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강문영.jpg|width=300px]] || || 성명 ||강문영(姜文永) || || 이명 ||강일영(姜日永), 요시카네 후미요(吉金文雄) || || 생몰 ||[[1915년]] [[1월 22일]] ~ [[1947년]] [[3월 5일]] || ||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흥촌리 || || [[본관]] ||[[진주 강씨]] || || 사망지 ||[[전라남도]] [[해남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항일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강문영은 1915년 1월 22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흥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3월 해남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6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다가 동경중앙대학(東京中央大學)을 중퇴하고 광주로 귀향한 뒤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한 [[장재성]](張載性)의 권유를 받고 광주고보 독서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연구, 동지 규합,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목적으로 약 3개월간 토론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1929년 11월 광주고보의 한국인 한색들과 광주중학교 출신의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역 앞에서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여기에 참가하여 시위를 주도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서울로 상경해 1932년 4월 보성고보(普成高普) 제3학년에 입학한 강문영은 1933년 2월 서승석(徐升錫)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서적을 연구, 토론하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등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또다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6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47년 3월 5일에 사망했다. == 기타 ==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문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1915년 출생]][[분류:해남군 출신 인물]][[분류:진주 강씨]][[분류:한국의 사회주의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194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