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소련의 정치인]][[분류:1891년 출생]][[분류:1938년 사망]][[분류:총살형된 인물]][[분류:유대계 러시아인]] ||<-2><table bordercolor=#ffe400><tablewidth=450><tablealign=right><bgcolor=#c70125> {{{+3 {{{#ffe400 '''겐리흐 그리고리예비치 야고다''' }}}[br]{{{#ffe400 '''Ге́нрих Григо́рьевич Яго́да''' }}} }}}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930_jagoda.jpg|width=100%]]}}} || ||<bgcolor=#c70125> '''{{{#ffe400 이름}}}''' ||<bgcolor=#ffffff>[[러시아어]]: Ге́нрих Григо́рьевич Яго́да[br][[영어]]: Genrikh Grigoryevich Yagoda[br][[한국어]]: 겐리흐 그리고리예비치 야고다|| ||<bgcolor=#c70125> '''{{{#ffe400 국적}}}''' ||<bgcolor=#ffffff>[[러시아 제국]] [[파일:러시아 제국 국기.png|width=28]] [br] → [[러시아 공화국]]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28]] [br] → [[소련]] [[파일:소련 국기.svg|width=28]]|| ||<width=60><bgcolor=#c70125> '''{{{#ffe400 출생}}}''' ||<bgcolor=#ffffff>[[1891년]] [[12월 7일]], [[러시아 제국]] [[리빈스크]]|| ||<bgcolor=#c70125> '''{{{#ffe400 사망}}}''' ||<bgcolor=#ffffff>[[1938년]] [[3월 5일]], [[소련]] 모스크바|| ||<bgcolor=#c70125> '''{{{#ffe400 신장}}}''' ||<bgcolor=#ffffff>|| ||<bgcolor=#c70125> '''{{{#ffe400 직업}}}''' ||<bgcolor=#ffffff>[[정치인]], [[군인]]|| ||<bgcolor=#c70125> '''{{{#ffe400 정당}}}''' ||<bgcolor=#ffffff>[[소련 공산당]]|| ||<bgcolor=#c70125> '''{{{#ffe400 배우자}}}''' ||<bgcolor=#ffffff>이다 레오니도프나 아버바크|| [목차] == 일생 == [[소련]] [[NKVD]] 위원장으로 본명은 예노흐 게르셰노비치 예구다 Енох Гершенович Иегудаа (Yenokh Gershevich Iyeguda).[* 영문] 그는 리빈스크라는 도시에서 시계 제작자이던 [[유대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7년]] [[볼셰비키]]에 입당했으며, [[10월 혁명]] 이후 [[체카]]의 수장 [[펠릭스 제르진스키]] 아래에서 2대 부부장이 되었고, 제르진스키 사후에는 [[뱌체슬라프 멘진스키]] 아래에서 부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멘진스키]]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야고다는 [[1920년]]대부터 [[NKVD]]를 지휘하기 시작했지만 [[1931년]] 제 2위원장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1934년]] [[7월 10일]]. [[멘진스키]]가 죽은 뒤 2달만에 [[NKVD]]의 위원장이 되었다. 이 시기 [[대숙청]]의 도화선이 된 세르게이 키로프 암살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는 후에 [[그리고리 지노비예프]]와 [[레프 카메네프]] 등이 기소된 첫번째 공개 재판을 수행했다. 하지만 중앙당은 이 때부터 야고다를 불신했다. [[1932년]]부터 눈치 까고 있던 이들 블록을 수사하고 재판하는 게 너무 더뎠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스탈린]]이 "야고다 동무는 [[트로츠키]]-지노비예프 패당을 수색하기엔 능력이 모자란다"라고 말한 뒤 해임당하고, [[니콜라이 예조프]]에 밀려 NKVD 위원장에서도 밀려났다. [[1937년]] 3월, [[NKVD]]에서 밀려난 뒤 우편통신부부장을 맡고 있던 그는 [[스탈린]]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다. 이유는 그가 이전의 각본 재판에서 '피고인들의 죄는 단지 [[스탈린]]의 적이었기 때문이다'는 것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고, 8년 전에도 [[부하린]]에게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스탈린]]에게 밉보인 적이 있던 탓이었다. [[1938년]] 3월에 야고다는 "21명의 재판"이라 불리는 각본 재판에서 [[나치 독일|독일]]의 첩자로 국가에 대한 반역 및 음모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직후 바로 처형되었다. 당시 [[예조프]]는 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처형 직전 옷을 벗기고 고문했다고 한다. 숙청 당시 그의 죄목 중에는 [[멘진스키]]와 [[고리키]]를 독살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다만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이었으니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참고문헌 : [[http://ko.wikipedia.org/wiki/%EA%B2%90%EB%A6%AC%ED%9D%90_%EC%95%BC%EA%B3%A0%EB%8B%A4|위키백과]] == 기타 == [[니콜라이 예조프]]나 [[라브렌티 베리야]] 못지않게 정신나간 인간으로, 도박에 빠져 있었으며 [[성도착증]]과 [[사디즘]] 성향을 갖고 있었다. 체포 당시 가택 수색에서 각종 서구산 [[포르노]]와 여성용 [[속옷]]이 발견되어 당국을 기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