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유괴살인]] [[분류:제6공화국/살인사건]][[분류:안산시의 사건사고]][[분류:1994년 범죄]] [include(틀:사건사고)] * [[사건 사고 관련 정보]] [목차] == 개요 == [[1994년]] [[10월 2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당시 안산시 선부동. 2002년에 단원구와 상록구로 분구되었다.]에서 당시 8세였던 선부국민학교 3학년생 강태민 군이 전용재라는 살인범에 의해 유괴, 살해당한 사건이다. == 전개 == 사업실패로 돈이 급하게 필요했던 전용재(당시 27세)는 어린아이를 유괴해 돈을 얻어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평소 눈여겨 봐두었던 강태민 군에게 자신의 애완용 강아지를 보여주고 하굣길에 차를 태워주는 등 환심을 샀고, 1994년 10월 28일 오후 3시 경 안산시 선부동의 한 체육공원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강 군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접근해 자신의 [[코란도]] 승용차에 타게 한 뒤 6km 떨어진 [[시흥시]] [[장현동]]의 모범산으로 끌고 가 피해자 강 군의 입을 틀어막고 참나무에 손과 발을 묶어놓은 뒤 도주했다. 강태민 군에게서 알아낸 전화번호로 강 군의 집에 3천만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수차례 건 전용재는 1994년 11월 2일 오후 1시 30분 경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죽전휴게소]]에서 "태민이는 잘 있다. 오후 4시 49분 춘천행 열차를 타고가다 남양주군 통과지점에서 흰색 스프레이로 X표한 곳에 돈을 던져라."고 마지막 협박전화를 걸었다가 오후 6시 10분 경 남양주군[* 당시에는 읍면지역은 남양주군, 동지역은 미금시로 분리되어 있었다. 도농복합시는 1995년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함께 탄생한 개념이다.] 화도읍 철길에서 돈을 찾으러 온 경찰에게 붙잡혔다. 아이만 무사하다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며 아이의 행방을 묻는 경찰에게 전용재는 유괴 당일 피해자 강태민 군을 시흥시 장현동의 모범산에 묶어놓은 뒤로 전혀 찾지 않았다고 하며 경찰의 수색 결과 강 군은 전용재가 입에 묶어놓은 재갈에 유괴 당일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이득화 유괴 살인 사건]], [[김동준 유괴 살인 사건]]에 이어 1990년대 들어서만 발생한 여섯 번 째 잔혹한 어린이 대상 유괴 살인 사건에 사람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고, 어린이 안전에 대한 교육이 철저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 범인 전용재 == [[강원도]] [[영월군]] 출신의 전용재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경기도]] [[가평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가평군]]의 모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경기도]] [[부천시]]의 한 전자회사에서 공원으로 일했다가 1993년 여름부터 1994년 1월까지 원양어선을 탔으며, 원양어선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1994년 1월 안산에서 이동통신 대리점 사업을 했으나 9개월만에 1,500만원의 빚을 지고 폐업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자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전용재는 강태민 군을 유괴한 데 대해 "평소 태민 군이 옷을 잘 입고 다녀서 부잣집 아이인 줄 알았다"고 했으나, 정작 피해자 태민 군은 안산의 서민아파트에 사는 공단노동자 부부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재판과 결말 == 전용재는 극형을 면하기 위해 감금치사죄를 주장했으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 1980년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에 있어서도 범인 주영형이 비슷한 주장을 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되어 1995년 [[사형]]을 대법원에서 확정받았다. 전용재의 사형이 확정된 뒤로 1995년 11월 2일과 1997년 12월 30일 각각 두 차례의 사형집행이 있었으나 운 좋게 사형집행명단에서 제외된 전용재는 현재도 사형집행대기자로서 [[서울구치소]]에서 복역중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