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경희궁]][[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 [include(틀:경희궁)] [목차] == 개요 == {{{+1 慶熙宮 爲善堂}}} [[경희궁]]의 전각으로 선왕의 [[위패]], [[신주]], [[어진]]을 임시로 봉안할 때 사용했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훼철]]되어 사라졌다. == 위치 및 용도 == 경희궁의 편전인 [[경희궁 자정전|자정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경희궁 태령전|태령전]]과 위선당이 있었다. 이들은 경희궁의 북서쪽 영역에 있었으며 조상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태령전]]은 [[영조]]의 초상을 봉안하던 곳이며 [[자정전]]과 [[위선당]]은 [[종묘]]의 위패를 임시로 모시던 곳이다. 태령전이 혼전으로 사용될 때에는 태령전에서 봉안하던 [[어진]]을 위선당으로 옮겨 모셨다. 위선당에서는 신주를 모시기도 하였다. 영조 때 [[단경왕후]]를 복위시키면서 위선당에 신주를 모신 후 작헌례를 행했으며, 정조 시절에는 [[효장세자]]와 그 부인을 진종(眞宗)과 [[효순왕후|효순왕후(孝純王后)]]로 추존하면서 창경궁 연복전에 있던 신주를 이곳으로 옮겨 봉안했다. == 변천 및 현황 == 위선당의 옛 이름은 영경당(靈慶堂)이다. 1700년( [[숙종(조선)|숙종]] 26년)에 위선당으로 이름을 고쳤다. 영경당을 사용한 기록은 《[[승정원일기]]》에서 1663년([[현종(조선)|현종]] 4년)에 [[종묘]]의 영녕전을 수리하기 위해 영경당에 신위를 봉안했던 기록부터 볼 수 있다. [[광해군]] 시절에 경희궁을 창건한 후 숙종 대에 대대적인 수리 작업이 있었으니 영경당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선당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부터 신위를 봉안하는 전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종(대한제국)|고종]] 때 경복궁 중건사업으로 [[훼철]]되었다. 기단은 남아있었으나 이마저도 [[일제강점기]]에 헐려서 현재는 위선당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교육청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형태 == 위선당은 《[[서궐도안]]》에서만 그 형태를 볼 수 있다. 숲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행각과 담장에 의해 독립적인 영역을 형성하며, 영광문(靈光門)으로 태녕전과 연결된다. 남쪽에는 장덕문(章德門)을 두었다. 팔작지붕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묘사되어 있다. == 여담 == * 위선당의 서쪽에는 [[경희궁 영렬천|영렬천(靈洌泉)]]이 있는데, 바위 틈에서 항상 찬 물이 나와 '초정(椒井)'으로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