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복궁)] [목차] ||<tablewidth=662> [[파일:external/www.cha.go.kr/1624469.jpg|width=100%]] || == 소개 == {{{+1 景福宮 建春門}}} [[경복궁]]의 동문(東門)이다. 주로 [[왕실]]의 친인척이나 궁인들이 이용했다. [[현판]]의 글씨는 [[고종(대한제국)|고종]] 때 관료인 이경하(李景夏. 1811 ~ 1891)[*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던 포도대장, 금위대장이었다. [[이범진]]의 아버지이자 [[이위종]]의 할아버지이다.]가 썼다. [[http://sillok.history.go.kr/id/kza_10209017_002|#]] == 이름 == ‘건춘’은 직역하면 ‘봄(春)을 세운다(建)’는 뜻이다. ‘建(세울 건)’은 ‘立(설 립)’과 의미가 비슷하므로, ‘입춘(立春)’, 즉 ‘봄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오행]]에서 동쪽은 봄을 나타내므로, 동쪽 문에 ‘춘(春)’ 자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FwrHNagLXCGPVMN4aZp74SZRGqkVLGiJGNPzsBqEw1KH12YD4tpwlfr7hLaDYzLq.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429614§ionId=ocp&pageIndex=14&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 == 역사 == 1395년([[태조(조선)|태조]] 4년)에 [[경복궁]]을 창건할 때 건립되었으며[[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9029_006|#]] 1428년(세종 10년) 5월에 다시 지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005024_001|#]] 1592년([[선조(조선)|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270여 년간 방치되었다. 1865년([[고종(대한제국)|고종]] 2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 특징 == ● [[경복궁]]의 서문인 [[경복궁 영추문|영추문]]과 구조가 같다. * [[아치]]형 [[문]]을 낸 석축 위에 단층짜리 문루(門樓)를 올렸다. 문루 4면의 가장자리 앞에는 [[벽돌]]로 쌓은 통여장이 놓여있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65736742&parentCategoryNo=&categoryNo=21&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List|#]] * 통여장의 바로 밑 부분 석축에 석누조 2개가 달려 있다. 이는 비가 올 때 빗물이 빨리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총 6칸이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전부 양성바름을 했고 그 위에 취두와 [[용두]], [[잡상]]을 올렸으며, [[추녀]] 끝에는 토수를 끼웠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는 이익공이다. 공포 사이마다 화반을 놓았으며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 문루의 내부는 전부 한 공간으로 트여있다. 가운데칸 [[천장]]은 구조가 다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가장자리 쪽 들보 위는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문루의 바닥은 전부 [[벽돌|전돌]]을 깔았으나 가운데 칸만 [[마루]]를 깔았다.[[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2437|#]] * [[아치]]형 [[문]]은 겉에만 아치를 구성하고 내부의 [[천장]]은 반자로 덮어 놓은 모습이다. 반자에는 [[청룡]]과 [[황룡]]이 그려져 있다. [[용]]은 동쪽의 수호신을 뜻하기에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에 그려넣은 것이다. 문짝은 붉은색 [[나무]][[판]]이며 문짝 위에는 문둔테를 두었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65736742&parentCategoryNo=&categoryNo=21&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List|#]] * [[경복궁]] 안쪽 부분의 석축 양쪽에 문루로 올라갈 수 있는 [[암석|돌]] [[계단]]을 두었다. 계단에 [[난간]]은 설치하지 않았다. 계단과 문루 사이의 통여장 가운데에는 [[벽돌|전돌]]을 쌓은 [[문]]을 두었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65736742&parentCategoryNo=&categoryNo=21&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List|#]] == 여담 == * 조선 초 · 중기에 유독 건춘문 일대에서 해괴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세종(조선)|세종]] 때는 [[부엉이]]가 나타나서 울었고[[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7024_006|#]], [[세조(조선)|세조]] 때는 [[궁궐]]을 지키는 갑사 한 명이 벼락을 맞아 해괴제를 지냈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206026_001|#]] 또한 [[중종(조선)|중종]] 때는 익명서가 달린 [[화살]]이 건춘문에 날라온 일이 여러 번 있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1402011_001|#]][[http://sillok.history.go.kr/id/kka_12007023_001|#]][[http://sillok.history.go.kr/id/kka_12605024_001|#]] *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진 후부터 2001년에 [[경복궁 흥례문|흥례문]]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건춘문이 [[경복궁]]의 정문 역할을 했다.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7]]의 [[한국 스테이지#s-2.2.4]] 배경이었다. ||<tablewidth=662>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latest?cb=20100720021310?.gif|width=100%]]||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한국 스테이지, version=189, paragraph=2.2.4)] [[분류: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