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임진왜란/전투]] [include(틀:임진왜란 전투 목록)] ||<-3><tablewidth=450><tablealign=right><bgcolor=#C0C0FF><:> {{{+1 '''경상도 방어선 '''[br]慶尙道 防禦線 }}} || ||<:><bgcolor=#C0C0FF> '''시기''' ||<-2>1592년 4월 14일[* 음력 4월 13일] ~ 1592년 6월 7일[* 음력 4월 28일] || ||<:><bgcolor=#C0C0FF> '''장소''' ||<-2>[include(틀:지도, 장소=경상북도, 높이=200, 너비=100%)] [include(틀:지도, 장소=경상남도, 높이=200, 너비=100%)] [br] [[조선]]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및 충청도 일부지역. || ||<:><bgcolor=#C0C0FF> '''원인''' ||<-2>왜군의 대규모 친입과 [[부산진 전투]] 이후 왜군의 북진. || ||<:><width=10%><bgcolor=#C0C0FF> '''교전국''' ||<width=20%>조선 [[파일:조선 어기.svg|width=30]] ||<width=20%>일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Goshichi_no_kiri_inverted.svg.png|width=25]] || ||<:><bgcolor=#C0C0FF> '''지휘관''' ||도순변사 [[신립]]†[br]조방장 변기†[br]종사관 김여물†[br]충주 목사 이종장†[br][[이일]][br]박안민[br]부산진 첨절제사 [[정발]]†[br] 동래부사 [[송상현]]†[br]이각[br]박홍[br]조영규†[br]이언성[br]홍윤관†[br]서예원[br]이유검[br]송빈[br]김득기[br]이대형[br]류식[br]이령[br]김해[br]김수[br]권길[br]박지[br]그 외 의병 지휘관[br] || [[고니시 유키나가]] [br] [[가토 기요마사]][br] [[소 요시토시]] [br] 마츠우라 시게노부 [br] 아리마 하루노부 [br] 오무라 요시아키 [br]고토 스미하루 [br] [[구로다 나가마사]] || ||<bgcolor=#C0C0FF><:> '''병력''' || 102,000여 명 || 165,600여 명 || ||<bgcolor=#C0C0FF><:> '''피해''' ||최고 지휘관 전사 [br]경상도와 충청도 일부를 포함한 지역에서 22,420명 이상 전사 [br]경상도 지휘부 붕괴 [br]경상도 방어군 궤멸.[br]경상도 [[병영]] 및 [[수영]]함락. || [[왜군]] 890여명 사상자 발생 || ||<:><bgcolor=#C0C0FF> '''결과''' ||<-2>충청도 함락 및 방어실패. [br]일본군에 의한 경상도 지역 [[조선군]] 무기 탈취 [br] || ||<:><bgcolor=#C0C0FF> '''영향''' ||<-2>조선, [[한양]] 방어 포기. 선조의 몽진. [br]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의병]]항쟁 || [목차] [clearfix] == 개요 == 임진왜란 직후 경상도와 충청도 일부지역에서 일어난 전투와 의병항쟁을 포함한 경상도지역을 포위하여 한양으로의 진격을 막기위해 구축된 방어선을 말한다. == 상세 ==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직후 경상도를 방어하기 위해서 부산진 첨사 [[정발]]이 왜군과의 첫 전투를 치루었다. 이를 [[부산진 전투]] 라고 하며, 이 전투의 패배로 경상도 전역이 위험에 처하였다. 이후 [[동래성 전투]]마저 왜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사실상 경상도 방어는 확대되었다. 이후 [[김해성 전투]]를 비롯해서 [[제1차 울산병영 전투]], [[상주 전투]] 등으로 왜군의 진격을 늣추는데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조선 조정은 도순변사 [[신립]]을 보내어 경상도 방어선의 수비를 부탁하였다. 이때 1차로 조선군이 막고 있었던 길목은 아래와 같다. 이 위치는 당시 일본군의 진격로를 어느정도 예측한 까닭도 있었다. 당시 [[쿠로다 나가마사]]는 [[추풍령]]을 넘어서 진격하려고 하였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령을 통해서 한양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가토 기요마사]]는 [[죽령]]을 넘기로 하였다. 이때문에 고모산성을 1차적으로 방어하고 죽령과 추풍령을 2차적으로 방어하려던 본래 조선군의 계획대로라면 어느정도 왜군에게 피해를 줄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 명칭 || 위치 || || [[추풍령]] || [[영동]] || || [[조령]] || [[조령]] || || [[죽령]] || [[단양]] || || 고모산성 || [[문경]] || 그러나 신립은 기마부대가 움직이기에는 평지가 더 좋다고 판단하여 모든 조선군을 [[탄금대]]로 모이게 하였다. 그 결과는 [[탄금대 전투]] 문서에서 나오듯, 대패로 끝났으며 이로 인하여 경상도 방어선은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