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878787><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강성모(姜聖模) || || '''생몰''' ||[[1915년]] [[11월 19일]] ~ [[1940년]] [[8월 6일]] (향년 24세) || ||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 || '''사망지''' ||[[만주]] 북간도 연길현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915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부여 일대에서 강일(姜日) 등과 함께 학생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이후 문맹퇴치운동에 가담해 금강공산협의회(錦江共産協議會) 조직의 일환으로 부여농민구락부(扶餘農民俱樂部)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이후에도 강일구(姜日求), 최재봉(崔在鳳), 장창선(張昌善), 전영철(田泳喆), [[강병국]](姜秉國), 조병철(曺秉喆), 허원범(許元範), [[노명우]](盧命愚)·강도형(姜道馨) 등 동지들과 함께 지하운동을 벌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다. 그러나 1933년 12월 7일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5년 1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고, 추록 후 형 강병덕(姜秉德)을 따라 만주 북간도 연길현으로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강성모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에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부여군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194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