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임관]] [include(틀:장교임관과정)] [목차] == 개요 == [[대한민국 국군]]에 존재했던 [[대한민국 육군]]의 [[장교]]양성제도. '''갑종장교'''라고도 하며, 줄여서 '''갑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갑]]의 영원한 ~~동생~~친구 [[을]]도 있었는데, [[을종간부후보생]]은 오늘날의 [[부사관]]인 하사관을 양성하는 제도였다. --실은 이전 [[일본군]]의 시스템을 흉내낸거라 카더라.-- == 역사 == [[육군보병학교]]에서 '갑종간부후보생' 교육을 받은 육군 장교 자원으로, 1950년 7월 15일 1기가 임관한 이래 1969년 8월 30일 갑종 마지막 기수인 제 230기가 임관하기까지 총 45,424명이 임관하였다. [[전시]]에는 약 24주 교육기간으로 운영되어 [[육군종합학교]]와 함께 전시 단기 육군 장교 양성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당시 많은 피를 흘렸는데, 6.25 전쟁 3년간 약 10,500명의 육군 장교들이 전선에 나가 2,000여명이 전사하였으며, 베트남 전쟁 때는 참전한 육군 장교 22,000여명 중 14,700여명이 갑종 장교 출신이었다. 특히 갑종간부후보생 1, 2기 출신들은 교육기간 도중 [[6.25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에 이들 중 일부는 임관도 하기 전 [[사관후보생]]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전사한 자원도 많았으며, 수료증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055754|참고 기사]] 참고 기사에 언급된 갑종장교단중앙회 회장 박희모(육군 [[중장]] 예편) [[장군]]은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 측에 협력한 당시 [[제30기계화보병사단|제30보병사단]][[사단장|장]]이었고, 갑종장교 1기 대표인 하소곤([[소장(계급)|소장]] 예편) 장군은 당시 진압군 측에 있던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 부[[군사경찰|헌병]]단장이었던 신윤희 [[중령]]이 이끄는 [[장태완]] 장군 체포조의 한영수 [[대위]]가 쏜 총에 맞고 이후 강제전역당했다. 둘이 저런 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참 어이없을 듯. 2006년 11월 17일 갑종 222기 출신이었던 육군[[대장(계급)|대장]] [[권영기]] 장군(당시 [[제2작전사령부|제2]][[야전군사령관]])이 퇴역하면서 갑종 출신은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그러나 [[제2사관학교|육군제2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육군제3사관학교]]의 설치와 함께 폐지되었기 때문에, 계보상으로는 현 [[육군3사관학교]]의 전신에 가깝고, 그와 동시에 현 [[학사장교|학사사관후보생]]이나 [[단기간부사관]]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현재의 양성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진급 == 광복과 6.25 전쟁 당시에는 국군의 장교 인력들이 많이 부족했기에 육군에선 갑종장교도 많이 뽑았고, 게다가 육사 초창기부터 10기까지는 4년제 출신도 아니어서[* [[해군사관학교]]는 육군보다 장교 수요가 적었던 [[대한민국 해군]]의 처지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의 의지로 전시에도 교육 과정을 단축하지 않았다. 6.25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잠시 해군[[사관생도]]들이 육전대로 편성되어 적 병력과 소규모 교전을 하기도 했으나, 금방 원복해 교육을 재개했다.] 오늘날과 같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갑종장교 출신이라고 육사 출신에게 기죽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 때문에 같은 육사 출신이라 해도 4년제 육사와 2년제 육사는 차별이 극심해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뛰어넘어 진급하는 것이 일상다반사 였다. 그래도 [[전두환]]을 필두로 한 4년제 육사 첫 졸업생 패거리(육사 11기)였던 [[하나회]] 멤버들이 정권 잡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갑종출신들은 장성급에도 잘 진급하고 꽤나 요직에 있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그후로 갑종은 천대받아 "갑종 출신으로 별 달았다"면 정말 드물고 대단한 케이스로 취급되게 되었다. 갑종장교 출신 중 약 200여명이 [[장성급 장교|장성]]으로 진급했고, 이들 중 5명은 [[대장(계급)|대장]]에까지 올랐다. 갑종 장교 중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등 참전 용사들이 많았기에 이들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다음가는 대접을 받았고, 육사 다음으로 장성에까지 오른 인원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육사 출신 장성수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었다. 특히 [[12.12 군사반란]] 이후 [[전두환]]이 [[하나회]] 중심으로 장군 자리를 정리하면서 갑종출신은 이후 천대를 받게 된다. 그래도 1990년대까지 육사 다음으로 많은 장성 자리를 차지한 장교가 갑종출신이었는데, 아무리 천대한다 해도 육사 출신이 무시 못할 만큼 쪽수가 받쳐줬기 때문(...)이다. == 문제점 == 지원자 중 [[고졸]] 이상인 자는 갑종으로 분류하여 소위로, 중졸 이하는 을종으로 분류하여 을종은 [[하사|일등중사]]로 임관시켰는데,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훈련을 받고 학력을 차별해서 임관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점이다. 현재 육군 [[학사장교]]와 [[부사관후보생]]들의 교육 기간은 얼추 비슷하지만, 분명 훈련 교과목 편성 자체는 상당히 다르다.[* 학사장교는 배울 건 다 배우는데 부사관후보생은 학사장교가 배우는 것들 중에서 몇가지가 빠져있다. 그 과목들이 전쟁사, 북한군전술, 지휘통솔기법, 분소대전술 등이다. 부사관후보생은 이것들을 안배우는 대신 개인화기, 수류탄, 편제화기, 화생방 등을 학사장교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훈련한다. ] [[미 육군]]이 [[대졸]]자에게 신병 수료 후 [[상병]](Specialist) [[계급]]을 부여하나, 저 경우는 고학력자에 대한 일종의 학력인정에 따른 혜택이지, 동일 계급이지만 부사관으로 분류되는 코퍼럴(Corporal)이 아니다. 다만 상병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미 육군 부사관 신분인 코퍼럴[* 이 계급은 상병들 중 [[분대장]] 직책 등을 맡으면서 부사관 신분으로 분류되는 계급이므로, 이 계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서전트를 달 수도 있다.]이나 서전트(Sergeant)[* 국군은 공식적으로 이 계급이 육군의 [[병장]]에 대응된다고 명시해뒀지만, 실질적인 지위는 육군 [[하사]]에 가깝다.]로 고졸보다 진급을 빨리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당시 고학력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군 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과도기에서 볼 수 있었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과도기 치고는 너무 오랜 기간 시행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 출신 인물 == * [[유지광]] * [[이강석]] * [[한병기]](1기) * [[오자복]](3기) * [[정호근(군인)|정호근]](5기) * [[김진기]](6기) * [[https://ko.wikipedia.org/wiki/%EC%86%A1%EC%84%9C%EA%B7%9C|송서규]](7기) * [[이용희(1931)|이용희]](11기) * [[전경환]] * [[정육진]] (57기) * [[조영길]](172기) * [[정수성(1946)|정수성]](202기) * [[윤천득]](200기) * [[권영기]](222기) * [[장태완]] (11기) * [[조창호]]