] [[분류:경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