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덴노)] ||||<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mpress_Gensh%C5%8D.jpg]]|| ||<:> '''한풍 시호[*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 ||겐쇼 덴노(元正 天皇, 원정 천황)|| ||<:> '''화풍 시호'''[* [[휘]](이름)가 아닌 왕이 죽은 뒤 [[왜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 ||야마토네코타마미즈키요타라시히메노스메라미코토[br](日本根子高瑞浄足姫天皇)|| ||<:> '''[[휘]]''' ||히타카(日高, 氷高)|| ||<:> '''[[왕릉(무덤)|능호]]''' ||나호야마서릉(奈保山西陵)|| ||<:> '''생몰''' ||680년~748년 6월 4일|| ||<:> '''재위''' ||715년 10월 3일~724년 3월 3일|| ||<:> '''[[연호]]''' ||레이키(霊亀) → 요로(養老)|| ||<:> '''황거''' ||헤이죠큐/헤이제이큐(平城宮)|| [목차] == 개요 == 일본의 제44대 천황. 나라 시대 2번째 군주이자, 6번째 여성 천황이기도 하며, 여성 천황인 어머니 [[겐메이 덴노]] 바로 뒤에 여성 천황으로 즉위했다. 이름은 히타카(日高, 氷高)였다. == 행적 == 어머니인 [[겐메이 덴노]]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몬무 덴노]][* 겐쇼 덴노에게는 남동생이 된다.] 사후 황위는 본래 그의 아들 오비토 황자([[쇼무 덴노]])가 이어야 했지만 황자의 나이가 너무 어려 오비토의 할머니인 [[겐메이 덴노]]가 대신 즉위했다. 그리고 오비토는 겐쇼 덴노가 즉위한 후 황태자로 봉해졌다. 천황 재위 도중인 717년 '양로(養老)'로 개원하였으며, 어머니 겐메이 상황의 마음에 따라 [[나가야 왕]]을 우대신으로 임명하고, 717년 10월에는 후지와라노 후사사키(후히토의 차남, 북가)를 내신으로 삼아 후사사키 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후지와라노 후히토]]에 의한 '''요로 율령''' 편찬과 [[토네리 친왕]] 등에 의한 '''<[[일본서기]]>'''의 완성도 보았으며, 토지 확보 계획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삼세일신법'''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만요슈]]에는 겐쇼 덴노가 직접 지은 노래가 실려 있다. 겐쇼 덴노는 747년 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다 748년 60대로 사망하였다. == [[신라]]와의 공방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신라의 일본 침공 사례)] [[삼국사기]]와 [[해동제국기]]에는 이 당시 신라왕인 [[성덕왕]]과 서로 공수를 주고 받았다는 기록이 각각의 입장에서 실려있다. >원정 천황(元正天皇) 4년(서기 720년, [[성덕왕]] 14년) > >4년 경신에 신라가 서쪽 변방을 와서 쳤다. (四年庚申。新羅來伐西鄙。) > >- [[해동제국기]] [[해동제국기]]에 따르면 720년, 신라가 서일본 변방을 공격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관련 내용이 안나온다. >[[성덕왕]](聖德王) 30년(서기 731년) >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 [[삼국사기]] 731년, [[일본]]에서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지휘 아래 300척의 군함이 쳐들어왔으나 곧바로 신라군이 격퇴하였다.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의 원인이 된 '왕성국 사건'도 734년에 벌어졌는데, 일본에 보낸 신라 사신이 스스로 '''왕성국(王城國)'''에서 왔다고 말한 것이다. [[서경]], [[주례]]등 옛 유교 경전에서 말한 세계관에 따르면 '''왕성(수도 궁성) - 왕기(수도 근처) - 6복(지방 = [[9주 5소경]]) - 번국(외부 이민족 제후국)의 순서로 주종관계의 체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신라가 왕성국이라면 일본은 [[번국]]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이에 분노한 일본은 무례하다고 하며 사신을 쫓아 버렸다. 왕성국 사건은 앞서 신라가 일본의 침공을 손쉽게 격퇴했다는 자부심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규슈]](九州) [[미야자키 현]](宮崎県) 난고손(南鄕村)에 있는 미카도 신사(神門神社)에 전해내려오는 <능백묵서(綾布墨書)>에 따르면, 백제 왕 [[부여풍]](扶餘豊)[* [[의자왕]]의 아들로 백제 부흥운동 주도자 중 한 사람]의 아들 부여사(扶餘絲)를 비롯한 일가가 [[나라 현]]에 정착했으나, 일본 내 정쟁에 휘말려, 부여사의 손자로 추정되는 [[정가왕]](禎嘉王)은 나라 현에서 규슈 미야자키 현 일대로 이주한 뒤, '''[[백제]][[왕]]'''을 칭하며, [[연호]]를 '정거(定居)'라 하였다고 한다. 당시 정가왕은 미야자키에 정착한 뒤에 지역민들에게 불교 신앙과 건축술, 농업 등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718년경에 '''나당연합군 또는 신라군이 미야자키 현을 침공'''하여, 정가왕과 둘째 아들 화지왕은 백제 유민들 및 토착 지역민들과 함께 힘을 합쳐 저항하였으나 결국 패배하여 전사했다고 한다. 이 전투가 [[해동제국기]]에서 언급된 신라의 720년 일본 서쪽 변방 공격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만약 718년과 720년의 신라의 일본 침공이 사실이라면 731년의 왜국 병선 300척의 공격은 그에 대한 보복 공격일 수도 있다. == 가족관계 == * 아버지 : [[쿠사카베 황자]](草壁皇子, 662~689) - 존호는 [[오카노미야 덴노|오카노미야 어우천황]](岡宮御宇天皇) * 어머니 : [[겐메이 덴노|아헤노 황녀]](阿陪皇女) * 남동생 : [[몬무 덴노]](文武天皇) * 조카 : [[쇼무 덴노]](聖武天皇) * 여동생 : 키비 내친왕(吉備内親王, ?~729) - [[나가야 왕]](長屋王)의 비妃 [각주] [[분류:여성 덴노]][[분류:75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