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86호}}}]]''' || ||<-2> {{{#fff {{{+1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br]{{{-1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기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62년 12월 20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고려]] [[충목왕]] 1년(1345) || ||[[파일:attachment/경천사 10층 석탑/83.jpg|width=530]]|| ||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 소장된 모습.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86호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드문 [[대리석]]으로 만든 불탑이다.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한국적인 이미지의 불탑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데 [[원나라]]의 양식을 도입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 기원이 [[고려]] 후기 친원 권문세족들이 제작한 것이라 그렇다. 원나라 [[황제]], [[황후]], [[황태자]]의 만수무강과 원나라의 만세불변을 기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그 원나라 황후가 바로 [[기황후]]. 또한 석탑1층에 원 황제와 고려 국왕의 장수와 복을 빈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훗날 [[세조(조선)|세조]] 때 만들어진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 실물을 보면 재질이나 외관이 유사하다. 참고로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현재 [[탑골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10층 석탑이지만 구조적으로는 3층석탑과 7층석탑을 합친 형태로 구획되었다. 중국 문화권 불교에서 사찰의 탑은 양(陽)을 상징하는 홀수에 따라 층을 홀수로 맞춤이 원칙이다. == 내용 == 본래는 [[개성특급시|개성]] 교외 지역[* 오늘날 경기도 [[개풍구역|개풍군]]. 예성강을 마주 보고 있는 바로 그 동네로 사실 개성에서도 꽤 거리가 있다.] 경천사라는 절에 있었는데 다나카 미츠아키라는 [[일본인]]이 일본에 무단반출해갔다가 [[어니스트 베델]]의 활약으로 조선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반발여론이 들끓었다고 한다. 다나카 미츠아키는 일본궁내대신으로 [[순종(대한제국)|순종 황제]]의 가례에 참석하려고 왔다가 경천사지 석탑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순종 황제가 하사했다고 사기치고 대놓고 무단으로 해체해 갔다고 한다. 그 후 조선총독부에서 실태조사 후 반환요구를 하여 1918년 다시 일제 강점기 조선으로 돌아왔다. 대한제국을 떠나 조선으로 돌아온 셈. 당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한반도가 지속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반환을 요구했다. 쉽게 말해서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딱히 조선의 물건을 조선에 반환시켜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앞마당에 있는 장식물을 훔쳐갔다고 생각한 것.(...) 해방 이후에는 6.25전쟁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60년에 서울 [[경복궁]]에 전시시켜 놓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원래 자리(개성)[* 다만 만약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때는 원래 자리가 있는 개성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있다.]에 가져다 놓거나 일본으로 불법반출된 상태가 유지됐다면 지금 우리가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눈으로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원소재지가 북한에 있으면서 비슷한 신세였던 [[북관대첩비]]는 2005년에 우리나라를 거쳐 북한으로 돌아가기라도 했지 이 쪽은 분단으로 인해 원소재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한에 계속 남게 되었다.] 이후 경복궁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산성비]]로 인해서 대리석재인 석탑의 보존문제가 심각해져서 결국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산성비로 부식된 석탑의 복원공사를 마친 후에 이전하여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로비에 서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82053015|관련 기사]] == 기타 == [[파일:external/images.wikia.com/Kof97koreabg.gif|width=500]] * [[KOF 97]]에서는 한국의 [[한국 스테이지|경복궁 스테이지]]에 이 탑이 보이는데 당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로 쓰던 [[조선총독부]]가 철거되고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역할을 하고 있었다.]이 세워지기 전이었기에 97년 당시 그곳에 전시되어 있어 해당 스테이지에 나왔다. * [[KBS 1TV]]의 교양 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 14회에 대표 문화재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 [[더 콰이엇]]과 [[염따]]의 곡 [[Bentley 2]] 뮤비의 배경이다.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개성_경천사지_십층석탑|한국어 위키백과 :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6922&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466&cid=42665&categoryId=42669|한국 미의 재발견 - 탑 : 개성 경천사지십층석탑 (1)]]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467&cid=42665&categoryId=42669|한국 미의 재발견 - 탑 : 개성 경천사지십층석탑 (2)]]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075&cid=58840&categoryId=58851|네이버캐스트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 경천사 십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58977&cid=42635&categoryId=42635|미술대사전(용어편) : 경천사지십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00547&cid=46717&categoryId=46763|미술백과 : 경천사 십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0585&cid=40942&categoryId=33382|두산백과 : 경천사 십층석탑]] == 국보 제86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860000,1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새로 개관한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같이보기 == * [[국립중앙박물관]] * [[원각사지 십층석탑]] [[분류:석조 불탑]][[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명수 10]][[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