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1636년 출생]][[분류:1648년 사망]][[분류: 전주 이씨 소현세자파]]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석철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더 이스트라이트의 멤버, rd1=이석철(2000), other2=소방공무원, rd2=이석철(소방공무원))]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bgcolor=#94153E> {{{#gold '''조선 인조의 손자'''[br]{{{+1 '''경선군[br]慶善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경선군(慶善君)|| ||<-2><width=30%><#94153E> '''[[시호|{{{#gold 시호}}}]]''' ||<(>효헌(孝憲)|| ||||<:><#94153E> '''[[본관|{{{#gold 본관}}}]]''' ||<(>[[전주 이씨|전주]](全州)|| ||||<:><#94153E> '''[[이름|{{{#gold 이름}}}]]''' ||<(>백(栢)|| ||||<:><#94153E> '''{{{#gold 초명}}}''' ||<(>석철(石鐵)|| ||||<:><#94153E> '''{{{#gold 생부}}}''' ||<(>[[소현세자]]|| ||||<:><#94153E> '''{{{#gold 생모}}}''' ||<(>[[민회빈 강씨]]|| ||||<:><#94153E> '''{{{#gold 자녀}}}''' ||<(>양아들|| ||||<:><#94153E> '''{{{#gold 출생}}}''' ||<(>[[1636년]] [[4월 30일]] {{{-2 (음력 3월 25일)}}}|| ||||<:><#94153E> '''{{{#gold 사망}}}''' ||<(>[[1648년]] [[11월 2일]] {{{-2 (음력 9월 18일)[br](12년 6개월 3일 / 4,569일)}}}|| [목차] [clearfix] == 개요 == [[인조]]의 장남 내외인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의 장남.[* 경선군 손위로 두 누이가 있어 출생순서론 셋째이다,] 혈통상으로는 조선의 왕이 될수도 있었으나, 끝내 정치싸움과 [[인조|할아버지]]와 [[소현세자|아버지]]의 갈등에 휘말려 비참히 살해당한 안타까운 인물이다. == 비극적 죽음 == [[소현세자]]는 [[청나라]] 심양에서 8년만에 [[조선]]으로 귀국한 후,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조 소용]]와의 권력 속에서 갈등하다가 의문사한다. 조 소용은 그때를 기회로 삼아 "[[민회빈 강씨]]가 세자를 죽이고 왕([[인조]])를 죽이려 한다"고 무고했다. 그 결과 어머니 [[강빈]]이 사사되고([[강빈옥사]]), [[1647년]]에는 할아버지 [[인조]]의 명으로 두 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된 뒤 이듬해에 13살의 어린 나이로 교살(交殺)되어 사망하였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후, 아버지 [[소현세자]]의 무덤 옆에 매장되었다. 일화로는 [[소현세자]]와 교분이 두터웠던 [[청나라]]의 장수 [[용골대]]가 경원군이 죽기 전 "경원군 이석철을 양자로 삼아 내가 기르겠다."며 [[청나라]]로 데려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인조는 '''죽었다!'''라고 이리저리 둘러대어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당시에는 유배를 갔을 뿐 '''멀쩡히 살아 있었는데''', [[용골대]]가 원손 격인 석철을 꼭두각시 조선의 다음 임금으로 내세워 자신을 폐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내어주지 않은 거다. [[인조]] 26년 3월 4일, [[청나라]]의 사신이 [[소현세자]]의 세 아들의 행적을 묻는다. 조선에서는 "[[강빈]](姜嬪)의 일에 연좌되었고, 조정에서 세 아이들을 죽이라고 청했으나 인조가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섬으로 유배 보냈는데, 그만 [[천연두|마마]]로 죽었다."고 또 둘러댄다. 3월 7일, 이 문제를 인조와 신하들끼리 상의하였다. >인조: 죽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구실을 삼을 것이고, 죽지 않았다고 하면 화(禍)를 장차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니, "큰아이도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자점]]: 저들이 기필코 데려가려 한다면, 차라리 편의(遍議)에 의해 처리할지언정 데리고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청나라 사신이 다녀간 지 6개월 만인 26년 9월, 마침내 이석철이 숨졌으며, 같은 해 12월에 둘째인 이석린도 끝내 숨졌다. == 가계도 == * 조부: [[조선]] 16대 국왕 [[인조]] 이종(李倧) * 조모: [[인열왕후]] 한씨 * 아버지: [[소현세자]] 이왕 * 어머니: [[민회빈 강씨]] * '''경선군 이석철''' (원손, 원자) * 양아들: 임성군(臨城君) 이엽(李熀)[* 1665년생. 경안군의 차남. 경선군 사후 그에게 입양되었으나 그 또한 아들을 얻지 못하고 요절했다.] * 양손자: 밀남군(密南君) 이감(李堪)[* 임성군의 친형인 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의 차남이다.] * 남동생: 경완군 이석린 * 남동생: [[경안군]] 이석견 * 여동생: 경숙군주[* 군주(郡主)는 세자의 적녀, 즉 세자빈에게서 얻은 딸이다. 세자의 서녀는 현주(賢主). 아버지가 즉위하여 왕이 되면, 신분이 저절로 [[공주]]/[[옹주]]가 된다.] * 여동생: 경녕군주 * 여동생: 경순군주 이 외에도 어렸을 때 요절한 두 누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